전통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생활 모습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낯설고 어렴풋한 단어로 느껴지진 않나요. 전통에 대한 막연함을 생활면이 변화 시켜 드립니다. 생활면은 선조가 전해주고 후손이 널리 통하게 한 전통을 소개합니다. 이번주는 만인의 먹거리, 떡볶이를 만나봤습니다. 쫄깃한 맛의 향연을 함께 따라가봅시다. 글·사진 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추억과 오늘, 전통과 내일을 잇는 징검다리
각양각색 떡볶이로 하나 되는 남녀노소

쫄깃한 떡과 고소한 어묵이 매콤한 소스를 만나 빚어낸 하모니. 입안에 짜릿하게 퍼지는 떡볶이의 선율은 오래도록 우리의 심금을 울려왔다. 국민대표 간식으로 사랑받아온 떡볶이는 유행에 따라 옷을 바꿔입으며 다채롭게 변주해왔다. 떡볶이는 어떻게 현대에 전해졌을까?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맛깔나게 채워주는 떡볶이에 담긴 전통을 음미해봤다.

  담백했던 시작 
  떡볶이의 한글 고어는 1800년경 편찬된 조리서 『시의전서』에 최초로 등장한다. 『시의전서』는 떡볶이가 흰떡과 쇠고기, 간장, 표고버섯, 전복 등으로 만드는 궁중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시의전서』는 떡볶이를 찜 요리로 분류해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1855년 편찬된 생활 요리책 『부인필지』와 1918년 제작된 『조선요리제법』 등 수많은 문헌에서 간장을 양념으로 하는 떡볶이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떡볶이는 궁중과 사대부에서 즐기던 고급스럽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었다. 조선왕조의 궁중 음식 조리서인 『이조궁정요리통고』, 사대부가 이익의 문집 『성호전집』의 기록을 통해 떡볶이가 궁중과 사대부에서 유래됐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조성순 교수(영산대 K-Food조리전공)는 전통적으로 떡볶이가 서민들에게 낯선 음식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떡은 절식으로 서민들에게 친숙했지만 떡볶이는 궁중 음식이라 서민들이 접하기 어려웠어요.”

  1766년에 편찬된 『증보산림경제』에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고추장 기록이 등장한다. 당대에 이미 존재하던 고추장을 떡볶이에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성순 교수는 궁중 음식의 담백한 특성을 바탕으로 전통 떡볶이에 간장 양념이 쓰인 이유를 설명했다. “전통 궁중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달했어요. 자극적인 맛이 없죠. 원재료의 순수함과 영양소를 그대로 보존하는 조리법을 중요시했답니다. 그래서 궁중 떡볶이가 부드러운 맛으로 표현됐죠.”

  매콤한 재탄생 
  주류 떡볶이는 전통적 간장 떡볶이에서 현재의 고추장 떡볶이로 변화했다. 윤옥현 할머니의 마약떡볶이 등 고추장 떡볶이 유래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마복림 할머니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1953년 미군 물품 보따리 장사를 하던 마복림 할머니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에 방문했다. 개업식 떡을 맛보던 할머니는 짜장면 그릇에 실수로 떡을 떨어뜨렸다. 할머니는 이에 착안해 고추장을 밀가루 떡과 버무려 신당동 노점에서 팔기 시작했다. 신당동의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가게는 며느리와 손녀를 거쳐 3대째 이어지고 있다. 마복림 할머니의 손녀사위 이정운씨(47)는 마복림 할머니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현재는 밀가루 떡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밀가루 떡을 사용했지만 알레르기 등의 문제 때문에 쌀떡으로 바꿨답니다.” 

  그러나 고추장 떡볶이가 곧바로 대중화된 것은 아니다. 1960년경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떡볶이는 여전히 간장을 양념으로 했다. 고추장 떡볶이는 1970년대 무렵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신당동 떡볶이 가게 중 한 곳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DJ를 고용해 인기를 끌었다.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는 DJ 문화가 신당동 떡볶이 가게 전체에 퍼졌고 신당동 고추장 떡볶이는 입소문을 탔다. 신당동 떡볶이는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떡볶이 타운이 조성됐다. 가족과 함께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찾은 홍미영씨(48)는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했다. “DJ가 신청곡을 틀어줘서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끼리 많이 왔죠.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만남의 장이었어요. 이곳에서 미팅도 많이 했답니다. 지금이야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많지만 당시에는 떡볶이 하면 신당동이었어요.” 남편 배상국씨(49)는 고교야구 전성기와 함께 빛났던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떠올렸다. “고교야구가 인기 있던 1970~80년대에는 근처 동대문운동장을 찾은 학생들이 떡볶이를 먹으러 방문해 더욱 붐볐어요.” 

  개성 넘치는 맛으로 사로잡다  
  떡볶이의 인기가 커질수록 곁들여 먹는 음식 종류도 늘어났다. 신당동 떡볶이 가게에서 약 15년째 DJ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우씨(54)는 신당동에서 태어나 떡볶이와 함께 자라온 기억을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남겨온 도시락밥을 떡볶이 국물에 볶아 먹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볶음밥이 메뉴에 없었거든요. 1970년대 후반쯤부터 양을 푸짐하게 늘려주는 볶음밥과 라면 사리가 메뉴로 등장했어요. 이후 떡볶이 가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햄, 만두, 치즈 등 각양각색의 음식이 메뉴로 추가됐죠.”

  현대의 떡볶이는 고추장을 넘어 짜장 소스, 카레 소스, 로제 소스 등 다채로운 맛으로 뻗어가고 있다. 중국의 분모자 당면, 스페인의 감바스 요리 등 이국적인 변화도 거듭하는 중이다. 한류에 힘입어 떡볶이의 인기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떡볶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조성순 교수는 현재의 다변화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퓨전 소스를 개발해야 해요. 한국의 매운맛, 전통적인 맛에 얽매이지 않고 남미, 동남아 등지의 다양한 향신료를 연구해야 하죠. 떡볶이가 다채로운 소스를 갖춘다면 연령과 국적에 상관없이 큰 사랑받을 수 있을 거예요.” 
 

궁중 떡볶이.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떡볶이로 '간장 떡볶이'라고도 한다. 사진제공 한식진흥원
궁중 떡볶이.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떡볶이로 '간장 떡볶이'라고도 한다. 사진제공 한식진흥원
감바스 떡볶이. 감바스 알 아히요는 새우, 마늘 등을 넣고 끓인 스페인 음식이다. 사진제공 걸작떡볶이치킨
감바스 떡볶이. 감바스 알 아히요는 새우, 마늘 등을 넣고 끓인 스페인 음식이다. 사진제공 걸작떡볶이치킨
'아이러브 신당동' DJ부스에서 김상우씨(54)가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러브 신당동' DJ부스에서 김상우씨(54)가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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