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제도를 완전히 수정해서 새로 자본의 축적을 이어간다고 설명하는 백승욱 교수.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제도를 완전히 수정해서 새로 자본의 축적을 이어간다고 설명하는 백승욱 교수.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더 나은 자본주의를 향한 고찰

특수한 한국형 자유주의

역사와 제도를 통해 살펴봐야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지 약 200년이다. 누구나 의식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제도의 어느 부분을 고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백승욱 교수(사회학과)는 7일 화상 강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자본주의의 위기: “누구의 어떤 위기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자유주의와 자본의 재생산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며, 자본주의의 위기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시점을 제시했다. 

  자본주의, 무엇이 위기인가 
  자유로운 개인의 집합체라고 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기계가 있다. 바로 자본주의다. 우리의 삶에 뿌리내린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뒷받침해주고, 그 결과로 자본이 축적되기만 한다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백승욱 교수는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제도를 완전히 수정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구성원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는 불안정한 고용, 빈부격차의 양극화, 전쟁 등의 문제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의 축적은 기이한 조건 속에서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승욱 교수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계를 굴리는 원동력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모든 것이 자연과학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작동할 수 있는 제도라고 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화폐와 노동력이 자본의 순환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와서 계속 작동한다는 말이다.  

  이상한 발명품,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이 국가와 대립 구도를 갖는 정치이념으로서의 의미에 국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작동하게 하는 제도의 틀로서의 자유주의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유주의는 자본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연과학적 질서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적 질서 하에 살고 있다. 신은 완벽한 자연법칙의 세계를 만들었고, 인간은 신이 준 특별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신이 만들어낸 인간의 질서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등장한 두 가지 질서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경제 신학’과 합의를 통해 민주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정치 신학’이다. 이에 따라 무질서한 경제는 질서로 향하고, 무질서한 인간의 정치사회 또한 민주주의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과학을 본떠 완벽한 사회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인간은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움직이는 기계, 자본주의를 만들어냈다. 

  다만 이 기계가 고장 날 때마다 끊임없이 고쳐야 하는데, 수리의 핵심은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있다. 기계의 잘못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질서가 망가진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주의라는 기계 자체가 아닌 그 외부 세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면서 자본주의는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한다 
  자유주의는 빛좋은 개살구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모든 책임을 자유주의 외부로 돌리며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암흑세계를 만들어냈다. 이 방식으로 자본의 재생산이 계속될 수 있었고, 자본주의라는 기계는 기이한 조건 속에서 계속 작동돼왔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악조건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과연 자유주의를 지향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다. 자유주의적 질서 아래의 자본주의 세계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지금껏 그래왔듯, 이 질서가 아무리 문제라고 해도 자유주의자들은 계속 기계를 고쳐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소유는 노동자가 임금을 판매함으로써 착취 관계 속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축적이 일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의 비참화를 초래한다.  노동의 비참화와 같은 문제 때문에 자본주의를 망하게 할 목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중단한다고 가정해 보자. 자본 축적이 중단되면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기계 자체가 멈추면 비참화의 기회조차 상실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계를 멈출 수 없다. 

  잘못 꿴 첫 단추
  
한국의 자본주의도 기이한 조건 속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다. 백승욱 교수는 한국에는 자유주의적 질서의 계보가 거의 부재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자유주의 사상가는 없는데도 한국의 자본주의 질서는 잘 돌아가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적 바탕의 부재에도 경제의 기본 질서가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공자의 학풍을 따르는 유가로부터 배출됐지만 한국에서는 유가가 근대적 사상 논쟁을 주도하지 못했다. 백승욱 교수는 한국 유가의 집권 세력 중 한 계열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다른 하나는 의병으로 끝난 채 사상적 혁신이 없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또한 남인 계열에서 안동을 중심으로 배출된 운동가들이 사상적 혁신을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가 거의 부재할 뿐만 아니라 분단 당시 한국 정치지도자 대부분은 국제 정세에 대해 백지상태였다. 국제 정세를 분석하려 하지 않고 열강에 의지하려고 했다. 따라서 국제 질서에서의 자유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고 자체가 부재하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질서마저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설계하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에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로스토우가 사절단을 데리고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집중적으로 수립했다. 게다가 그는 한국의 물건을 구매할 투자처까지 대동했다. 한국 경제의 기본적인 체계가 설립되는 1965년에서 1968년까지의 시기에 경제체제를 설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설계자가 없으니 고장이 나더라도 수리할 수 없다. 문제가 생긴다고 제도를 개편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중국은 자유주의나 자본주의적 질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근본으로 돌아가서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데, 그 시점은 노신이라고 백승욱 교수는 말한다. 일본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되짚어볼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유주의 사상가의 부재로 문제가 생겼을 때 되돌아갈 근본이 없다. 

  지금 한국에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나타나지만, 백승욱 교수는 이 위기를 한국의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역사와 제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를 검토하기 위한 세 가지 지점을 제시했다. 첫째,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질서가 개편돼야 한다는 고민과 전환의 시도를 1990년대 초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세계 경제에 동조하려는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로의 변화를 꾀하는 시도가 1990년에서 1991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적이 있었었기 때문이다. 둘째, 국제 정세의 새로운 자유주의적 질서가 탄생했던 한국전쟁 이후, 그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왜 이 질문을 자유주의 사상에 대면해서가 아니라, 사상적 자원 없이 계속 되풀이돼야만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출발점을 약 100년 전으로 되돌린다. 약 100년 전 3.1운동에서부터 분단 이전 1945년, 1991년을 짚어보면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위기의 뿌리를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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