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찾아오는 대학 캠퍼스의 봄은 설레고 아름답고, 그리고 또 설렌다. 하지만 매주 교직을 전공하는 예비교사들과 만나고 있는 나에게 4월은 교생실습이 시작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설레는 시기다. 미래의 교사들을 만나며 든든하던 기분도 잠시, 함께 마음 졸이며 봄을 맞는다. 늘 해 오던 잔소리도 못미더워 반복하지만 사실 마음속에서 보내는 메시지는 한 마디뿐이다. 그냥 즐겁게 잘 다녀오라는. 

  오래전에 나는 남자 중학교로 실습을 나갔었다. 아직 교복의 어깨선도 헐렁해 보이는, 막냇동생 같은 아이들이었지만 공생하는 한 달은 쉽지 않았다. 매시간 끊이지 않는 짓궂은 장난들, 어려운 질문들을 찾아와 교생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겠다던 시도들도 나름 귀엽고 가상한 면이 있었다.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 달 동안 교사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중간쯤 되는 그 역할이 끝날 무렵이었다. 실습 후 대학 캠퍼스로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이려니와, 교사는 과연 나에게 맞는 직업인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심경으로 아이들과 보내던 마지막 시간. 노래를 부르라는 성화에 못 이겨 나는 솜씨 없는 어색한 노래 한 자락을 뽑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답가 부를 사람을 정하느라 소란해지고 있었다. 

  “선생님, 형범이요, 노래 진짜 잘하는데, 보통 때는 절대 안 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하라고 그러시면 할지도 몰라요.” 누군가 큰 목청으로 의견을 냈고 아이들은 모두 동의하면서 모든 시선은 앞자리에 조그맣게 앉아있던 형범이에게 쏟아졌다. 그 작은 아이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범이는 실습 기간 내내 교생실 입구까지 쫓아다니며 마냥 생글거리며 웃기만 하던 아이였다. 언젠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저도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공부를 못 해서 힘들 것 같고, 그냥 개그맨이 될래요.” 했던 엉뚱한 아이였다. 이제 화살은 내게 돌아왔다. 아이들은 형범이를 노래하게 만들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나에게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형범이, 노래 잘하는구나. 몰랐네. 정말 듣고 싶지만, 싫으면 안 해도 돼...” 다시 아이들의 아우성이 내게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좋은 표현을 찾아낼 수 없었다. 마침내 아이는 아직 식지 않은 얼굴을 들고 교단 앞으로 나와 섰다. 반 아이들의 함성이 터졌다. 지금 가사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눈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그 작은 체구에서 그렇게 맑고 또렷한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고 마음이 저릴 만큼 이쁜 노래였다. 40여 명이 가득 찬 5월의 교실에 어느새 하얀 눈가루가 날리고 커다란 눈사람이 서 있었다. 그렇게, 교직수업의 꽃이라는 교생실습에서 5월의 눈사람을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 이번 봄에 실습을 나가는 예비교사들도 모두 가슴에 따뜻한 눈사람 하나씩 담고 돌아오기를.

이은미 강사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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