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도 무서운 시기가 있었다. 연필을 들어 내 마음을 적어보는 게, 내 마음을 들춰 보는 게 그렇게나 무서웠다. 사실 글 쓰는 것만 무서웠던 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언가를 챙겨 먹는 게, 사람을 만나고 길을 걷는 것까지. 하루 중 그 어떤 것도 쉬운 적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어쩌다 글을 쓴다면 그건 힘이 조금 났다는 의미였다. 피 흘리고 있는 축축한 나의 내면에 박힌 총알을 천천히 빼보려는 시도였다.

  돌아보니 나는 대단한 용기를 내며 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3년 전 나는 아마 상상도 공감도 못 할 말일 거다. 그때의 나는 용기란 무언가 거창한 일에 내야 하는 것이고, 고작 글을 쓰거나 걷는 것 따위에 필요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나의 꿈은 대단히 컸고, 남보다 잘난 맛에 살아왔기에 소박한 것에 의미 부여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증이 극심했던 그 시기엔 책을 많이 읽었다. 내면의 깊은 상처를 이야기로 풀어낸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 희망을 증명했다. 그들의 언어는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이며, 매 순간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당장 걷기도 버거워하면서 자신에게 왜 열심히 살지 않느냐며 비난받는 내가 처음으로 안쓰러웠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정말 더 내려갈 수 없는 그 시점부터 나는 다시 일어났다. 무언가를 해내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며, 욕심을 포기하는 것도 커다란 용기임을 배워나갔다. 어떤 날엔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 공기라도 쐬러 나가는 것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용기임을 천천히 깨달았다.

  얼마 전 책에서 ‘배려는 피 냄새를 맡는 능력이다’라는 구절을 봤다. 피 흘려본 나는 이제야 삶의 밑바닥에 있는 그들을, 우리를 이해한다.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음을 이제는 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나는 거북이보다 느렸고, 여전히 느리다. 지금도 때때론 견딜 수 없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나를 내던지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나는 살아낸다. 하루하루가 힘든 일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애를 써서 좋은 것을 보려 한다.

  아이들의 해맑음, 강아지들의 생김새. 이따금 듣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 엄마의 포옹과 사랑. 항상 존재하는 바람과 바다. 내 삶의 이유는 언제든 고개를 돌면 그곳에 있다.

  정말 사소한 것이 모든 것이었다. 눈물이 흐르는 날에도 일어나서 걷고, 바람을 맞으면 그만이었다. 아주 작은 용기를 내자.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당신이 꼭 피 냄새를 맡고 이곳까지 와줬으면 좋겠다.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나의 영혼이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유진 사회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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