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으로 우려낸 뜨거운 차의 맥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1.04.0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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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

전통은 일상에 항상 스며있었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선조들이 전해준 전통을 우리네 삶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생활면에서는 본인의 자리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장인을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볼 분은 박동춘 사단법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인데요. 일생을 전통 녹차 연구에 힘쓰셨다고 합니다. 우리 함께 녹차의 산뜻한 향기를 따라 가볼까요.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사진 백경환 기자

전한 바 없이 전했다 
받은 바 없이 받았다

푸릇한 봄빛이 완연한 오후, 고즈넉한 창덕궁 앞길을 따라 걸었다. 그 끝에서 40년 넘게 녹차 한 우물을 판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그가 내어준 녹차는 걸어오는 동안 미세먼지로 뒤덮인 매캐한 속을 깨끗하게 씻어내렸다. 이 차의 이름은 동춘차. 초의선사의 초의차가 수백년을 넘어 동춘차로 계승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역사가 혀끝을 향긋하게 맴돌았다. 차와 함께 그가 써내려 온 일기장을 펼쳐봤다.

  첫번째 장. 초의차·동춘차의 연결고리 
  초의선사(1786~1866)는 조선 후기 대흥사의 승려로 그림, 서예 등 여러 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대흥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차를 연구해 ‘초의차’로 발전시켰다. 이는 선종에서 내려온 차를 복원하고 제다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초의선사가 구현한 제다법과 탕법은 범해각안(1820~1896), 원응계정(1856~1927), 응송 스님(1893~1990), 박동춘(1953~)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의선사의 전통 차 명맥을 계승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79년에 응송 스님을 처음 만났어요. 저는 당시에 한국 사상을 전공하고 있었죠. 응송 스님은 초의선사와 차를 연구하시면서 책을 쓰고 계셨어요. 국한문혼용체로 쓰인 글을 한글로 다듬어 줄 젊은이를 찾으셨는데 그때 제가 주변의 추천을 받아서 응송 스님께 가게 된거에요. 차를 계승할 목적으로 간 건 아닌데 응송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를 익히게 됐어요. 이후 초의선사와 차를 연구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죠. 우연한 계기로 삶의 궤적이 바뀐 거예요. 뜻밖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응송 스님에게 ‘다도전게(茶道傳偈)’를 받았다고 들었다. 
  “응송 스님이 1985년의 저에게 다도전게를 내려 주시면서 자신이 연구하던 초의선사 관련 자료를 물려주셨어요. 다도전게는 다도의 맥을 물려준다는 증표예요. ‘게(偈)’는 제자에게 내리는 일종의 불교 의식이랍니다. 그런데 다도전게를 받은 사람은 제가 유일해요. 그전에는 다도전게라는 전통이 없었죠.” 

  -‘다도전게’의 내용이 궁금하다. 
  “‘전한 바 없이 전했다. 받은 바 없이 받았다. 그러므로 참으로 전한 것이고 참으로 받은 것이다.’ 이게 다도전게 내용이에요. 불교적인 가치를 담고 있죠. 유무형으로 차에 대한 모든 걸 전했다는 말이에요. 처음에는 왜 이런 걸 주나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차차 이해되더라고요.” 

  -초의차의 제다 방법은. 
  “추사 김정희는 초의차를 마시고 심폐가 시원하다는 표현을 썼어요. 맑고 경쾌한 맛이 초의차의 특징이에요. 한국 차 맛의 세계를 제대로 구현해 냈다는 점이 초의차의 의의죠. 초의선사는 찻잎을 비비는 과정을 깊게 해서 탁한 맛을 줄이고 섬세하게 찻잎을 덖었어요. 한국 찻잎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다법을 만든 거죠. 중국 당·송·명 자료에 그들이 정의한 차 맛의 지향점을 보면 초의차가 거기에 맞닿아 있다고 보여요.” 

  -초의차와 동춘차의 차이점은. 
  “제다 방법은 같아요. ‘차를 마시고 나면 머리가 맑아져야 한다’와 ‘몸이 따뜻하고 가벼워져야 한다’를 기준으로 삼고 이로운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연구할 거예요. 동춘차라는 이름은 제가 붙인 게 아니에요. 차를 즐기시는 분들이 지어준 이름이죠. 초의차도 마찬가지예요.” 

  -동춘차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는. 
  “상업화를 하게 되면 차의 진명목과 깊고 순수한 세계가 상실될까 두려워요. 사실 문화를 전파하는데 상업적인 요소가 중요하긴 해요. 하지만 돈 때문에 흔들려서 좋은 차 맛을 지키지 못할까 봐 판매하지 않고 있어요.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고 있죠.” 

  -순천 차밭에서 매년 제다를 실시한다고 들었다. 순천을 기점으로 삼은 이유는. 
  “차를 만드는 시기는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예요. 차나무를 관리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순천에 거주할 필요는 없고 제다 기간에만 순천으로 내려가죠. 순천으로 가게 된 이유는 송광사 스님의 소개 덕분이었어요. 그분이 순천시 주암면 대광사지 야생차밭(순천 차밭)을 저에게 알려주셨죠. 그곳이 대광사라는 옛 절터인데 환경이 너무 좋아서 터를 잡고 차를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순천 차밭을 관리하면서 표준화된 차밭에 대해 연구했죠. 처음에는 완전히 방치돼있는 순천 차밭이었는데 35년 넘게 관리해서 지금은 제법 폼나는 차밭이 됐답니다.” 

  -40년 넘게 전통 차를 계승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응송 스님과 함께 차를 만들 때는 차밭이 근처에 없었어요. 그래서 외부 차밭에서 딴 찻잎을 가지고 저녁에 차를 만들었죠. 응송 스님이 돌아가신 해부터 혼자 순천 차밭에서 차를 제조했어요. 차밭 뒤에 바로 집이 있어서 낮에 차를 만들어야 했죠. 불에 찻잎 색이 변해가는데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늘 밤중에 차를 만들어서 찻잎의 변화를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한 솥을 태우고 머리가 하얘졌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했죠. 그때는 밤중이라 안 보이니까 차를 덖는 감각, 차의 무게로 변화를 파악했다는 걸 떠올렸어요. 그렇게 감각을 되살려 차를 만들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답니다.” 

  두번째 장. 전통에 현대를 우리다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된 수백년의 다맥은 그를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통 차 문화의 전령사로 살아가는 그에게 전통은 어떤 의미일까. 

  -『동다송』 강독 등 여러 전통 차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은 우선 이론이 체계화돼야 해요. 전통이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차 문화의 역사, 제다 원리 등을 알아야 좋은 차를 고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차는 몸을 차게 한다’와 같은 낭설을 바로 잡을 수도 있고요.” 

  -계승하고자 하는 전통의 의미는. 
  “시간적, 자연적 환경 안에서 흘러간 경험 중에 남겨진 정수가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은 그 시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기술력과 문화랍니다. 옛것을 답습하는 데에 머무는 게 아니고 현대의 필요성과 과거의 정보를 융합해서 새로움을 만들어 가야 하죠. 이런 전통을 이어주는 게 장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계승자를 찾았는지. 
  “승가와 일반인, 2개의 축으로 계승할 생각이에요. 제가 대학교수로서 논문을 지도하는 학생, 차 문화에 관심 있는 학생을 물망에 두고 있어요. 그리고 응송 스님의 불교 제자분께 연락해서 차를 이어받을 스님을 찾고 있답니다.” 

  -차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해준다면. 
  “‘차를 뜨겁게 우려서 마셔야 한다’와 ‘차를 오랫동안 우리지 말라’는 점을 얘기해 주고 싶어요. 차의 기질이 차갑기 때문에 90도 내외에서 뜨겁게 마셔야 이롭게 차를 즐길 수 있죠.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를 수 있도록 차에 관한 정보나 이론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동춘에게 다도란? 
  “다도는 차를 만들어내는 모든 절차예요. 도(道)를 철학적 개념으로 본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순수하고 맑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이게 저의 다도 철학이에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차로부터 배우고 싶어요.” 

순천시 주암면 대광사지 야생차밭에서 매년 제다를 실시한다. 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순천시 주암면 대광사지 야생차밭에서 매년 제다를 실시한다. 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초벌 덖음을 하고 있다.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시천을 감았다. 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초벌 덖음을 하고 있다.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시천을 감았다. 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응송 스님과 박동춘 이사장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응송 스님과 박동춘 이사장. 사진제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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