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고 조심히 와.’ 누군가를 기다릴 때 하는 말이다. 속으론 못마땅하면서 형식적으로 건네기도 하고 진심으로 여유롭고 너그럽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지만, 어느 경우든 바삐 움직이다 혹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이 사라진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새벽 배송’이다. 새벽 배송은 밤까지 완료된 주문을 다음날 새벽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최근 들어 큰 성장세를 보인다. ‘빠르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으나 과연 정말 필요하고 마냥 편리하기만 한 서비스일까. 

  우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새벽 배송은 정말로 필요한가? 물론 새벽 배송이 갖는 편리함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바쁜 직장인,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 등에게 유용한 서비스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내는 경제적 비용 외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그 값을 지급할 만큼 필수적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현대인의 생활이 새벽 배송이 절실히 요구될 정도로 바쁘다면, 그것도 참 이상한 삶이지 않은가. 우리는 새벽 배송으로 얼마나 간편해질까. 

  심야 배송을 담당하던 노동자 A씨가 지난해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매일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약 10시간씩 일했고 평소 새벽 배송의 고됨을 주변에 호소했었다. 사망 원인에 갑론을박이 있는데 여기엔 그의 죽음이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군 발암 물질로 규정한다. 논쟁이 어찌 됐든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는 야간 노동이 그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선택에 전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선 그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필요하다. 그러나 ‘야간 노동으로 인해 당신은 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습니다’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택한 것은 생계이지 죽음이 아니다. 

  새벽 배송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도 있다. 새벽 배송은 주로 신선 식품 비중이 높아 변질을 막기 위해 포장재를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업체들이 보냉 박스를 사용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나 단열재가 덧대진 박스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여전히 문제가 된다. 또한 상온·냉장·냉동을 구분해서 포장하는 물류 특성상 과대 포장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 즉 장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얻을 이익에 비해 손실이 더 크면 행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다. 자, 이제 다시 물어보고 싶다. 새벽 배송은 여러 희생을 감내할 만큼 간절한 시스템인가. 그 손해에 합당한 편리함과 이익이 존재하는가. 만약 있다면 과연 그 이익을 누리는 쪽은 어디인가. 결국, 손실을 책임지는 것은 누구인가.

김서경 생활면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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