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인 명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윷놀이인데요. 윷을 던지며 말판을 움직이는 시간은 가족 간의 끈끈함을 더해주는 매개체였죠. 이런 윷을 손수 만드는 조교영 한국전통윷제작소 대표를 생활면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나무를 구하는 과정부터 윷으로 완성하는 순간까지 조교영 대표의 손길이 담긴 윷에 흠뻑 빠져봅시다. 서민희 기자

사진 김서경 기자
                                                                                                                                              사진 김서경 기자

 

‘도개걸윷모’에 모인 민족 

그 속에 피어나는 화합

윷놀이에서 ‘모야!’ 하며 던지지만 대게는 ‘개’가 가장 많이 나온다. 모가 나와 운이 좋게 풀릴 때도 있고 잘 나가다 잡혀버려서 역전을 당할 때도 있다. 윷놀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엎치락뒤치락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특별한 윷이 제작되고 있는 작은 시골 마을,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에서 조교영 한국전통윷제작소 대표를 만나고 왔다. 그곳에선 서울에서 보지 못한 고요한 풍경과 엉덩이에 얼룩무늬가 있는 강아지의 ‘왈왈’ 소리가 기자를 반겨줬다. 

  윷에 빠져들다
  조교영 대표는 국내에서 싸리나무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윷을 제작하는 유일한 명인이다. 전통 기법을 재현하는 제조 공정을 연구해 2001년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전통 윷 명인의 길을 걷게 됐을까. 

  -전통 윷을 만들게 된 계기는. 

  “공무원 생활을 했었는데 일찍 퇴임을 해버렸어. 퇴임을 하고 할 일이 없어서 등산을 자주 가니께네 산에 싸리나무가 있었어. 그걸로 윷을 만들어서 주변에 나눠주니 호응이 좋더라고. 내가 평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엔 민속학 관련 책도 있었지. 민속학 계통 책을 읽다 보니께네 윷에 심취가 되더라고. 그런데 옛날 문헌을 찾아보이께니 내가 만드는 윷하고 차이가 있단 말이야. 그래서 옛날에 하던 방법을 찾아서 섭렵을 많이 했지.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자고 하데. 소문이 나니까 윷 주문이 들어오더라고. 소비자 취향을 맞추려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하다 보니 기술이 늘더라고. 그래가 윷을 만드는 방법으로 발명 특허도 냈지.” 

  -윷놀이에 관한 옛 문헌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나. 

  “윷놀이 관련 자료가 많이 있어. 조선 영조 때 나온 <경도잡지>라는 책이 있거든. 거기서 윷놀이를 ‘나무 조각을 토막 내 4조각으로 만든다. 길이는 3치가량이고 작게는 콩알만큼 만들기도 한다. 만들 때는 싸리나무가 제일 좋다.’고 해. 최상수가 쓴 <한국의 세시풍속>에는 ‘윷놀이는 수삼(數三) 문헌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존재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이거 말고도 윷놀이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도 많이 있지. 문헌을 찾아보니께네 윷놀이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거란 말이야. 그런데도 윷놀이는 전라도든, 경상도든, 제주도든 변형 없이 다 전수가 돼서 지방색이 없고.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다 함께 즐겼던 가장 서민적인 놀이더라고.” 

  -연구는 전부 독학으로 하신 건가. 

  “혼자 했지. 누가 할 사람이 있어요? 책을 정말 많이 봤지. 인사동 같은 데 있는 고서점에 다 가가지고 민속학책을 전부 다 찾아보고, 그래 했지. 또 옛날에는 마을에 노인들이 있었단 말이야. 그래가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어르신한테 어떻게 맨들었는지 물어보고 그랬지.” 

  겨울, 봄·여름·가을 지나 다시 겨울.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윷과 달리 전통 방법으로 제작한 윷은 자연을 닮았다. 그윽한 향, 갈색 겉껍질과 하얀 속살의 대비는 나무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보인다. 윷을 던졌을 때 윷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새소리같이 맑고 경쾌해 놀이의 흥을 돋운다. 단단하고 잘 벗겨지지 않는 싸리나무의 특성 덕분에 윷은 세월을 굳건히 견뎌낼 수 있다. 이러한 조교영 대표의 윷은 섬세한 손길과 오랜 시간의 기다림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통 윷을 어떻게 제작하는지 궁금하다. 

  “공정이 많이 걸려. 겨울에 산으로 가서 나무를 베 와야지. 그리고 나무를 잘라가지고 솥에다 쪄야 돼. 찌고 나면 또 나무를 말려. 말리는 데도 한 5~6개월 걸려. 자연적으로 말려야지. 바람이 들어가야 나무가 안 터지니께네. 말리고 나서 나무 옆에도 자르고 대패를 밀어가 윷 모양을 내는 거라. 그다음엔 또 나무를 닦고 기름을 맥이고 말리면 끝나지. 보통 12~2월에 제작하고. 나무를 베는 거 말고는 다 혼자서 하지.” 

  -만드는 시기가 정해진 이유는. 

  “윷 만드는 싸리나무는 여름에 베면 안 돼. 여름에 베면 물이 올라 껍질이 벗겨진단 말이야. 그래서 주로 겨울에 나무를 해오는 거라. 생나무로는 못 만드니께네 여름까지 나무를 말려 놓지. 말린 나무로 12월~2월에, 그러니까 겨울 동안 지난해에 말려놓은 나무로 윷 만들고 또 나무 베러 가고. 여름에 윷은 못 만들고 농사짖고 그래. 고추하고 약초하고 뭐.” 

  -제조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나. 

  “첫째로 나무를 구하는 게 제일 어려워. 산이 우거지고 해가 싸리나무가 거의 없어.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나를 수도 없고. 또 나무가 똑바른 게 없어요. 다 옆으로 휘어지면서 자란단 말이야. 추운 겨울에 산에 가니께네 작업하기도 어렵지. 참, 나무를 어디서 사 올 수도 없고. 사람 사가지고 산에 올라가고 그러지.” 

  인생이란 윷놀이는 계속된다 
  전통의 가치는 높지만 이를 이어나갈 계승자를 찾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전통이 마주한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조교영 대표는 이러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력으로 세상을 직시하면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의 여정엔 소박하고 꾸밈없는 바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윷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제작할 때는 기분이 좋더라고. 누가 내가 만든 걸 가지고 놀고 하면 행복하고 좋지. 옛날 윷을 재현했다는 자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있으니께네 자부심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안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께네 보람도 느끼지.” 

  -언제까지 윷을 제작하실 예정인지.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하지. 건강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못 하지. 나이가 칠십 오살이니까, 이제 사람 일은 잘 모르잖아. 내일 당장 힘이 없고 아플 수도 있는 거고. 언제까지 한다는 것도 없고 하다가 못하면 그런 거지 뭐.” 

  -안타까운 일이지만, 만약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전통 방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지. 그런데 우예겠노. 누가 배우려고 한데. 안 할라 그러지. 이거 만들어가지고 1달에 100만원, 200만원 받고 젊은 사람들이 하겠나. 영감들이면 몰라도. 윷이 파는 데도 한계가 있고. 크게 돈이 되지는 않는단 말이야. 돈이 안 되는데 할 사람이 거의 없지. 세상은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거든. 시대가 변천하니께네 어떻게 방법이 없어. 그래도 윷놀이는 앞으로도 계승되긴 할 거야. 발전은 안 돼도 명맥은 이어가지 싶어.” 

  -꿈이 있다면. 

  “큰 꿈은 없어. 부자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앞으로도 이걸 취미로 하면서 긍정적인 것을 느꼈으면 해. 없으면 어떡하겠냐마는 그래도 누가 이어서 윷을 맨들면 좋기는 하겠지.” 

  -마지막으로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농사를 지을 때 뭐든 심어놓고 물 안 주고 풀 안 뽑아주면 죽어. 내가 열심히 하면 농사가 잘되고 열심히 안 하면 안 돼. 또 농사를 천심이라 그러거든. 하늘의 뜻이라는 거지. 근면하게 살되 너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거라. 20대에는 힘도 있고 용기도 있잖아. 노력해서 인생을 잘 가꾸면 좋겠지.” 

솥에 찐 싸리나무는 5~6개월동안 건조된다. 반년정도 말린 나무를 조교영 대표가 다듬어 윷 모양으로 만든다. 윷 형태를 갖춘 나무는 다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조교영 대표에게 선택받아 완성된 윷을 윷판 위에 던져 봤다.
솥에 찐 싸리나무는 5~6개월동안 건조된다. 반년정도 말린 나무를 조교영 대표가 다듬어 윷 모양으로 만든다. 윷 형태를 갖춘 나무는 다시 선별 과정을 거친다. 조교영 대표에게 선택받아 완성된 윷을 윷판 위에 던져 봤다.                                                                                                                                     사진 김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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