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생활 모습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낯설고 어렴풋한 단어로 느껴지진 않나요. 전통에 대한 막연함을 생활면이 변화 시켜 드립니다. 생활면은 선조가 전해주고 후손이 널리 통하게 한 전통을 소개합니다. 이번주는 대한민국의 소리, 국악을 만나봤습니다. 흥겹기도 때론 구슬프기도 한, 우리 삶의 장단에 빠져봅시다! 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궁중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정악단은 을 비롯한 다채로운 궁중음악을 계승하는 연주단을 말한다. 사진출처 국립국악원

국악이 멀고 낯설게만 느껴지는가? 이미 국악은 가랑비에 옷 젖듯 당신의 귓가에 스며들어 있다. 수도권 지하철 환승역에서 울려 퍼지는 김백찬 작곡가의 <얼씨구야>는 우리 일상을 무대로 여는 국악 한마당이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흐르는 국악 선율이 지친 출퇴근길에 단비처럼 내린다. 우리가 흔하게 즐기는 대중음악 속에서도 국악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현대 대중음악의 기본 장르인 ‘POP’에 전통을 뜻하는 ‘조선’을 붙여 ‘조선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국악은 세련된 전통이라는 역설적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국악에 귀 기울여보자. 

  예와 틀을 갖춘 음악 
  국악은 여러 종류로 나뉘지만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정악은 바른 음악이라는 뜻으로 양반가와 궁중에서 연주되던 상류계층의 음악이다. 일반 백성이 즐기던 음악은 민속악이라고 한다. 유대용 교수(국악교육대학원)는 정악과 민속악의 음악적 표현 방식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정악은 대체로 느리고 장중한 느낌이 나요. 감정을 절제하면서 담담하게 표현하죠. 이와 달리 민속악은 박자감이 다채로워요. 솔직한 감정이 담겨있죠.” 

  궁중 의식에서 연주됐던 <종묘제례악>과 <수제천>이 대표적인 정악으로 꼽힌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연주하는 곡이다. 종묘제례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 공신에게 바치는 유교 의례이기 때문에 조선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이용식 교수(전남대 국악학과)는 종묘제례악을 기악, 노래, 무용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공연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정전 앞 계단 위에서 기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등가’, 계단 아래에서 노랫말이 있는 곡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라고 해요.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구성이랍니다. 이와 함께 64명의 무용수가 동원되는데, <보태평>과 <정대업>에 맞춰 각각 문무와 무무라는 무용을 펼쳐요.” 

  <종묘제례악>은 조선 세종 때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세조가 제례에 맞춰 편곡하면서 <종묘제례악>이 완성됐다. 이용식 교수는 <종묘제례악>이 조선 시대 역대 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보태평>은 조상의 문덕을 기리고 <정대업>은 조상의 무공을 찬미하는 내용이에요.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보태평>과 <정대업>은 국악 곡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음악이죠. 이런 역사성과 예술성으로 인해 <종묘제례악>은 1964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어요.” 

  오색찬란한 삶의 소리 
  민속악은 민족의 정서가 함축된 음악으로 민요, 농악, 판소리 등이 포함된다. 판소리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각종 장단에 얹어 노래하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소리꾼의 노래, 아니리(말), 발림(몸짓)과 고수의 북 반주, 추임새로 이뤄진다. 농악은 주로 세시 명절에 나쁜 기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며 즐기던 노래다. 특히 정월대보름에 마을굿을 거행하면서 농악을 연주했다. 민요는 여럿이 모여 일을 하다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던 노래에서 시작됐다. 이용식 교수는 민요 속에 백성들의 생활,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이야기했다. “민요를 전통적으로 ‘소리’ 또는 ‘노래’라고 불렀어요. 일상 속 말소리처럼 민요는 생활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죠. 노래는 놀이라는 말에서 비롯됐어요. 민중의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요가 불렸음을 알 수 있답니다.” 민속악은 지역별로 특징이 다채롭게 나타난다. 이용식 교수는 민요가 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악이라는 점을 통해 민요의 지역 특색을 설명했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다르듯이 민요의 음악적 특징도 지역에 따라 달라져요.” 

<br>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있다. 민속악단은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민속악 분야의 연주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출처 국립국악원
<br>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공연 모습이다.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6 호로 지정됐다. 사진출처 국립국악원

  시간을 달리는 퓨전 국악
  개화기를 거치며 서구문물이 선진적이라는 사회 인식이 차츰 퍼져나갔고 국악은 대중의 삶 속에서 한 발 멀어졌다. 유대용 교수는 한류가 확산되면서 국악이 부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화 사대주의가 사라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긍지가 싹트고 있어요. 퓨전 국악의 세상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최근 국악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퓨전 국악이 호평을 끌어내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국악을 다른 요소와 혼합하는 모험은 오래전부터 계속돼 온 일이다. 

  1970~80년대에는 국악을 근간으로 독창적 작품을 선보인 음악가 김민기와 김영동이 있었다. 김민기는 민요를 바탕으로 한 저항 음악을, 김영동은 국악을 현대화한 창작 음악을 선보였다. 이용식 교수는 이들의 노력을 토대로 현대 퓨전 국악이 태동했다고 말했다. “김영동은 영화음악과 무용음악을 통해 현대적 국악의 가능성을 열었어요. 이런 도전이 있었기에 후배 가수들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어갈 수 있었죠.” 

  대중음악과 국악을 혼합하는 시도는 199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는 헤비메탈 반주에 태평소 독주를 입힌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코메리칸 블루스(Komerican Blues)>도 국악을 이용해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펼친 곡이다. 故신해철이 보컬로 있던 넥스트는 해당 노래에서 사물놀이 연주와 명창 남궁정애의 판소리를 활용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 지누션의 <에이요(A-Yo>처럼 민요를 덧대거나 전통악기를 접목한 노래들이 발매됐다. 2010년이 넘어간 뒤에도 딥플로우의 <작두>처럼 샘플링, 악기 추가와 같은 작법을 통해 여러 곡이 국악과의 교감을 모색했다. 지난해 국악 열풍의 시작을 알린 이날치는 판소리를 대중적으로 재구성한 밴드다. 이날치의 <범 내려 온다>는 리듬감 넘치는 대목을 더욱더 흥겹게 현대적으로 조직해 베이스, 드럼 비트와 합쳤다. 그러자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 슈가는 조선 시대 왕이 행차할 때나 군대가 행진할 때 주로 쓰인 군례악 <대취타>에 힙합을 입혀 재창조했다. 슈가의 <대취타>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우고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퓨전 국악의 흐름 속에 생긴 변화를 설명했다. “초기에는 다른 장르 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해 국악을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전통음악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죠.” 

  공감각적으로 마음을 울려라 
  국악은 음악적 변주를 넘어 여러 방면으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영화, 뮤지컬과 드라마에서도 국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소리꾼>은 우리의 정통 소리를 한국적인 뮤지컬 장르로 구현한 영화다. 시의 운율과 힙합 라임의 유사성에 착안해 국악과 힙합을 결합한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2019년 초연에도 매진 행렬이 벌어졌고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3관왕에 오르며 평단과 대중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뮤지컬과 더불어 드라마에서도 국악을 만날 수 있다. 퓨전 국악과 그에 맞는 춤으로 기획한 국악 드라마 <조선 팝스타>가 제작 준비 중이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국악이 유통되는 창구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국악이 활용되고 있어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는 서사구조를 기반으로 하죠. 서사 속 감정선은 음악과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에 국악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하리라 기대해요.” 이용식 교수는 국악이 여러 감각을 자극해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대 사회는 음악이 단순한 청각적 만족을 넘어 다양한 감각적 만족을 가져와야 하죠. 국악이 현대인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뮤지컬, 영화 등 시각예술과 함께 호흡해야 해요.” 

  어제에서 내일을 찾다
  국악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국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국악을 주목받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료의 특성을 모르고 요리하면 조화로운 맛이 나지 않아요. 본 재료의 맛을 깊이 있게 살리면서 현대의 입맛에 맞는, 그러면서도 새롭고 놀라운 맛을 찾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해요.” 유대용 교수는 전통 교육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래 신화, 전설, 민담 등을 교육해 젊은 세대에 영감을 제공해야 해요. 전통 국악의 조기 교육도 중요하죠.”

<br>
한한국관광 해외홍보영상 속 한 장면이 다. 이날치의 가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캡쳐

 

뮤지컬 공연 사진이다. 시조가 국가 이념인 상상 속 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사진제공 PL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