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그래왔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당장 눈앞의 차별에 등을 돌리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리를 옮기기도 하죠. 그러나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음을 알기에 다시 마주 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번학기 사회부는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차별을 마주보고 여러분과 함께 당찬 발걸음을 내딛어보려 합니다. 이번주는 ‘선거권·피선거권 나이제한’으로 인해 당연한 듯이 차별받아온 국민들과 발걸음을 맞춰보겠습니다. 김예령 기자 kduaud@cauon.net

일러스트 김예령 기자

뽑을 권리, 뽑힐 권리
그 앞에 숫자는 없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회
미성숙한 국가를 만든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철이 되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문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정치적 책임감을 지닌 채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조건이 필요하다. 민주적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 조건은 과연 바람직할까? 선거권과 피선거권, 그 실상을 알아보자. 

  선거권과 피선거권, 그 발자국을 따라 
  현재 우리나라는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18세 이상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권을 가진다. 또한 25세 이상 국민에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피선거권을, 40세 이상 국민에게 대통령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연령 기준은 언제부터 있던 걸까?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광복 직후인 1947년에 규정된 「입법의원의원선거법」에서부터 법적으로 명시됐다. 23세 이상 국민부터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피선거권 연령 제한은 25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후 UN한국위원회가 「제헌국회선거법」에 개입해 국회의원 선거권 연령을 만 21세로 수정했다. 반면 피선거권 기준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통령 선거권·피선거권의 경우 첫 직접선거가 시행된 1952년에 처음으로 명시됐다. 이승만 정부는 「대통령·부통령선거법」을 제정해 선거권은 만 21세, 피선거권은 만 40세 이상으로 연령 제한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1960년 내각책임제 채택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한편 3차 개헌을 통해 공무원 선거권 연령 제한은 20세로 하향됐다. 

  이후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고 또 한 번의 변화가 발생한다. 김영삼, 이철승, 김대중 등 30대 ‘젊은 기수’를 견제했던 그가 5차 개헌을 진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63년부터 기존 법률에 명시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헌법에 명문화됐다. 이후 전두환 정부가 8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대통령을 선출했고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30세 이상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면서 대통령 피선거권 자격이 40세 이상 국민으로 규정돼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이후 선거권 연령 제한은 비교적 점진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될 당시 민법상 성년 연령인 20세에 선거권을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2002년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을 위한 ‘낮추자 운동’이 진행됐고, 이에 따라 2005년 「공직선거법」 제정과 함께 19세로 선거권 연령 하향이 결정됐다. 2017년엔 청소년 참정권에 목소리 내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설립됐고 결국 지난해 동법 개정이 이뤄지며 18세 국민도 선거가 가능한 오늘날의 법이 만들어지게 됐다. 

  선거권 부여 연령, 기준의 적절함이란 
  선거권을 부여하는 자격으로 연령이 기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진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선거권 부여 연령에 제한을 두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해석한다. “선거는 민주주의 대의의 출발점이에요.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사업을 처리할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인 판단능력이 있어야 하죠. 너무 어릴 경우 판단 능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기에 일정한 연령 기준이 필요해요.” 이어 그는 선거권 부여 연령이 너무 높게 설정되는 것 또한 불합리한 제한일 수 있으니 적절한 기준을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황희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전 세계에 선거권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 국가는 없다며 그 기준의 필요성을 말했다. “선거권은 선과 정의, 공익 같은 추상적 관념에 관한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더불어 사회문제에 자신의 입장을 구체화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적정한 시기를 정해야 할 테죠. 그것을 정하는 역할은 입법자 몫이고요.” 

  그러나 그는 선거권 연령 제한이 민주주의 원리를 제약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선거권이 없는 국민은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조차 관여할 수 없어요. 또한 정치인들은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를 의식하기 마련인데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없다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겠죠.” 정치 참여의 영역에서 청소년들이 쉽게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령 제한이 곧 차별로 
  피선거권 부여 연령 기준은 바람직할까? 서찬석 교수(사회학과)는 청년이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데에 있어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 초기 성장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피선거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경우에는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근본적인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납세 의무 불이행이 문제라면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성인들도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하고 지식과 능력의 문제라면 성인들 중에서도 피선거권을 박탈당해야 할 사람들이 있겠죠.”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역시 피선거권 연령 기준이 선거권 연령 기준과 달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누가 공직자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에요.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조차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이 피선거권 연령 제한의 문제죠. 현재 국회의원 중 2030 세대가 약 4%에 불과한데, 이처럼 청년들은 정치에서 과소 대표되고 있어요. 청년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피선거권 연령 제한은 조정돼야 마땅해요.” 그는 자의적인 국회의원 및 대통령의 연령제한 기준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피선거권 연령 제한으로 나이가 어린 국민들이 겪는 피해도 있었다. 김민결 녹색당 당원은 이러한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결국 청소년을 향한 차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피선거권 연령 제한 때문에 청소년의 시선으로 문제 사안을 바라보지 못해 정책 개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죠. 청소년인 제 동생은 동 주민센터나 병원도 혼자 가지 못하고, 필요한 서류도 뗄 수 없어요.” 청소년과 같은 처지에 위치한 정치인이 없어 문제가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차별이 나이주의를 견고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의 영역에 있어 연령을 기준으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옳은지, 그 연관관계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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