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은 오래전에 살았던 동식물의 유해나 활동 흔적 따위가 퇴적물에 매몰된 채 남아 있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동시에 변화하거나 발전하지 않고 어떤 상태에서 돌처럼 굳은 모습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술작품에도 화석이 존재하는데요. 화석만큼이나 오래된 고전 작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우리 일상에 친숙하게 녹아들어 그 모습을 다르게 하고 있죠. 아무리 화석작품이 변모했다고 해도 화석은 화석인데요. 어떻게 변신했는지 경로를 한 번 추적해봅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세기에 집필된 두 남녀의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당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로미오와 줄리엣』은 16세기에 집필된 두 남녀의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당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성적인 줄리엣, 감성적인 로미오 
10대만의 낭만과 열정을 담아내다

혹자는 이 세상 모든 어휘가 사라진다 해도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한 단어로 ‘사랑’을 꼽았다. 사랑 이야기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경을 막론하고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로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윌리엄 셰익스피어 씀)을 꼽을 수 있다.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색다른 매력을 샅샅이 살펴봤다. 

  사랑의 불씨를 불꽃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4년부터 1598년 사이가 집필년도로 추정되는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단 5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해당 작품은 원수지간에 놓여있는 두 가문의 자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의 서사를 담고 있다. 전체 5막 중 1, 2막은 매우 코믹한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의 죽음을 기점으로 극의 후반부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안병대 교수(한양여대 실무영어과)에 따르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대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씀) 다음으로 인기 있는 공연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성공은 이후 『한여름 밤의 꿈』 등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 집필에 영향을 줬어요. 또한 1750년에서 1800년까지 이 작품이 공연되지 않은 해는 단 한 해뿐이었다고 해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어떤 점이 당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것일까. 이현우 교수(순천향대 영미학과)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5일 만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크게 3가지 배경적 장치를 설정했다. 첫째, 두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배경을 이탈리아로 한다.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의 기질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둘째, 계절적 배경을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무더운 여름으로 둔다.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는 중심인물의 연령대를 10대로 설정했다. 줄리엣은 14살, 로미오는 17살 남짓의 어린 나이로 묘사된다. 이에 이현우 교수는 순수한 나이의 청소년들이기에 이런 불꽃 같은 사랑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안병대 교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순수한 사랑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주어진 상황, 조건, 운명에 담대하게 맞선다는 점에서 강력한 사랑의 힘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이룬 사랑의 승리 신화를 그려낸 서사라고 생각해요.” 

  고전 속 여성상? 여긴 아니야 
  16세기라는 고전적 시대 배경에도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수동적인 여성 인물이 거의 없다. 이들은 대개 아버지에 저항해 집을 나가는 등 가부장적 사회에 반항하는 진취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다. 줄리엣은 굉장히 용감하고, 정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로미오는 보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이현우 교수는 두 인물의 대비되는 성격을 극 중 대사를 통해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을 분석해보면 로미오는 감정적인 대사들이 많아요. 반면 줄리엣의 대사는 로미오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진보적이에요. 당시 영국을 위대하게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롤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어 그는 로미오의 부족함을 현실 속 문제아의 모습에 비춰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줄리엣 같은 캐릭터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요. 14살짜리 아이가 그토록 훌륭한 언어를 사용하고, 지혜로우며 도전적이라는 건 말이 안 되죠. 반면 줄리엣보다 덜 똑똑하고, 문제를 잘 일으키는 감성적인 로미오의 모습이 현실의 청소년과 오히려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 저항을 그리다 
  박우수 교수(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결말이 당대의 시대적 고민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유럽 르네상스 시기 제기된 문제는 한 개인의 가치가 본인이 귀속된 혈통과 자신의 행동 둘 사이 어디에 있는가였어요. 그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마무리된 근본적 원인은 양가의 갈등이잖아요. 가문의 대립으로 상징됐던 전통과 사랑으로 표현됐던 개인 자유의지 간 투쟁에서 개인의 의지가 패배했음을 이들의 비극으로 나타낸 거예요.” 

  해당 작품의 서사는 사랑에서 나아가 시대에 저항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이현우 교수에 의하면 사랑의 방해물로 등장하는 구시대적 부조리를 극복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시대에 대한 대항으로 이어진다. “줄리엣은 여성을 재산의 일부처럼 취급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캐릭터예요. 또 가사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죽으면 어떡하나 고민하다가도 결국 독약을 마시는 모습은 인간적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죠.” 

  “아, 로미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란 말입니까?…중략…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인데”(2막 2장 33행, 44-45행 발췌)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는 향기로운 꽃임이 분명하다. 셰익스피어는 향기로운 꽃에 걸맞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줬다. 과연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문의 이름 아래 이뤄질 수 없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기에 더욱 아련하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로 남아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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