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물이 탄생하는 봄이다. 그중에서도 3월은 생명의 달로 일컬어진다. 많은 사람이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전경을 만끽하기 위해 나들이를 하러 가고는 한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 또한 꽃 축제를 즐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활짝 핀 꽃과 푸르른 나무를 볼 때만큼 시들어가는 꽃과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오랜 시간 눈길을 준 적이 있는가? 

모든 생명은 늙고 죽는다. 자연의 섭리라고 볼 수 있는 이 흐름을 인간의 생애에 빗대어 다시 질문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청춘만큼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 있는가? 통계청은 지난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의 15.7%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하여 2025년에는 20.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밝혔다. 본 자료는 노인 계층이 우리 공동체에 큰 비율을 차지하며, 향후 그 영향력이 지대해질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어둡다. 주원인으로는 복지비용·일자리 문제에 대한 청장년층의 불만, 노인 세대의 유교적 가치관과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 대립 등이 있다. 

이해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세대 간의 충돌은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왔다. 다만 여기서 짚고 가야 할 오늘날의 문제점은, 신체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 면에 있어 비교적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젊은 세대가 해당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갈등 해결보다는 또 다른 혐오 감정을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 인권침해와 그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청년 중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동시에 젊은 층이 주를 이루는 매스컴에서는 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이라는 뜻의 ‘틀딱’, 연금을 축낸다는 뜻의 ‘연금충’ 등과 같은 노인 혐오단어가 확산하였다.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노인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여 이내 차별적 대우로 변모한다. 연쇄적으로 홀몸노인의 증가나 고독사와 같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노인 계층은 연로의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약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까지 빼앗기며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제약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낙화(落花)하는 꽃나무에도 봄은 있었다. 뿌옇게 변한 노인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반세기 전 그의 젊은 에너지를 마주한다. 뒤를 이어 언젠가 늙고 쇠할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노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노인 계층을 향한 혐오의 부당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된다. 파르르 떨리는 노인의 두 손이 일궈낸 오늘날의 세상에 약자를 향한 날 선 시선이 사라지기를 꿈꾼다.

정지연 학생
프랑스어문학전공 1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