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진도 출신 아는 분이 던진 농담이 기억난다. 진도 사람 중에는 태어나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진도가 세 번째로 크고 거제와 비슷한 크기의 섬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농담이었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 살던 사람이 섬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면 바로 섬에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은 지도를 먼저 보고 섬에 살고 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섬이다. 섬을 이렇게 정의해보자.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 육로를 통해서는 인접해있는 대륙의 다른 나라로 직접 갈 수 없는 지역’이라고. 그렇게 보면 대한민국은 섬이다. 다만 이 섬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대륙에 붙어 있으니 섬이 아니라고 믿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깊이 섬 의식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섬에 살고 있다는 의식은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섬사람의 발목을 잡을 몇 가지 편견을 생각해보자. 

  첫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육지로부터 격리돼 있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육지와 인접해 있다면 그 사실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딪힘, 갈등, 협상, 분쟁이 있지만, 섬은 거기서 자유롭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섬 바깥의 일들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둘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육지로부터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동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위험은 바깥에서 오고, 특히 예전에 이 섬을 차지해보려는 욕심을 가졌던 외부인들이 여전히 위험의 실체라고 생각하게 된다. 셋째,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세계와 떨어져 고립된 역사와 삶을 살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세계와 연결지어서 생각해보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역사를 쓰고 싶어한다. 넷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동질적이고 또 역사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섬에 세워진 제도들은 모두 자신들이 만들었고 또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류학에 ‘카고 컬트(cargo cult)’라는 다분히 유럽중심주의적 분석이 있다. 자신의 조상이 어느 날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면서 엄청난 물량의 하물(cargo)을 싣고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유럽 식민 지배자들의 넘어설 수 없는 권력과 그들에 의해 변한 현실을 배와 비행기라는 상징물을 통해 이해한 다음 그것이 자신의 섬 의식으로 뒤바뀌어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다. 많은 판타지 드라마에서 드러나듯, 위대한 군주의 재림을 꿈꾸며 군주에 청원해 적들이 소멸되는 천년왕국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소망은 섬이라는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해주지만 섬을 넘어서는 사고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Ignorantia non est argumentum!” 스피노자가 남긴 말이다. “무지는 논거가 될 수 없다.” 폭력에 기대거나 환상에 기대는 경우를 빼고는.

백승욱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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