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빚고 자연이 구운 달빛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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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균 작가의 'Moonlight_달빛' 전시

오늘,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시나요? 본인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고자 공부에 열중하기도,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죠. 이렇듯 우리의 하루는 저마다 의미를 지니며 흘러갑니 다. ‘전통에 스며든 오늘’은 이런 여러분의 오늘에 특별함을 선물합니다. 이번 생활면에서는 우리의 삶을 담는 도자기로 전통에 스며들었는데요. 하늘에 밝게 떠 있는 달의 빛깔을 도자기에 표현한 신경균 작가도 만 나봤습니다. 우리 함께 일상을 빚으러 전통으로 떠나볼까요. 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도공의 가슴이 가마(窯)가 되고
시인의 열정이 불길이 되어’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각국 정상이 참석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환영리셉션장에는 특별한 달이 하나 떠 있었다. 바로 신경균 작가의 백자 달항아리다. 그로부터 약 3년이 흐른 지금, 신경균 작가는 <Moonlight_달빛> 전시를 진행 중이다. 각자의 달빛을 머금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항아리 13점은 세상을 수놓은 다채로운 얼굴 같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채워진 세상처럼, 전시장은 각기 다른 달항아리의 숨결로 가득 차 있다.

  투박하게 찬란하게
  달항아리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태어났다. 가마에서 그릇을 구울 때 값비싼 청화백자를 보호하기 위해 앞에 뒀던 도자기가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는 보통 높이가 40cm를 넘을 정도로 크다. 신경균 작가는 달항아리가 크게 만들어진 이유를 불막이 역할과 함께 설명했다. “청화백자는 크기가 커서 불길을 고르게 하는 장치를 씌울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재도 튀고 불길이 쏠려서 위험하죠. 그래서 청화백자를 가릴 수 있을 만큼 달항아리를 크게 만들어 불막이로 썼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간장 용기, 식기 등 일상생활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달항아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조명받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다. 작업 초기에 신경균 작가는 주로 생활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는 달항아리 작업이 생활도자기 작업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약간 차이는 있지만 달항아리와 생활도자기는 결국 같은 개념이에요. 불을 때고 흙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 않아요.” 

  신경균 작가는 조선 찻사발 ‘이도다완’을 재현한 신정희 선생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 속에서 자랐고 열다섯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물레 등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어릴 때 배운 전통 방식으로 소나무 장작, 흙, 유약을 만들고 전통 장작가마에서 도자기를 굽는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려면 엄청난 정성을 쏟아야 하지만 신경균 작가는 이런 노력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과정이 소중하다는 데 초점을 둔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해요. 과정을 철저히 밟았을 때 귀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죠. 유럽 명품의 섬세한 작업이 높게 평가되듯 우리 전통 작업도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해요.” 

  과정의 아름다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깨지고 뒤틀린 도자기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다. <응시>(사진 중앙, Ø38.3cm x 38.5cm, White porcelain with underglaze iron, 2018. ⓒ이시우)에는 굽는 과정에서 일부분이 찢어진 흔적과 장작가마 천장에서 떨어진 흙 자국이 남아있다. 신경균 작가는 도자기가 손상되는 경우를 설명했다. “가마 내부는 용암이 흐르는 정도까지 온도가 올라가요. 그러다보니 천장의 흙이 녹아서 떨어지거나 도자기가 갈라지기도 하죠. 10개 구우면 3~4개는 그렇게 돼요.” 손상된 도자기는 보통 버려진다. 하지만 도자기 제작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던 신경균 작가는 깨진 달항아리를 <응시>라는 이름으로 전시했다. “전통 제작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했어요. 깨진 틈으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특징에서 <응시>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요변이 입혀진 <천홍>과 <월인천강>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요변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마에 불을 때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효과다. 신경균 작가는 불이 도자기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도자기를 만들 때 99%는 인간의 노력이지만 나머지 1%는 불의 역할이랍니다.” 그는 이 두 작품이 간직한 요변의 인상을 오로라에 비유했다. “극지방의 오로라는 나타날 때도 있고 안 나타날 때도 있어요. 때마다 자연적으로 형상이 달라지기도 하죠. 요변이 마치 오로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도자기의 촉감, 삶의 감각 
  좋은 도자기는 ‘지·수·화·풍’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 완성된다. 이와 더불어 신경균 작가는 관객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지·수·화·풍도 물론 중요하지만 좋은 도자기라는 답은 관객이 내리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관객이 모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죠. 도자기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야 좋은 도자기가 나와요.” 관객이 도자기를 제대로 느끼게 하려면 시각만으로는 부족했다. 신경균 작가는 전시 작품에 관객의 손길을 허락하고 있다. 그는 한국 도자기의 우수한 특성이 바로 촉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일본 도자기는 표면이 차갑고 유리 같아요. 그런데 한국 도자기는 제각기 촉감이 달라 개성있죠. 이걸 느껴보지 않고 눈으로만 보면 의미가 없어요.” 

  삶은 전통을 써 내려간다. 그렇기에 전통은 살았던, 살아갈 우리의 삶이다. 신경균 작가에게 전통은 이 땅에 체화된 모든 것이다. “전통은 계속 진화·발전하는 거예요.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박제되잖아요.” 그는 전통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과거부터 해온 걸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거예요. 과거, 현재, 미래는 저에게 같은 의미예요.” 

월인천강, Ø46.2cm x 49.5cm, White porcelain, 2015. 노블레스 컬렉션 제공 ⓒ이시우
<월인천강>, Ø46.2cm x 49.5cm, White porcelain, 2015. 사진제공 노블레스 컬렉션 ⓒ이시우 
<Moonlight_달빛> 전시 전경이다. 다음달 16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볼 수 있다. 사진제공 노블레스 컬렉션 ⓒ김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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