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봄소리 배우 (연극전공 11학번)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1.03.2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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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널리 퍼질 봄이 오는 소리

활발하며 소탈하지만 교과서 같은 배우. 이봄소리(연극전공 11학번)배우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실제로 만난 그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무대 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최고가 되기보다 행복을 깨달으면서 살고 싶다는 이봄소리 배우. 오랜 연기 생활 동안 단단해진 마음가짐이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사진제공 이봄소리
사진제공 이봄소리

 

“배우라는 직업은 버티는 사람이 이겨요.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뜻은 아니에요. 나무를 흔들어보기도 하고 발로 차 보기도 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안 한 사람보다는 감을 많이 먹지 않을까요?”

이봄소리 배우(연극전공 11학번)에게 배우란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중학교 때부터 연기를 배우며 오랜 시간 무대에 서 왔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발성과 발음, 즉 연기의 기본이다. 무대를 보러오는 관객이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극장으로 발걸음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여전히 공연의 첫 무대는 떨린다고. 늘 관객을 생각하며 온 마음 다해 연기하는 이봄소리 배우를 만나봤다. 

  -활동명 ‘이봄소리’에 담긴 뜻이 궁금하다. 

  “말 그대로 봄이 오는 소리였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 오디션을 보면 감독님들도 본명 ‘김다혜’를 많이 헷갈리시고 기억을 잘 못 하시더라고요. 예전부터 활동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전 소속사의 김수로 대표님이 ‘봄소리’라는 이름을 제안해주셨는데, 듣자마자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활동명으로 정했죠. 신기하게 사람들이 계속 불러줘서인지 이름을 바꾸고 일이 더 잘 되는 느낌이에요.” 

  -중앙대 연극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중학교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어요. 뮤지컬로 유명한 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중앙대는 입시 경쟁률이 높은 학교여서 다들 엄두를 많이 못 냈어요. 하지만 저는 중앙대가 아닌 다른 학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중앙대에 전부를 쏟았죠. 고등학교 선생님이 ‘너는 중앙대 스타일이 아니다, 중앙대 못 간다’고 했음에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열심히 했죠. 운 좋게 합격해서 의혈 중앙인이 될 수 있었답니다.” 

  -재학생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지금과 똑같이 활발하고 털털했어요. 학교생활 자체가 재미있어서 엄청 열심히 하고 무슨 일이든 즐겁게 했죠. 체육대회나 학과 대청소에도 빠지지 않았고요. 그러면서도 꾀부릴 줄 모르는 교과서 같은 학생이었죠. 연극전공 부학생회장을 한 경험이 있는데, 시간 약속 잘 안 지키거나 수업 시간에 허튼짓하는 모습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 면 때문에 저를 무서워하는 후배들이 있었을 거예요.(웃음)” 

  -재학생 때 올린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뮤지컬 <아랑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랑’이라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창작하면서 행복했던 기억 덕분에 작품에 애착이 커요. 또 <아랑가>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 연극학교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어요. 제가 최우수연기상도 받았고요. 그때 다 같이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 과에서 열심히 제작한 <아랑가>가 결국에는 상업 뮤지컬 작품으로도 탄생했고 감사하게도 <아랑가> 초연에서 ‘아랑’도 맡았답니다.” 

  -뮤지컬 <롤리폴리> 앙상블로 데뷔했다. 당시 무대의 느낌이 어땠는지.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 즐겁고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춤을 못 추니 엄청 혼이 나기도 했고 출연을 못 하는 장면도 생기더라고요. 어느 정도 춤추고 노래할 줄 알면 앙상블을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죠. 앙상블 하면서 힘들었지만 또 많이 배웠어요.” 

  -무대에서 연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배우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잖아요. 기본적으로 발음이나 발성이 좋아야 해요. 대사를 할 때 상대 배우나 관객에게 잘 들리는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는지 많이 생각하죠. 맡은 역할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역할만 바라보면 쓸데없는 욕심이 생겨요.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도 극에 녹아들어야 하는데 나만 돋보이려고 할 수도 있거든요. 역할의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작품 속에서 잘 녹아들 수 있고 보는 이가 불편하지 않을지 고민한답니다.” 

  -똑같은 공연을 몇 번씩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 않나.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어요. 무대에 서면 관객석에서 오는 기운이 있거든요. 무대가 주는 무서운 긴장감이죠. 매번 다른 관객이 매번 다른 모습의 무대를 보러 오잖아요. 관객분들이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무대를 보러 오시는지 알기 때문에 감히 매너리즘에 빠질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아프거나 힘들어서 쉬고 싶더라도 무대에 올라가면 스위치가 ‘탁’ 켜지듯 집중이 되고 마음가짐도 바뀌어요.” 

  -역할을 고를 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한다고. 그런 부분과 가장 맞닿아있는 역할이 있었다면. 

  “뮤지컬 <차미>의 ‘차미’요. 차미는 SNS 속 가상의 인물이에요. 처음에는 차미를 웃긴 캐릭터에 공주병이라고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차미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 좋거든요. Love Yourself, 너 자신을 사랑하라. 또 용기와 희망,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답니다. ‘이 작품 웃기네’ 하면서 보다가 집에 갈 때는 따뜻하게 용기를 안고 갈 수 있는 작품이에요. 사실 제가 연기한 역할 대부분이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마리 퀴리>의 ‘안느’ 또한 마찬가지고요.” 

뮤지컬 「아랑가」 초연 포스터, 「마리 퀴리」의 ‘안느 코발스키’, 「차미」의 ‘차미’의 캐릭터 포스터. 이봄소리 배우의 중앙대 재학시절 당시 창작한 음악창작극 「아랑가」가 뮤지컬 「아랑가」의 초석이다.
뮤지컬 「아랑가」 초연 포스터, 「마리 퀴리」의 ‘안느 코발스키’, 「차미」의 ‘차미’의 캐릭터 포스터. 이봄소리 배우의 중앙대 재학시절 당시 창작한 음악창작극 「아랑가」가 뮤지컬 「아랑가」의 초석이다.

  -지난해 출연했던 작품이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전부 노미네이트됐고 조연상도 받았다. 

  “지난 1년이 너무 보람차고 값진 해였고,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 줬죠. 지난해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배우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노미네이트 되기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그러면서도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상을 받으면서 초심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릴 때 시상식을 챙겨보면서 저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참여한 작품이 노미네이트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꿈처럼 시상식 자리에 가 있었고 참여했던 모든 작품이 노미네이트됐고 심지어 조연상도 받았죠. 아직도 시상식 날은 안 잊혀요. 앞으로 인생에서 초심을 잃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아주 큰 추억이 생긴 셈이죠. 상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로요. 아직도 ‘수상소감 준비 좀 멋지게 할걸’ 하고 후회해요.(웃음) 너무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더 선물같이 느껴졌답니다.” 

  -코로나19로 공연계에 위기가 있었다. 참여했던 연극 <아마데우스>도 중단됐는데. 

  “이미 벌어진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 때 저 또한 힘들었죠. 마음을 편히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예를 들면 ‘지난해에 쉬고 싶었는데 올해 갑자기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네. 좋다.’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너무 감사하게도 공연이 재개되면 다시 열심히 참여했죠.” 

  -배우에게 불안함은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듯하다. 

  “직업이 굉장히 불안정하잖아요. 프리랜서이기도 하고요. 불안할 때는 계획을 세워요.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미리 저축도 해 둬요. 혼자서 인생 계획을 세우다 보면 불안함이 조금은 사라진답니다. 또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이 상황에서 발버둥 친다고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앞으로 사람 ‘김다혜’의 인생에서 목표가 있다면. 

  “최고가 되려고 억지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행복을 깨달으며 살고 싶어요. 자신이 잘못한 점이나 약점은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하지만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는 잘 모르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으면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성장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제 행복이 뭔지 알고 저를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제 인생의 황금 동아줄이었어요. 만약 중앙대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여태껏 쌓았던 경험도 못 했을 테고 좋은 사람도,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없었겠죠. 중앙대를 통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좋은 기회를 가졌고, 남들이 못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중앙대는 평생 저에게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의미일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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