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그래왔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당장 눈앞의 차별에 등을 돌리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리를 옮기기도 하죠. 그러나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음을 알기에 다시 마주 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번학기 사회부는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차별을 마주보고 여러분과 함께 당찬 발걸음을 내딛어보려 합니다. 이번주는 ‘정상가족 이데 올로기’로 인해 당연한 듯이 차별받아온 '한부모가족'과 발걸음을 맞춰보겠습니다.

일러스트 김예령 기자

본 기사는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 김은희 미혼모협회 아임맘 대표, 안소희 미혼모협회 인트리 사무국장, 김지환 한국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아빠의 품 대표 등 여러 단체 및 개인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기사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선택지 없는 기로에 서서
  “에구, 애가 애를 키우네!” 문을 나서자마자 차게 불어오는 칼바람에 A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혹여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서둘러 아이에게 귀마개를 씌웠다. 아이의 작은 손을 마주 잡으니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날, A씨는 겨우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불과했다. 분명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어느 순간 “쟤야?”하는 친구들의 수군거림을 견뎌내야만 했다. 선생님의 작은 관심마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A씨는 결국 도망치듯 자퇴를 택했다. 학교라는 사회로부터 일방적으로 내쳐진 그는 한순간에 학생이라는 신분도, 꿈도, 미래도 전부 박탈당한 기분이었다. 

  아이를 낳겠다는 A씨의 말 한마디에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문란하게 피임도 안 하고 뭐했니?”라는 부모님의 말 한마디는 아직까지 A씨의 뇌리에 상처로 박혀 떠나질 않는다. 계속되는 다툼에 지친 A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다. 

  가장 믿었던 가족과의 연까지 끊기니 현실적인 문제가 더욱 와 닿았다. 낙태를 하자니 당장 돈이 없었고 망가질 몸과 사회의 시선 또한 두려웠다. 아이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 입양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가정법원의 심사를 받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야만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등 절차와 조건이 까다로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A씨는 미성년자라 부모의 입양 동의까지 필요했다. 아이 아빠도 떠나간 마당에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서, 뱃속의 아기는 계속해서 자랐다. 

  축하 받지 못한 아이에게
  산후조리원에서의 기억은 B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다. 고생한 모든 산모들이 축하 받고 위로 받는 축제 같은 분위기 속, B씨는 홀로 이방인이었다. “아기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지나가던 사람이 무심코 건넨 말에 B씨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축하 받지 못하는 외로운 상황 속에서 B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에 고통 받았다. 

  요즘 B씨의 아이는 부쩍 가족에 대한 질문이 늘었다. “엄마! 다른 친구들 그림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다 있는데 우린 왜 둘뿐이야?”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내 아이에겐 결코 평범할 수 없다는 현실이 괴롭다. 아이가 기죽지 않고 밝고 행복하길 바라는 것마저도 욕심인걸까. 

  무능력함과 무력함, 그 사이 어딘가
  깊은 밤 C씨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대자 이마가 불덩이 같았다. 응급실로 뛰어가 독감 검사를 한 후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진료비 영수증엔 37만 원이라는 액수가 찍혀있었다. 아이의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마다 C씨는 제도에 화를 느낀다. C씨의 아이는 주민등록번호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다. 혼외 자녀는 기본적으로 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아이를 낳고 우울함에 시달리던 아이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을 찾아보다 사랑이법으로 아빠도 혼외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법원을 찾았다. 그러나 엄마의 연락처를 알기에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결국 다시 아이 엄마에게 출생신고를 부탁하기 위해 전화를 걸고 행방을 수소문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사이 출생신고 가능 기간인 한 달이 흘러 아이는 주민등록 말소자를 위한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받아 살아가게 되었다. 

  남은 건 친생자 출생신고를 위해 법률상담을 받아 소송을 하는 방법뿐이다. 태어나 국적을 얻어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가는 내 아이를 볼 때면 착잡하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 아이에게 주민등록번호 열 세자리만 있었으면….’ 

  조그마한 아이에겐 내가 세상일 테니 
  오늘도 D씨의 하루는 치열하게 굴러간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씻긴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겨우 밥을 먹인 후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니 벌써 출근할 시간이다.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회식을 하자는 부장님의 말에 오늘도 어김없이 그저 멋쩍은 웃음만을 내보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까지 어린이집에 홀로 남아 있을 아이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면 더욱 마음이 급해진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늦은 저녁을 먹고 비행기 놀이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와 몸을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쓴다.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은 D씨의 놓치고 싶지 않은 철학이다. 침실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가리킨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빨래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나면, 야속하게도 다음 날이 된다. 매일 반복되는 정신없는 하루에 D씨는 아이가 잘 자라주는 것 같아 뿌듯하지만 가슴 한편엔 우울한 마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채 느낄 시간조차 없다. 두 달 후 D씨는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상근예비역으로 가정에서 출퇴근을 할 수는 있으나, 훈련병으로서 군대에서 복무하는 기간 동안 아이를 돌봐줄 시설이 필요하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을 검색하다 서서히 잠드는 것이 D씨에겐 일상이 되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그의 컴퓨터 화면만이 밝게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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