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1960년대 겨울, 서울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난 청년들의 대화. 그런데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괴이하다. 형체 없는 의미의 단순 배열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대화다.  

  이들의 대화가 부자연스러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연대가 소멸한 공간에 남겨진 냉소와 회의가 상실감과 허탈감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다른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가 낯설지만은 않다. 당시 청년들의 초상인 25세 ‘김’, ‘안’과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사내의 모습이 우리 MZ세대(현 2030세대)의 오늘과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우리는 오늘을 살기조차 바쁘다.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한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층 표심’ 잡기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 이후 우리가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 당장 일자리와 주거 문제를 떠올리면 골치만 아프다. 먼 미래의 아득한 일들일 뿐이다. 모든 것이 무용해 보여도 무리는 아니다.  

  MZ세대인 우리가 무심함과 쿨함으로 무장한 ‘마이웨이’ 라이프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은 넘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반감 때문은 아닐까. MZ세대의 아픔을 호소하며 세대 간 ‘고통 겨루기’를 제안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의 ‘노력’을 탓하는 이들이여, 손가락을 치우고 당신들이 발 딛고 있는 땅을 내려다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파편화된 개인과 허탈감이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서사라면, ‘꼰대’를 규정하고 ‘권위’를 직시하라는 우리의 비꼼은 꿈틀거림의 출발점이다. 무용론과 사회적 무관심의 결과물은 뻔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우리는 꿈틀거려야 한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친 우리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 비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당사자의 입을 거쳐야 나온다. 여건이 안된다면, 최소한 실속 없는 공수표를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한다. 과정상의 연대 활동은 덤이다.  

  “김형 우리는 분명 스물다섯 살짜리죠?” “두려워집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사내의 죽음을 목격한 ‘김’과 ‘안’이 나눈 대화다. 소멸한 사내의 모습 속에서 ‘김’과 ‘안’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라 하고 있는가. 지치고 늙어버린 ‘25세’ MZ세대의 모습이 ‘추억처럼’ 서 있지는 않은가? 

  다시 서울, 2021년 4월이다. 사회와 정치에 신물 나는 염증을 딛고. 다시 고개를 들어야 한다. 마침 캠퍼스가 위치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후보들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그들은 또다시 ‘청년 지원금’, ‘청년 임대주택’을 내민다.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  

  다시 서울, 2021년 4월 7일이다.

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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