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의혈창작문학상: 소설 부문
  • 김서경 기자
  • 승인 2021.03.0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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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당선: 이성아 학생(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 <와중>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관하는 '제30회 의혈창작문학상'이 개최됐습니다. 의혈창작문학상은 청년 문학도들이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에서는 시 장원 1편과 소설 가작 1편이 당선됐는데요. 올해 소설 부문의 당선작은 이성아 학생(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의 <와중>입니다.

<작품 전문>
 

와중

자정이 다 되어가는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퉁, 퉁, 퉁 세 번. 방이 두 개 뿐인 작은 집이었으므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기엔 쓸데없이 큰 소리였다. 정직하지만 무언가가 서투른 사람의 손놀림이라 느껴졌다.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일까. 호수를 잘못 본 것이겠거니 싶어 그대로 소리를 죽인 채 있는데 다시 문을 두드려댔다. 퉁, 퉁, 퉁. 계시나요. 잠깐만 문을 열어주세요. 발음이 이상한 어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나를 본 여자가 당황한 듯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몸집이 작은 동남아 여자였다. 공장 단지가 늘어선 이곳의 빌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기 고양이가 빠져 있어요. 여자는 오른쪽 담벼락을 가리키며 서툰 발음으로 말했다. 고양이? 네, 아기 고양이가 울고 있는데 빼줄 수 없으시나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집 안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여자의 작고 동그란 이마의 윤곽이 드러났다. 여자는 무서운 꿈을 꾼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뒤를 따라 나가보았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의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여자에게서는 싸구려 향수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부엌에 난 작은 창문에서 반사된 빛이 이웃 빌라의 벽에 네모난 빛을 만들고 있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담벼락의 바닥 부분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휴대전화로 후레쉬를 켜 아래쪽을 비춰보였다. 길이가 다른 얇은 판자 몇 개가 담벼락 사이에 끼어있었고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밑에 있는 것 같아요. 여자가 바닥에 있는 판자를 가리키며 몸을 가까이 해왔다. 잔향이 부드럽지 못한 인공적인 향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미야오. 미야오. 나와봐 미야오야. 여자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나는 한 발자국 비켜서며 말했다. 저기 있으면 못 꺼내요. 아… 꺼낼 수 없어요? 저걸 내가 어떻게 꺼내겠어요. 나의 집은 2층에 있었고 고양이가 빠져 있는 곳은 빌라의 1층 현관문 옆 바닥이었다. 아… 어디 전화해서 말하면 안 되나요? 여자는 내가 어떤 방법이든 생각해보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의문스러웠고 또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다른 나라에 돈을 벌려고 온 사람이 길에서 쉽게 보이는 버려진 동물에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 이런 걸로, 그것도 이 밤에 신고하고 그러면 안 돼요. 아……. 여자는 가만히 서서 담벼락 아래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들릴 듯 말 듯 끊기는 소리로 계속해서 울어댔다. 
미야오야. 나와 볼래. 여자는 다시 고양이를 불러내려했다. 고양이가 나무판자 아래에서 나온다고 해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일 낮에 보고 내일도 저기 있으면 여기 빌라 주인 분한테 말해보세요. 여기… 주인 아주머니 고양이 싫어해요. 쓰레기 봉지 뜯는다고… 밥도 주지 말라고 했어요. 여자는 나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나는 떼를 쓰는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여자를 돌려보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럼, 내일 보고, 내일도 고양이가 저기 있으면 내가 구해볼게요. 나는 내일이면 고양이가 그곳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다면, 그렇다 해도 빼내지 못할 것이므로 그저 내일이면 고양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일 고양이 구해주세요… 죄송합니다 밤이 늦었는데… 안녕히 계세요…

집으로 들어오니 눈이 환해지는 게 느껴졌다. 밤의 어둠은 그것을 감각할 새도 없게 할 만큼 어두웠나 보았다. 휴대전화를 켜보니 아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10분 전에 걸려온 전화였으므로 아내의 번호 옆에 그려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이어졌고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아 내가 끊었다. 나는 철제 침대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눕혔다. 침대 밑에는 딸아이가 맡겨두고 간 고양이가 숨어 있을 것이었다. 은설이는 얼마 전까지 연휴 때에도 일을 나가야 했지만 이제 자신의 부서가 조금 한가로워져서 며칠의 휴가를 받았고, 휴일에 맞춰 연차까지 써서 사귀는 남자와 일본에 다녀올 것이라고 했다. 아이 엄마가 사는 집보다 이곳이 공항까지 오가는 길에 들르기가 더 쉬웠으므로 딸아이는 나에게 고양이를 맡겨두고 갔다. 

그게 이틀 전이었다. 고양이는 우주복의 머리통처럼 생긴 가방에 담겨져 왔고 이 집의 바닥을 밟자마자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흰털과 노란털이 섞여 있었고 몸집을 봤을 때 다 자란 것 같은 정도의 고양이었다. 딸아이는 고양이가 이전 주인에게 학대를 당해서 경계심이 많다고 했다. 레이라 했던가 레오라 했던가, 아무튼 고양이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주고 눈이 마주쳤을 때 깜빡여주면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침대 밑에만 숨어 있으니 눈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고양이는 내가 침대 위에 올라갈 때마다 겁을 먹었는지 아옹 하고 길게 한 번 울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일을 하러 나가고 나면 고양이도 침대 밑의 어둠 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일을 다녀오면 밥그릇에다 잔뜩 부어놓은 참치 캔과 사료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용변도 딸아이가 들고 온 모래 위에만 해두었기 때문에 치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침대 밑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며 깜깜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담벼락 사이에 빠져있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너무 미약해서인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 그 어린 동남아 여자는 다른 나라에까지 와서 번 돈으로 무엇을 하게 될까. 나이 많은 남자에게 몸이 팔리는 대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 할 수 있을까… 아내는 왜 전화를 한 것일까. 이제 이혼하여 갈라 선 그녀가 늦은 밤에 전화를 남긴 건 아마 은호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며칠 전 회사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어와 학교 폭력 문제로 학교에 몇 번 찾아가봐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야 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은호가 가해자라고 했다. 뜻밖이었지만 나는 별달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은 아이들 사이에 괴롭힘 문제가 하도 자주 일어나니 사소한 일로도 학교에서 부모를 부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은호는 덤덤한 아이였다. 나에게는 아이의 그런 점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녀석이 누군가를 부러 괴롭게 할 만큼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나도 학교에 가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미리부터 피곤함을 느꼈고 서서히 잠들어 갔다. 그런데, 방금 내가 침대에 올랐을 때 고양이가 울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어제의 발주 물량을 확인할 때까지 계속 뭔가를 깜빡한 것 같다는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어젯밤 동양인 여자가 찾아와 구해달라고 했던 고양이. 집에서 나오는 길에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고양이는 아마 누군가 빼주었거나 알아서 빠져나갔을 것이라 생각됐다. 어제 여자가 비춘 후레쉬를 통해 얼핏 보았을 때 담벼락 사이에 나무판자는 가로로 끼인 채 아래 공간을 남겨두고 떠있는 것 같았다. 새끼 고양이는 거기에 깔린 것이 아니라 위험을 피해 그곳에 몸을 숨긴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제 날이 밝았으니 그곳에서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거기에서 빼낸다고 해도 아주 미약한 소리로 울어대던 녀석이 길거리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여자가 말했듯 빌라의 주인아줌마처럼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 녀석이 나와서 번식을 하게 된다면 그건 누군가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또 그 녀석이 낳은 새끼가 담벼락 사이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누군가가 다시 고양이를 구해달라고 한밤중에 나의 집 문을 두드릴지도 몰랐다. 아니, 이런 생각들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그곳에서 빼낼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멈췄다. 마음은 홀가분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근처에서 동료들과 믹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가 평일 이 시간대에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지금 통화가 가능하냐고 물어왔다. 아내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말끝에서는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은호가 같은 반 아이를 성폭행 했다고 말했다. 나는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무언가를 잘못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막혀왔다. 은호는 남자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동성 성폭행이었다. 처음엔 남자 아이들끼리 하는 짓궂은 장난에 마음이 여린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 정도일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아닌가봐, 은호가 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 같아. 그 아이에게 자기 성기를 보여주고 만지고 그랬대… 그런데 그 아이, 엄마가 안 계셔. 친엄마가. 아이 아빠가 재혼한 여자가 있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아이 아빠가 이 일을 신고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인데 당신하고 얘기를 해봐야겠대. 남자 아이들 성폭행 문제를 여자인 나한테 따지는 게… 수치스러울 것 같다고 했나, 아무튼 그런 말을 했어. 나는 아내의 입에서 나온 수치라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이상하게 낯설었다. 수치를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수치스럽게 했고 누가 수치스러워 해야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목 아래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은호는 성숙한 아이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면 친척 어른이나 식당 아주머니들 모두 아이가 참 얌전하다고 칭찬의 말을 건네 왔었다. 아이의 입과 얼굴 하관은 제 엄마를 닮아 갸름했고 내 것을 닮은 동그란 눈매는 무척 순해보였기 때문에 아이의 숫기 없는 모습은 전혀 미움을 살만한 것이 아니었다. 입을 다문 채 볼을 부풀려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같이 사는 동안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침착하고 행동이 바르다고 말해주었고 말수가 적어서 걱정된다는 제 엄마의 말에는 같은 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니 신경 쓸 게 없다고 답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이혼을 하게 된 것은 아이의 그런 모습 때문이었다. 정말 그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랜 시간 생각해보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아이의 그 침착한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했다. 아내가 은설이를 가졌기 때문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할 생각이었으니 우리는 꿈꿔왔던 것처럼, 그러나 아직 준비되지는 못한 상태에서 빠르게 살림을 차려 나갔다. 우선 급한 대로 우리는 외동딸이었던 아내의 친정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도중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오래 그곳에 머물렀었다. 나는 타일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했고 기술 수입에 성공해 회사가 규모를 확장해가면서 나도 승진을 하고 이전보다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하던 때엔 아직 회사의 인사직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사장의 처남이자 지금은 부사장이 되어 있는 팀장이 어린 나이에 가정을 책임지려는 나를 기특하게 봐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처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구해 들어갔다. 그때 은설이가 아홉 살이었고 새살림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은호를 임신했었다. 낙태라는 말은 꺼내보지도 않았고 그런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나는 아이를 바라던 쪽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던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한 명의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아내와 나의 삶은 지워져갔다. 나는 뜨거운 증기와 우레탄 냄새를 풍기며 완성되어 나오는 타일을 보며 은설이의 얼굴을 떠올렸었다. 나의 젊음이 분명 값지게 쓰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그럴 때면 가슴에 기분 좋은 열기가 차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이십 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일 하는 데 써야했고, 은설이를 키우기 위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겠지만, 한 명의 아이를 더 책임져야 한다는 건 끝없이 밀려나오는 타일들이 내 눈앞을 가득 채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아득해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포기하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건 그 선택 또한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삼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다. 우리에겐 아마 한 생명의 죽음을 떠맡을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분명 나와 아내와 은설이를 닮았을 아이를 버리느니, 힘겨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것처럼 아이를 낳고 그 탄생을 책임지는 게 나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아내가 먼저 포기하자는 말을 꺼내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려움 속에서 아내의 불러오는 배를 지켜봤지만 막상 태어난 아이를 보았을 땐 그동안의 걱정이 말끔히 해결된 것만 같아졌다. 밥도 잘 먹고 보채지도 않는 은호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특히나 아이의 맑고 순한 두 눈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반드시 아이를 지켜주고 싶게끔 했다. 은설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아이에게도 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었다.

은호는 건강하게 자랐다. 아내는 은호를 낳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 복직하지 못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작은 공장의 경리직 일자리를 구했고 장모님과 나의 엄마가 돌아가며 아이를 살뜰히 돌봐주셨다. 아내는 그곳에서 4년 정도 일을 하다 그만두었다. 사무실에서 자기만 여자이고 오십대 중후반의 남자 두 명과 일하는데 손님이 찾아오거나 하면 자기를 다방 여자처럼 생각한다는 거였다.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1년을 넘게 쉬었다. 그동안 나는 야근이 잦았고 살이 쪄 목에 줄이 생긴 아내의 얼굴은 보기 흉해져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 나의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이 있는데도 먹을 게 없다며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아이들에게 인스턴트를 먹이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 자주 신지 않는 신발이 계속 현관에 나와 있다든가 여름이 한참 지났는데 선풍기가 여전히 거실 한 가운데 놓여 있거나 하는 것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늦은 밤까지 일을 했고 아내는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에 지나치게 화가 났고 신경질을 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나는 그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은호의 덤덤한 성격은 나를 닮은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큰 소리를 내거나 눈을 부라려본 적이 없었고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사람이 참 순하다는 말을 칭찬처럼 건네주었으며 가끔은 매가리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유순한 사람이었다. 
내가 큰소리를 낼 때면 아내는 의기소침해진 얼굴을 들어보였고 당황한 은설이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어지러웠고 죄책감을 강하게 느꼈지만 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같이 무덤덤한 사람이 이렇게 예민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들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리를 지르고 난 뒤엔 다시는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듯 성내지 말아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은호는 내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아이를 쏘아볼 때에도 여전히 무덤덤했다. 나는 아이에게 너는 왜 아무렇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춘기 무렵이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수줍게 웃어보이지도 않는 아이의 냉정한 얼굴은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란 사람은 밖에서는 유순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불 같이 화를 참지 못하는 폭력적인 가장이라고, 내가 그렇게 유치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에게 어떠한 기대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다. 미치도록 싫었다. 그게 내 죄책감을 더 자극했고 나를 불가해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저녁 시간, 은호의 담임이라는 여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틀 후 학교에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별말 없이 그저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제가 학생들 관리에 좀 더 성실했어야 했던 건데… 면목이 없네요… 여선생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다시 수치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생경한 느낌일까. 사람들이 느끼는 그 감정이 수치가 맞는 건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나는 상사에게 자녀 문제로 이틀 뒤 조금 일찍 퇴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두었다. 상사는 내 자녀가 나를 닮았다면 전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옅게 웃어 보이며 그런 게 아니라고만 답해두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은설이가 맡기고 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생명이 있는 것이 낼만 한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에 주고 간 사료는 다 먹고 없었다. 아마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또 침대 밑으로 숨었을 것이었다.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누으려다 담벼락 사이에 빠져있던 고양이가 떠올라 밖으로 나가보았다. 시커먼 어둠 속으로 후레쉬를 비춰봤지만 어제처럼 나무판자밖에 보이지 않았고 미야오 하고 울음소리를 작게 따라 내보아도 반응하는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침대 위로 조심스레 올라가 누웠다. 서서히 잠에 빠져들다가 문득 내가 침대에 올랐을 때 고양이가 울었는지 궁금해졌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해보았다. 고양이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었으므로 상관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나가기 전에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고 그것을 한 주먹 쥐고 나가 담벼락 사이에도 뿌려놓았다. 점심시간에 아내는 전화를 걸어와 이 일이 공론화되면 은호의 앞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전학은 당연하고 다시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는 입학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합의금을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주겠다고 말하라 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양이 밥그릇에는 사료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담벼락 사이에 뿌려두었던 사료는 무엇이 먹었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고양이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는 침착한 태도로 나를 마주 대했다.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로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에 반사되어 그의 눈은 어둠보다 깊은 갈색을 띠었다. 거대한 슬픔을 집어삼킨 것 같은 그의 얼굴은 엄숙해보이기까지 했다. 곧 학교폭력 담당이라는 젊은 남자 선생을 따라 은호가 들어왔고 아이는 나와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이가 열한 살이었을 때 이혼한 뒤로 나는 사 개월에 한 번 정도씩 아이를 만나왔다. 성장기였기 때문에 아이는 볼 때마다 조금씩 더 자라있는 것 같았다. 은호는 나의 옆에 앉았고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은호가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괴롭혔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아이가 왜 몰래 피해자 아이를 체육 도구실로 데려갔는지, 그곳에서 자신의 바지를 벗으며 어떤 짓을 해보였는지, 왜 피해자 아이의 몸 곳곳에 멍이 들어있고 옷이 찢어져 있었던 것인지를… 말을 끝낸 뒤 이 모든 게 네가 한 짓이 맞느냐고 묻는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에게 은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무표정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얘기라는 듯, 아주 침착하고 완전히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니. 나는 정말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아이를 쏘아보며 도대체 뭐가, 뭐가 부족해서 이딴 짓을 한 것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여전히 무신경한 얼굴을 한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분위기가 험해지는 것을 피하려는 듯 학교폭력 담당이라는 젊은 남자 선생이 끼어들어 말했다. 은호가 정말 그럴 애가 아닌데, 교우 관계도 좋고 성적도 우수한 학생인데… 이 시기 남자 아이들이 그런 거에 워낙 호기심이 많을 때다 보니까… 길우는 아직 그런 거에 순수해서 큰 상처를 받았을 거고……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이 아마 수치였던 것 같다. 그저 이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아내의 걱정과는 다르게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는 사건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이 일을 공론화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다만 은호를 다른 지역의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젊은 남자 선생에게도 그의 반응이 뜻밖이었는지 선생은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하며 그럼 신고도 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선생에게 대답하는 대신 나를 쳐다보며 은호의 눈이 내 것을 닮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그렇게 노려보는 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은 그에게 학교 측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나도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조금 숙여보였다. 조금도 감사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와 선생끼리 할 말이 더 남아있었기에 나와 아이가 먼저 일어섰다. 상담실을 나서며 나는 곧바로 뒤돌아나갔고 잠시 뒤 반대편으로 멀어져가는 은호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가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을 거라 했다는 말을 전하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호는, 어땠어… 애 얼굴이 많이 안 좋지? 무표정하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 애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문제인 거지? 가해자인 은호를 걱정하는 아내의 태도가 거슬렸다. 기분이 나빠져서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나는 정말 걔를 이해할 수 없어. 마치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그 자리에서도 아주 평온해보였다고. 그게 말이 돼? 말을 할수록 감정이 뜨겁게 덩어리져서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당신도 알잖아 내가 그 녀석 그러는 것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 걔는 분명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거야. 내가 걔 때문에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쉬지도 못하는 걸, 걔는 어떻게 된 게 제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하는 걸 하나도 몰라. 알겠어, 그만해 이제. 그만했어야 됐다. 그만하기만 했으면 되는 건데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하라니. 내가 뭘. 그 녀석이 그렇게 행동하지만 않았어도… 다 그 녀석 때문이라고. 당신도 알잖아. 난 걔가 그러는 거 정말 못 참겠다고. 그건 분명 잘못된 태도야. 당신이 애 교육 좀 잘 시켜. 알겠어… 알았다고, 그만해 이제. 이제 정말 그만하려고 했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나를 말리려드는 걸까. 왜 나보고 그만하라는 건데.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왜 나한테 그러냐고.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옆에서 다 지켜봤으면서…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알겠어… 제발 흥분 하지 말아줘… 나는 당신이, 또 당신 몸을 다치게 할까봐 무서워서 그래… 그날의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 녀석이 또 나를 개무시해서 그랬던 거라고. 왜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생각 해주지 않는 거야? 걔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 말 하지 마. 아내의 목소리가 갑자기 격앙되었다. 내가 그런 말만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라고. 그 말이 은호를 지금 이렇게 만든 거야. 뭐? 그 새끼가 그딴 짓을 한 게, 그게 내 탓이라는 거야? 그래. 당신은 뭐가 마음에 안 맞을 때마다 항상 소리쳤어.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게 애한테 할 소리야? 눈이 뒤집혀서는 내가 말릴 수도 없었지. 그리고 당신은 창문을 깼고 그 유리 조각으로 당신 허벅지를 마구 긁었다고! 부엌 바닥이며 냉장고에 피를 튀기면서도 당신은 소리쳤어.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닥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냐고. 이유를 생각하라고. 그게 나한테는 좋은 기억일 것 같아? 그때 얘기는 꺼내지도 마! 당신부터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오늘 그 사람이 일을 쉽게 해결해줬다고 했지? 그거 내가 그 사람 아내한테 말해놔서 그런 거야. 당신이 우리 은호한테 어떤 아빠였는지, 아이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내가 다 말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울었어. 그래서 그 애 아빠가 은호를 가엾게 봐준 거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돼? 당신은 누가 봐도 이상해. 완전 정신병자, 미치고 돌아버린 사람이야! 
나는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뒷목에서 어깨로 소름이 번졌고 손끝 발끝에서 강렬한 마취가 풀린 것처럼 쥐가 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현기증이 몰려왔다. 저물녘의 집안은 어두침침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정적이 두 귀를 가득 메웠다. 나는 날카로운 것이 내 손에 들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유리컵을 깨버리고 싶었고, 아니면 형광등을 깨도 괜찮을 것 같았고, 부엌에 있는 칼을 가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참아야 한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마구 찔러서 난 상처는 이제 흉터만 남아 있었다. 찌르면 아플 것이다. 나는 고통을 느끼고 싶어 미칠 것 같지만, 정말 미치고 돌아버릴 것 같지만… 지금만 넘기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주저앉았고 떨리는 두 손을 교차시켜 나의 어깨를 힘주어 감싸 안았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다. 어느덧 방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나는 기운이 빠져 그대로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몸에 힘을 푼 채 내 숨소리에 집중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울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화가 가라앉았다고 느껴졌을 때 침대 밑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숙여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를 가득 머금고 있는 것처럼 더 어둡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곳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리해도 닿지 않았다. 나는 철제 침대를 당겨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 아래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묽은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이 만져졌다.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 대보니 그것에서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다시 손을 집어넣어 아래를 더듬어 보았다. 차갑고 물컹한 덩어리가 만져져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생명이 있는 물체 같았지만 그렇다기에는 조금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훑어봤다. 털이 느껴졌다. 기다랗고 물컹한 무언가에 그것보다 작고 굳어있는 것이 만져졌다. 그곳에 작게 튀어나온 축축한 부분이 있었고 그게 눈인 것 같았다. 아 고양이다. 은설이가 맡겨 둔 고양이었다. 나는 갈비뼈 아래쪽의 물컹한 몸통을 움켜잡아 그것을 들어올렸다. 고양이는 빳빳하게 경직된 채로 차게 식어 있었다. 시벌개진 눈은 뒤집혀 있었고 토사물로 범벅된 얼굴에는 축축한 털이 마구 엉겨 있었다. 끔찍했다. 귀신에 씨인 것처럼 경악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얘가 왜 갑자기 죽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행을 다녀 온 은설이가 알게 되면 크게 상심할 것이었다. 나를 탓하거나 아니면 고양이를 나에게 맡기고 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이 흉측한 몰골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은설이는 오늘 밤 비행기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입국 시간과 공항에서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봤을 때 아직 못해도 두 시간은 남아 있었다. 
나는 우선 고양이의 눈꺼풀을 억지로 감긴 뒤 그 위를 문질러 돌출되어 있던 눈동자가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역겨운 토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기 때문에 그것을 화장실로 들고 가 비누칠을 해 거품을 냈다. 손에 힘을 풀어 부드럽게 씻기려 했지만 문지를수록 계속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을 마구 주물러서 경기를 일으키는 것 같았던 모양도 최대한 풀어주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드라이기 바람으로 말리기까지 하니 고양이는 여전히 꺼림칙해 보이긴 했지만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이 시체를 딸아이에게 들이밀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잃어버렸다고 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나는 고양이 시체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타일 공장에 폐기름을 버리는 드럼통이 있으므로 화장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검은 봉지에 고양이를 넣은 뒤 입구를 꽉 싸맸고, 누군가가 그것이 시체라는 것을 알아볼 것만 같아 다시 종이 가방에 그것을 구겨 넣었다. 한 손에 종이 가방을 쥔 채 라이터를 가지러 방으로 가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왔다. 
퉁, 퉁, 퉁. 세 번. 아직 은설이가 돌아올 시간은 아니었다. 인기척을 숨기고 있는데 다시 문을 두드렸다. 퉁, 퉁, 퉁. 쓸데없이 큰 소리였다. 저기요… 계시나요. 말투가 어눌한 어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전에 찾아왔던 그 동남아 여자인 게 분명했다. 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이전과 똑같이 여자의 작고 동그란 이마와 눈동자에 푸른빛이 반사되고 있었고 여자는 순수하게 겁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나에게 왜 고양이를 죽였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 안에 든 거… 고양이잖아요… 여자는 내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왔다.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혼자 죽어 있었던 거라고. 거짓말 하지 마요! 그럼 저기 담벼락에 빠진 고양이는 어째서 죽어 있는 거죠? 당신은 몹시 잔인해! 아주 잔인하다고! 여자의 목소리가 괴괴히 울려 퍼졌다. 아내와 은호의 목소리가 섞여 울리는 것 같았기에 나는 겁에 질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퉁, 퉁, 퉁. 

경련을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어딘가에 묶인 것처럼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채 누워있었다. 집 안의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들어왔다. 퉁, 퉁, 퉁. 저… 문 좀 열어주실래요… 동남아 여자의 가냘픈 목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나가보았다. 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여자는 두려운 것을 마주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늦게 끝나서… 여자는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나에게 건넸다. 이거… 고양이… 구해준 거 감사해서 사 왔어요. 과일 조금…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상태로 봉지를 받아 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여자가 가고난 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형광등 빛이 생경할 정도로 환하게 느껴졌다. 곧바로 집안 곳곳을 훑어보았지만 은설이의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주었던 사료가 눅눅해진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침대 아래를 살펴봤지만 그곳에도 고양이는 없었다. 도대체 언제 사라져버린 건지, 어디에 가 있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은설이가 집에 들러 고양이를 데려갈 거라 말해두었던 시간까지 한 시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빌라를 내려가기 전에 담벼락 사이에 후레쉬를 비춰 보았지만 나무판자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야오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따라 내보았다. 어둠이 매질처럼 진동하며 귀에 웅웅거렸기 때문에 무언가 미약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이 정말 고양이가 내는 소리가 맞는지, 아니면 전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걸어서 집 주변을 살펴보려다 다시 돌아와 차를 탄 뒤 시동을 걸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공장단지의 도로에는 노란 신호등만이 의미 없이 깜빡거리고 있었고 나는 빠른 속도로 주변을 맴돌았다. 몇 바퀴째를 돌았지만 어디에도 고양이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타일 공장은 어둠 속에서 홀로 불을 밝힌 채 묵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우레탄 냄새가 풍겨왔기에 차창을 올렸다. 나는 완전히 닫힌 차 안에서 미야오 미야오 하고 고양이 울음을 따라 울며 계속해서 같은 길을 달렸다. 도로 위에는 가로수의 그림자 뿐,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고 타일 공장의 우레탄 냄새만이 강렬하고 확실하게 내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제는 내 몸에 배인 냄새였지만 그것이 암시하는 불행의 느낌은 지겹도록 자극적이었다. 
저 멀리 상공의 밤하늘에서 서서히 착륙하는 비행기의 불빛이 보였다. 이제 이 세계를 심판할 존재가 내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판의 시간이 닥쳐온 것이다. 갑자기 목이 매어왔다. 나는 공장단지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향해 갔다. 톨게이트 입구를 통과해 달리자 아득하고 공허한 어둠이 끝없이 펼쳐졌다. 나는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밀치고 들어갔다. 이제 더 이상은, 내가 고양이를 찾고 있는 것인지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끝까지 달리면 도망칠 수 있는 것인지, 벗어나고 나면 나는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인지도… 아니 내가 왜 벗어나야 하고, 나는 왜 은호에게 그런 말을 했던 건지, 나는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아니 도대체 은호 그 개 같은 자식은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 건지… 이 고양이 새끼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 나는 그 무엇도, 단 하나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밝게 켜진 화면 가득히 딸아이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휴대폰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려댔으며 속도를 높일수록 어둠은 더욱 빠르게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당선자 인터뷰>

소설 부문 가작 이성아 학생  Interview : 치열한 삶의 소용돌이 속

우리 모두는 상처와 균열을 떠안은 채 일상을 살아간다. 그 삶 속엔 짙은 쓸쓸함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이성아 학생(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과 그의 소설에 담긴 치열한 삶에 관한 얘기를 나눠봤다. 

  -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심사평에 있는 ‘기대와 믿음’이라는 말을 보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가 떠올랐어요. 나는 아마 ‘기대’와 ‘믿음’이라는 저 두 단어로 몇 번의 저녁을 지어 먹게 될 거라고, 정말 그럴 거라고 느껴졌거든요. 그 저녁들을 함께해주는 이들에게 내가 가진 가장 큰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 독자들에게 작품 <와중>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편의 글을 끝내고 나면 그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뭐가 뭔지를 알 수가 없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죄송하지만, 소개는 없겠습니다.” 

  - 제목을 ‘와중’으로 정하셨어요. 

  “와중(渦中)은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 상황을 일컫는 말이에요. 제목이 표현하는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이에요. ‘나’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버린 상황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니까요.” 

  -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받으셨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너무 쓸쓸해져 버린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언젠가 너무 외로웠던 적이 있었고, 그때 이런 시간들이 거듭된다면 사람은 얼마나 외로워지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나 봐요. ‘나’는 그저 주어진 대로의 시간을 살았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쓸쓸해져버린, 제가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쓸쓸한 사람이었어요. 다만 20대 여성인 저에게 있어 이혼한 중년의 남성이란 정말 미지의 세계에 놓인 것인데, 그에 대한 구상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 공업단지라는 배경이 특별합니다.  

  “집 주변에 공장단지가 있고 거기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손님의 대부분이 중년 남성분들이었는데, 왠지 큰 개들이 항상 슬퍼 보이는 것처럼 그들도 슬퍼 보였어요. 마음은 아직 개구쟁이인데 벌써 늙어버린 걸 섭섭해하는 것 같았달까요. ‘나’의 많은 부분은 그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겠고 공장단지는 그들의 슬픔과 어울리는 곳이니 그곳을 배경으로 하게 됐어요.” 

  - 작품 속 대화가 줄글로 표현됐어요. 

  “실제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따옴표 안에 정리된 말보다 줄글로 어지럽혀진 말과 닮아있다고 느꼈어요. 모두가 상대의 말이 정리되기 이전에 자기의 말을 이해시키기에 바쁘니까요.” 

  - 평범해 보이지만 상처와 아픔을 가진 인물들의 모습에 공감이 돼요. 

  “나는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일 거라고,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균열을 마주하게 될 때면 내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져요. 이 소설에서는 그 균열의 징후를 묻기 이전에 원인이 된 상처를 보고 싶었어요. 상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균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면서요.”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엄마 미안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딸이라 미안해.” 

<소설 부문 심사평>

고양이가 보여주는 긴장감의 연속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 탓인지 예년보다 응모작이 다소 줄어들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응모작들이 보여준 다양한 이야기와 응모자들의 탄탄한 기본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를 진행하면서 예심위원들과 본심위원들이 공통으로 느낀 점은 작가적 안목과 문학적 기본기의 불균형이었습니다. 안정된 문장력과 장면을 형상화하는 기본기를 갖춘 투고작들은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상투적 이해를 바탕으로 너무 익숙한 윤리적 결말로 나아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참신한 소재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과 세태를 다룬 응모작들은 문장의 완성도와 형상화의 역량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우리 손에 남은 작품은 <와중>이었습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통해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잘 이끌어간 <와중>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이혼한 주인공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아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긴장시키는 서사의 전개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동성 성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태연하게 인정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는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 즉 딸이 맡긴 유기묘의 죽음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길고양이에 비유하며 주인공의 동정심과 수치심을 드러내는 심리묘사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긴장을 풀지 않는 서사와 문장의 밀도에 비해 딸이 맡겨놓고 간 고양이와 담벽 사이 틈바구니에 갇힌 길고양이가 각기 다른 존재인지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분열된 하나의 존재인지 그 처리방식이 모호하고, 주인공과 아들 은호의 캐릭터가 다소 피상적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단어와 문장을 다루는 치열함의 부족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식 능력, 서사 전개 역량에 비교해 단어와 문장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아쉬움을 끝내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응모자가 이러한 부족함을 충분히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믿음 때문입니다. 더욱 정진하여 보다 큰 성취를 거두길 기원합니다. 

심사위원= 오정희·방현석(본심) 박혜영·서성란(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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