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장원: 김도경(조선대 문예창작학과 3) <기호>

문예창작전공과 중대신문이 주관하는 '제30회 의혈창작문학상'이 개최됐습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에서는 시 장원 1편과 소설 가작 1편이 당선됐습니다. 시 부문에서는 김도경 학생(조선대 문예창작학과 3)의 <기호>, 소설 부문에서는 이성아 학생(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의 <와중>이 선정됐습니다.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이벡은 "첫 줄을 쓰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이자 마술이며, 기도인 동시에 수줍음이다"고 글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용기 있는 첫 발을 디뎠을까요? 그들의 작품을 만나러 떠나 봅시다.

 

기호


귀찮아서

천장 만큼 키가 자랐다


어떤 옷이 나한테 잘 어울릴까

색깔이 신화라서

자꾸 영웅이 되었다가


신을 입에 담았다


벅찬 것은 없고

말은 무엇도 부를 수 있다

신호를 줘


달리기는 시작된다


계주였어, 중학교 때 나는

달리고 달리면 원을 지녔어 지금은

밤에 운동장을 걷고


중얼거려

명언 같은 무늬를

옷이 내 서술이야


자라고 자라서

천장이 됐으면 해


파라솔 같은 존재

여름의 운동회는

뜨거웠고

유니폼은 우리라는 이름을 만들었어


지금 나는 검고 검은 옷을 입고

기온을

온기라고 뒤집으며


계절을 거꾸로 지내며 살아가고 있어


미래의 밤은

지나간 애인들과

축제를 벌이고 싶어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처럼


각자 서로를 상징하는 옷을 입고

서사와 하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기표와 기의처럼


오늘의 기분은 어땠니?

묻고 싶어

 

시 부분 심사평 : 다채로움 속 절제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오른 작품은 <실오라기> 외 6편과 <내가 아는 나무에 대한 모든 이야기> 외 6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이미지를 구성하는 미적 감각과 이 구성을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는 언어적 감각을 겸비하고 있어 오랜 시간 언어를 갈고 닦아온 훈련의 정도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두지원자 모두 좋은 착상과 표현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실오라기> 외 6편은 화려하고 찬란한 말의 산란과 연속되는 이미지의 병렬 등이 눈에 띄었다. 두드러진 탐미성이 시를 이끌고 가는 동력이어서 예컨대 “손가락 사이사이를 실타래처럼 통과하던 맨얼굴은 첫눈을 기다린 데이지꽃 새어나간 빛 눈발에 숨긴 편지지 파란물감과 수채화 맨발로 밟은 만년설”같이 다채로운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렇게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전개되는 것은 분명 장점이고 능력이다. 다만 이러한 전개가 상황의 변화라기보다는 미적 탐구의 발현에 의지하기에 때때로 연속적인 동력이 떨어지고 장면의 단순한 교체로만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내가 아는 나무에 대한 모든 이야기> 외 6편은 표현을 충분히 다채롭게 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절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가 그리는 상황이 훨씬 또렷하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언어를 전방위적으로 펼쳐 가면서도 꼭꼭 눌러 곱씹고 되짚는 차분함이 시 한 행 한 구절을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투고한 7편 중에서 <기호>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계주였어, 중학교 때 나는/달리고 달리면 원을 지녔어 지금은/밤에 운동장을 걷고//중얼거려/명언 같은 무늬를/옷이 내 서술이야”와 같은 표현이 인상적이다. 중학교 때는 달리고 나면 원을 지녔는데 지금은 운동장을 걷고 있고, 중학교 때처럼 원과 같은 추상적인 무엇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고 있는 옷이 무늬를 중얼거린다는 묘사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성숙의 태연함과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과장이나 감상에 흐르지 않는 이러한 태도가 특유의 절제와 선명한 묘사력에 어울려 좋은 시를 낳은 것 같다. 축하를 보내며 투고한 모든 지원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승하·이수명(본심), 김근·김영산(예심)

시 부문 장원 김도경 학생 Interview : 익숙한 신호에서 감정을 터뜨리다

사진제공 김도경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생각의 가짓수는 오만 가지라고 한다. 수많은 생각 중 상상으로 닿은 이미지에 손을 뻗는다면 그 이미지는 또렷하고 선명해진다. 김도경(조선대 문예창작학과 3은 그의 감각에서 튀어나오는 이미지를 붙잡으려 자신을 들여다본다. 공전하는 이미지 속에서 그는 어떤 신호에 응답한 것일까.

 -시 <기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본 것, 상상으로 닿았던 것, 본 이미지가 각색된 것 등 여러 이미지를 제 언어로 담아냈어요.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이미지는 공전하고 부딪히죠. 이는 스스로를 표출하는 방식인 동시에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방식이었어요.”

 -시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신 건가요?

  “시집을 읽거나, 산책할 때 문장을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어요. 제가 상상을 시작할 수 있는 단어에 집중해요. 옷은 종종 그날의 기분,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기표처럼 느껴져요. 중학교는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어떤 문처럼 느껴지죠. 애인은 제 기분과 상대방의 기분을 가장 자주 묻던 때가 사랑을 했던 시기였어요. 이런 곳에서 영감을 얻었죠.”

 -1연을 ‘귀찮아서/천장 만큼 키가 자랐다’라고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재밌게 쓰고 싶어서 이렇게 시작했어요. 시의 문장은 일상어와 가까울 때 재밌어지는 듯해요. 어린 시절 저는 뜬금없는 소리도 자주 하고 장난도 자주쳤어요.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으려 하지만 시에서는 다르죠. 시를쓸 때는 조금은 더 짓궂고, 유쾌해도 되는 것 같아요.”

 -‘신호’와 ‘기호’가 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제 시는 어떤 순간에 감정과 사유를터뜨려요. 말하자면 ‘신호’를 기다리죠. 이 ‘신호’를 만들기 위해서 상황을 설정하거나, 감정을 다지는 언어를 쌓을 때도 있어요. 기표와 기의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언어에 대한 물음이에요. 어떤 순간과 마음에서 비롯됐는지 고민하죠. 문학에서만큼은 의도를 믿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가 ‘옷’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옷은 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해요. 슬플 때 입는 옷과 설렐 때 입는 옷이 다를지도 모르죠. 마치 페르소나처럼 나의 가면을 고르는 일일 수도 있어요. 어떤 때는 유니폼처럼 우리라는 이름에 소속되고, 신화처럼 만나보지 못한 감정을 만날 수도 있어요. 옷을 입고 만난 누군가로 인해 어떤 순간은 신화가 돼요.”

 -시 <기호>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저는 시를 쓰거나 읽을 때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순간을 좋아해요. 제 시를 통해 신화처럼, 동화처럼 하루가 기억되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조금씩 단단한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시 쓰는 일이 벽을 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느끼는 벽은 언어의 내밀함이에요. 늘 통통 튀는 시를 썼는데 제 언어가 그리 촘촘하지 못하다는 점을 느끼고 있죠.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수상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시를 쓰며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제가 가진 꿈일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공부했던 동생, 친구, 선배 그리고 좋은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문학을 시작하게 도와주신 고등학교 선생님도, 제가 하는 일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가족, 친구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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