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생활 모습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낯설고 어렴풋한 단어로 느껴지진 않나요. 전통에 대한 막연함을 생활면이 변화 시켜 드립니다. 생활면은 선조가 전해주고 후손이 널리 통하게 한 전통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마성의 술, 소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 진하게 녹아있는 전통을 한잔하러 지금 떠나봅시다! 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예로부터 우리네 희로애락에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다. 흔히들 ‘국민주’라고 부르는 ‘소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 밀린 이야기가 술술 흐른다. 지친 하루를 안주 삼아 털어 넣는 소주 한 잔도 든든한 위로가 된다. 소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삶과 함께했다. 소주가 걸어온 길을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대륙 건너 고려 품에 안기다
  소주는 고려 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전래됐다. 원나라의 주요 주둔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를 중심으로 소주 주조 기술이 발달했다. 소주의 ‘소’자는 불사를 소(燒)를 쓴다. 불을 어원으로 가진 이유는 소주가 불로 끓여 만드는 술이기 때문이다. 전통 소주는 발효된 술덧을 소줏고리에 넣고 가열하는 단식 증류 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최한석 교수(한국농수산대 농수산가공학과)는 단식 증류의 어원을 바탕으로 증류 과정을 설명했다. “소줏고리를 이용하면 증류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약주를 붓지 못해요. 한 번에 한 번씩 증류한다고 해서 단식 증류라고 하죠.”

  약주 1L를 증류하면 소주 300mL 정도가 얻어진다. 사용되는 곡류량에 비해 만들어지는 소주량이 적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서민이 소주를 마시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서민의 술’이라 불리는 현대 명성과는 정반대로, 전통 소주는 귀족이나 즐길 수 있는 고급주에 속했고 약으로 쓰일 만큼 귀했다. 몸이 허약한 단종을 위해 중신들이 약으로 소주를 고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최한석 교수는 소주가 민간으로 전파된 과정과 의미를 설명했다. “세종 때까지 전통 소주는 왕족들이 마셨어요. 이후 중종 때 지역 관료와 민간에게 확산됐죠. 당시 서민들은 소주로 대접받는 것을 매우 귀한 존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바다 건너 조선 품에 안기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소주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희석식 소주를 개발한 일본의 영향을 받아 1919년 평양과 인천에 최초의 희석식 소주 공장이 세워졌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한 소주다. 주정은 고구마, 당밀 등 값싼 재료를 연속식으로 증류해 추출한 순수 에탄올이다. 발효물에 열을 가해 증류하는 것은 전통 증류식 소주와 같지만, 증류 방식과 에탄올 순도에 차이가 있다. 최한석 교수는 연속식 증류가 정유공장 시스템을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속식 증류기 내부에는 30~40개 정도의 구멍 뚫린 판이 가로막고 있어요. 한 단씩 통과하면서 에탄올의 순도가올라가죠. 증류된 만큼 새로운 발효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고 해서 연속식 증류라고 해요.”

  1965년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술 제조에 쌀 사용이 금지됐다. 이에 전통 증류식 소주는 국내에서 점차 사라졌고 희석식 소주가 그 빈자리를 채우면서 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농업연구사는 저렴한 가격과 산업화 과정이 맞물려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값싼 주정을 통해 생산하는 희석식 소주는 제조 공정과 원가 측면에서 경제성이 뛰어났어요. 더불어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값싸게 먹고 빨리 취하기를 원했던 문화도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죠.”

  역사 너머 오늘에 영글다
  희석식 소주는 가격 경쟁력 이외의 다양한 매력을 키우는 중이다. 과일 소주(품목으로는 '리큐르'로 분류), 탄산 소주 등 다채로운 맛의 변화를 시도했다. 또한, 35도에서 시작해 현재 16.5도까지 도수를 대폭 낮추면서 부드러움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희석식 소주는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간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는 과일 소주를 주축으로 한 소주 세계화를 전망했다. “소주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특히 동남아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면 꼭 먹어야 하는 목록에 과일 소주가 있을 정도랍니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이 유행하면서 희석식 소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토닉워터, 젤리 등과 소주를 섞어 도수를 낮추고 풍미를 더하는 방식이다. 이대형 농업연구사는 희석식 소주의 특성을 통해 유행을 분석했다. “소주 특유의 쓴맛과 높은 도수가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어요. 다채로운 재료를 곁들여 마시면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죠.”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쌀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 1990년에는 「양곡관리법」으로 금지됐던 쌀막걸리 제조가 허가됐다. 다음해부터 쌀을 사용한 전통 증류식 소주도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화요, 토끼 소주 등 현대적 감각의 증류식 소주가 등장하며 소주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가 지정한 장인이 빚거나, 지역 농민이 지역 농산물로 만든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증류식 소주 시장에는 더욱 활기가 돈다. 오늘도 증류식, 희석식 소주는 한 뿌리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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