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좀 그만 봐!” 엄마의 잔소리 혹은 당신이 다이어리에 써놓은 문구일지도 모른다. 이상하다. 무슨 법칙 마냥 ‘여기까지만 봐야지’ 다짐하는 순간 당장 클릭하고 싶은 콘텐츠가 눈에 띈다. 그렇게 신나는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가 훌쩍 지나간 시간을 확인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이게 과연 의지의 문제일까? 만약 중독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면?

  SNS를 들여다보자. 인스타그램의 돋보기, 페이스북의 워치 페이지, 유튜브의 추천 영상 목록. 이들은 모두 ‘알고리즘’ 아래서 움직인다. IT 기업은 왜 알고리즘을 이용할까? IT 기업의 목표는 이윤이다. 그들의 수익원은 광고주로, 광고를 많이 노출하기 위해 이용자의 이용시간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데이터를 많이 수집할수록 알고리즘은 정교해지고, 체계화된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더 오래 화면에 잡아둔다. 우리는 사용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대신 우리의 정보와 관심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네이버 사전이 ‘이제부터 각자 취향에 맞춰서 단어 정의를 다르게 보여주겠어’라고 선언한다고 가정해보자.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게 바로 IT 산업의 현실이다. 아무리 친구목록, 사는 지역, 취향이 비슷할지라도 분명 서로 다른 피드를 보고 있을 테다. 우리는 같은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세계관의 단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내가 보고 있는 정보들을 남들도 똑같이 보고 있을 거라 착각한다.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나의 주장을 더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제공하며 개인을 고립시킨다. 개인은 좁은 우물 속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그저 ‘멍청이’로 취급하게 된다.

  이는 나아가 사회적 파편화를 일으킨다. 점점 같은 생각과 피드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아버린다. 남자와 여자, 청년층과 노년층, 진보와 보수, 편을 가르고 서로를 극단적으로 비난하며 싸운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라디오 생중계 프로그램을 위한 가짜 쇼임을 모른 채 살아간다. 감독과 배우, 감쪽같은 세트장은 트루먼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우리도 어쩌면 트루먼과 다를 바 없다. 혹시 좁은 세트장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보자. 내가 믿고 있는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지, 충분한 팩트체크가 됐는지, 개인의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검토하자. 추천 게시물에 끌려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검색하는 것, 나와 반대되는 의견도 팔로우하며 시야를 넓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발 한발 나아가려는 작은 발걸음을 모아 세트장 밖 진짜 세상을 마주하자.

김현우 뉴미디어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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