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돋보기로 공간을 살펴주세요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0.12.07 0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른'이라는 렌즈를 바꿔야 할 때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 협약에 비준했지만,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도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도 어른의 눈에 맞춰진 시설로만 가득하다. 일상생활에서 계속 불편함을 느끼는 어린이는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아 속상하다며 ‘세상에 어린이도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외친다. 어린이의 외침이 하소연에 그치지 않도록, 어린이의 눈을 빌려 공간을 살펴보자. 

  빛줄기 한데 모아 더 밝게 
  지방자치단체(지자체)마다 다른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가 난립해 거주 지역에 따라 어린이는 차별적 여건에 처한다. 채희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 과장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공통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더라도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법률을 제정해야 합니다. 이 법률을 통해 공통적 가이드라인을 구비해야 하죠.” 어린이까지 포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이념이 모든 지자체에서 통일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엄소영 천안시의회 의원은 법률안에 「서울특별시 유니버설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 내용 일부가 담기면 효과적이리라 기대했다. “건축, 도시, 교통, 공원 등에 관한 각종 위원회를 운영할 때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 또는 ‘장애물없는 생활환경’ 인증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문구가 명시됐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을 개정해 공공건축심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지자체가 공공건축심의위원회를 거치도록 해야 해요. 이 과정을 통해 세심하게 공공시설물을 완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별로 환경적 조건, 인구 및 가구 구성, 문화 및 경제기반시설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김영주 교수(실내환경디자인전공)는 큰 틀에서는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갖추더라도, 각 지역의 세부 특성을 감안한 지역별 조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어린이 친화적 환경조성을 위한 세부 조례안이나 디자인 가이드라인 등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마련된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모양에 맞춰 조각하다 
  어린이는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에 비해 신체가 작고 운동 능력이 부족하다. 주의력이 부족하지만 호기심이 많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김영주 교수는 어린이의 보편적인 특성을 고려해 유니버설 디자인의 법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가 사용하기 적절한 규격의 시설을 제공해야 해요. 어린이의 주의력을 고려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시설 사용법을 안내해야 하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죠. 이런 내용이 포함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개념에 충실하면 아동의 핸디캡을 보완하는 환경 디자인을 구축할 수 있다. 김영주 교수는 어린이까지 포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리 중 하나인 ‘접근과 사용을 위한 적절한 크기와 공간’을 법에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가 손수 만든 DIY 돋보기
  어린이 친화적인 환경 조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어린이’의 참여다. 어린이의 생각을 짐작해서 어른의 생각만으로 만든 공간은 진정한 어린이 친화적 공간이 아니다. 장민정 국제아동인권센터 연구원은 아동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는 삶의 주인인 어린이 당사자라며 어린이의 필요를 청취하고 반영할 수 있는 공론화된 참여의 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완주군은 어린이·청소년의회에서 어린이가 의견과 디자인을 직접 제안해 통학버스 승강장을 구축했습니다. 키가 작아도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승강장을 배치하고 디자인하는 등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어린이의 의견이 중심이 됐죠.” 이채명 안양시의회 의원은 놀이 워크숍이나 토론 놀이를 통해 어린이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 친화적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자체가 아동의 참여를 통해 어린이 친화적 공간을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동복지법」에는 아동 참여권 보장 내용이 빠져있다. 「아동복지법」의 기본이념을 명시한 제2조를 보면,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4가지 기본원칙 중 아동 의견 존중 원칙, 즉 아동 참여권 관련 조항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민정 연구원은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아동 참여권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과 관련된 사안 전반에 아동이 참여해야 해요. 참여 방안이 적극적으로 마련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적 토대를 다짐으로써 일부 지자체의 노력을 뒷받침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어른의 높이’에 맞춰 설계된 화장실. 키 작은 아이에겐 손 씻기 마저 불편하다.사진 장준환 기자
‘어른의 높이’에 맞춰 설계된 화장실. 키 작은 아이에겐 손 씻기 마저 불편하다.
사진 장준환 기자
바닥에서 비상벨까지 높이 130cm. 위급한 화재상황에도 아이들은 차별받는다.사진 장준환 기자
바닥에서 비상벨까지 높이 130cm. 위급한 화재상황에도 아이들은 차별받는다.
사진 장준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