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온기를 글로 남기다
  • 이상헌 기자
  • 승인 2020.11.30 0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예술인의 아지트이자 해방구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은 1940년대부터 약 20년간 작가 이봉구가 바라본 명동의 모습을 기록한 소설이다. 많은 문화·예술인이 오가던 명동을 작가의 시선에서 에피소드 형식으로 서술했다.

  광복과 6·25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큰 혼란이 일던 때다. 해방 직후, 좌우 이념의 분열이 전쟁까지 이어졌고 모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명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명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음에도 동포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됐다. “날이 갈수록 팔·일오 감격은 사라지고 통일은 아득한 채 정치적 혼돈 속에 희망보다 절망이 가슴을 누르던 시기”라는 작가의 논평에서 당시 상황이 드러난다.

  전쟁이 끝나자 문화·예술인들은 다시 명동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다방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공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명동은 그들의 아지트이자 해방구였다. 당시 유행의 거점이 된 명동 안에서 상처를 회복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명동백작으로 불릴 만큼 오래 명동에서 생활한 작가의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웃고, 울고, 싸우는 이야기를 담담히 전한다.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다. 덕분에 독자는 그 시절 명동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전해져오는 말에 따르면 이봉구는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3가지 철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첫째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 것, 둘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셋째 돈 꿔달라는 말을 하지 말 것. 전쟁 직후, 문화·예술인들은 허무와 절망을 느끼곤 했다. 소설 속 인물들도 종종 술로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하지만 술은 그들의 감정을 격앙시켰고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다. 이봉구의 철칙은 싸움으로 사이가 멀어지는 동료를 위함이었다. 이외에도 동료를 생각하는 그의 따듯한 마음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의 기록은 다른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일화를 풍성하게 들려준다. 그 안엔 전쟁 이후에 파괴된 내면, 예술에 대한 숭고한 의지, 젊은이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승우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그리운 이름 따라-명동 20년』의 가치를 설명했다. “살아 숨 쉬는 명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봉구의 글은 어떠한 기록물보다 담담하면서도 따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