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지 어언 10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쓰기 전략이 참 많다. 오늘은 그중 하나, 글을 잘 쓰려면 빨리 쓰라는 이야기! 글을 쓸 때 빨리 쓰는 것의 효과, 이삿짐 내리는 비유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컨테이너 박스에 이삿짐이 잔뜩 실려 있다. 이삿짐이 사다리차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집으로 들어간다. 마침 첫 번째 짐은 거울. 거울을 받아든 일꾼이 생각한다. 이 거울은 어느 방에다 둘까? 어느 쪽 벽에 붙일까? 높이는 어떻게? 이런 고민을 하는 일꾼,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까? 

  올라오는 짐들의 위치를 하나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서는 안 된다. 우선, 각 방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올라오는 짐들을 각 방에 대강 넣어두는 게 상책이다. 부피 큰 이불 보따리, 이건 침실에! 묵직한 책 묶음, 그건 서재에! 일단 이렇게 해 두고, 방별로 다시 정리하는 거다. 

  컨테이너 박스에 실린 짐들이 어느 정도 부려졌다면? 어디든 상관없지만, 서재를 먼저 정리해 볼까? 서재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책상과 책장을 어디다 둘지 결정하고, 그 방에 쌓인 짐들을 대강 옮긴다. 책은 책장에, 학용품은 서랍에! 그리고 다시 정리하는 거다. 책장에 올려진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이건 어디에, 저건 또 어디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 처음에 무슨 단어를 쓸지, 어떤 문장을 쓸지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다. 머릿속에 구상해 둔 대강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쏟아내야 한다. 중복된 내용은 지우고, 부족한 내용은 더하면 된다. 잘못 쓴 내용은 얼마든 고칠 수 있다. 짐 정리할 때도 일단 올려두고, 잘못 놓여진 것은 다시 옮기면 그만이듯이.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일단 꺼내서 확인해 봐야 좀 더 효과적으로 다듬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꽤 정리된 상태로 자기 생각을 꺼낼 수 있다. 사고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어떤 시점에서 자신의 사고력은 딱 그 수준이 있다. 고민한다고 좀 더 나은 게 나오지 않는다. 그 시점의 자기 능력을 인정하고 일단 빨리 쏟아내자. 초고를 빨리 쓰면 글을 고칠 시간이 확보된다. 
확보한 시간엔 이런 걸 해 보자.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 좋겠다.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의 글인 양 비평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분명해질 것이다. 글을 고친 후 낭독해 보면 자기다운 문체로 잘 고쳤는지 점검도 가능하다. 

  빨리 쓰면 좋은 점 하나 덧붙이자. 학생들이 격하게 공감하는 내용! 초고를 썼다. 심사숙고했다. 초고가 마음에 안 든다. 얼마나 상처가 되겠나? 하지만 빨리 쓰면 상황이 달라진다. 초고를 썼다. 빨리 써야 한단다. 일단 빨리 썼다. 역시 초고가 거지같다. 하지만 자책할 필요 없다. 내가 좀 더 신중히 썼다면 더 잘 썼을걸? 이런 편한 마음이 들면 글도 잘 고쳐진다.  

임현열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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