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日蝕) 
 
달이 해를 가리기 시작하자
천지가 어두워진다.

어둠이 빛을 밀어낸다.

가만히 놔두어라,
당장 비켜서거라. 

아, 그 찬란한 빛을
가리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너도 밤에 은은한 빛을 내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밤길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거늘,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느냐? 

“인정받고 싶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몰라줘요.”

시무룩해진 달이 중얼거린다.

심술부리는 아이를
살살 어르고 달래자,
뾰로통하던 아이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별이 보석처럼 쏟아지고
모두가 잠든 어느 여름밤,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달님도
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는 경쟁에 익숙해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는 경쟁은 대학교에서도, 취업 이후에도 이어진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자기계발에 있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하지만, 요즘 세대에서의 ‘경쟁’은 그 의미가 많이 변질했다. 의미가 변질한 경쟁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영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며 ‘질투’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1연과 2연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질투’는 타인의 빛을 가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빛도 가린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스스로 색을 옅어지게 만들었다면 설령 인정을 받았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3연과 4연을 통해서 자신의 색을 흐리게 만드는 요즘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었다. 또한 6연과 7연에 나오는 달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고충과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는 그들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타인과 경쟁보다 ‘본인과 경쟁’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인과 경쟁이라고 함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분석한다는 것, 이는 곧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경쟁 구도에 세워놓고 바라보면 미래의 내가 걸어갈 길이 보인다. 활활 타오르던 불에 물을 끼얹으면 살릴 수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존재만으로도 빛난다. 느끼지 못했거나 찾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활동하는 시간이 달라도 태양과 달은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모두가 잠든 어느 여름밤, 하늘에 두 손 모아 간절하게 빌었던 달의 소원은 이뤄졌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충분히 빛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주눅들 필요는 없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밤길을 밝게 비추어 주는 달’이다.

최재인 학생
생명과학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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