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인간이 발견한 원자핵은 천여종에 이르며, 이 가운데에서 약 3백개
만이 안정한 원자핵으로 이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조성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 인간이나 지구는 우주가 진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핵합성과정의 폐
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이 그 생명을 다할 때까지 약 45억년 정도가 소
요될 것이라는 추정이고 보면, 지구의 생명체는 그 보다 훨씬 전에 소멸될
것이 자명하다. 다수를 차지하는 불안정한 핵, 특히 극도의 불안정선(Dripl
ine)에 속한 핵을 연구하는 것은 우주가 어떻게 진화하며, 태양이 어떤 과정
으로 에너지 생산을 멈출 것이며, 지구를 조성하는 물질은 어떤 합성경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는가 등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오늘날 허블
우주망원경이나 콤프텔 같은 고도의 우주 카메라는 여태껏 우리가 그려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비로운 우주의 역동적인 파노라마를 전송해주고 있다. 이
파노라마의 주역들은 왕성한 핵합성율을 지닌 극도의 불안정핵들로서 핵합성
의 표준모형을 파격적으로 수정토록 요구한다.이러한 우주환경을 재현하고
제한된 관측량을 향상시켜 핵합성의 근원과 과정을 예측가능하도록 하는 방
법이 최근들어 개발되고 있다. 대전류 양성자가속기에서 생성된 일차빔이 안
정한 표적핵을 때려 극도의 불안정핵을 생성하고 이를 다시 이차빔으로 이용
하는 실험이다.달무리핵으로 불리우는 리튬-11은 극도의 불안정한 핵의 대표
적인 예로서, 약간 불안정한 리튬-9를 중심핵으로 하여 두 개의 중성자가 고
유의 궤도운동을 지속하며 달무리를 만든다. 즉, 세 개의 구성핵이 상호간에
궤도운동을 함으로써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하여 리튬-
11이라는 원자핵의 존재를 관측하게 된다.16세기 중세, 보로미오라는 왕자가
옷에 부착했던 문장을 `보로미안 고리'라고 부르는데, 세 개의 링이 서로 어
우러져 있을 때는 안정하나, 이 중 하나를 빼면 고리는 흐뜨러지고 만다. 실
제로 리튬-11에서 중성자 하나가 모자라는 리튬-10의 존재는 아직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질량의 분포를 형상화하여 붙여진 달무리핵 리튬-1
1은, 물리계의 상호작용을 이체문제의 바탕에서 이해하는 우리의 통념에 도
전하는 삼체문제의 상호작용과 대칭성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
을는지 모를 `보로미안 고리핵'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강단에 서서 이 `보로
미안 고리핵'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가운데, 나는 묘한 사색에 잠겨본다.
구조조정, 가속화되는 교육개혁, 표준점수제, 복수학과 입학전형 등 학기초
부터 불어오는 교육환경의 변화속에 우리 대학은, 우리의 자연과학도는 `보
로미안 고리핵'으로 얼마나 오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춘식 <자연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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