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 이상의 예술을 꿈꾸다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0.11.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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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지금 강단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중앙대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연출가, 프로듀서, 예술감독,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지나 교수(연극전공)를 만나봤습니다. 

한국예술계 산업화의 희망 
제자를 향한 이유 있는 책임감 
그리고 멈추지 않는 열정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 아래에서 끊임없이 발을 움직인다. ‘연출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지나 교수(연극전공)도 예술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연출가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학생들을 생각하는 온화한 마음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따뜻함을 겸비한 카리스마로 현장에서는 배우의, 강단에서는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이지나 교수를 만났다.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이다. 입학한 계기가 있나. 
  “배우가 되고 싶었고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입학할 당시 중앙대 연극학과는 다른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죠. 배우를 꿈꾸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입학하기를 원하는 학교였어요.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요.(웃음)” 

  -학부를 졸업하고 영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결심했다고. 
  “졸업하고 연극, 뮤지컬배우 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던 배우 생활과 현실의 차이가 매우 컸죠. ‘과연 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에 빠졌어요. 재충전을 하고 싶었고 언어를 배우고 싶기도 해서 유학길에 올랐죠. 영어를 배우려고 영국으로 갔는데 욕심이 생겨서 석사과정까지 마쳤답니다.” 

  -연기가 아닌 연출로 방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공연연출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았어요. 잘해서 인정도 받았고요. 그러다 보니 연기보다 연출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재능도 찾고 인정도 받았으면 영국에서 계속 일해도 됐을 텐데. 
  “언어 장벽에 부딪혔어요. 연기나 연출은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장르인데 언어에 한계를 느꼈죠. 한국은 그때 IMF 외환위기였어요. 유학비도 부담됐고 여러 사정이 겹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영국 유학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예술 분야에서 유학은 지식을 채우기보다 문화를 느끼는 거예요. 유학 생활로 새로운 자극을 얻어왔죠. 노을이나 건물을 보는 경험도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자극이 돼요.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기보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접하는 거죠.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어도 연출가로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환경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움이 주는 자극을 빨리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영어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도 벌었고 연출가로 데뷔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죠. 그래서 제힘으로 빨리 데뷔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참여한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무엇인가. 
  “제 기억에 남는 작품과 관객이 기억하는 작품은 다르더라고요.(웃음) 관객들이 아는 작품은 <그리스>, <헤드윅> 등 유명한 대극장 작품이에요. 하지만 <광화문연가>,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이죠. 제가  제작자로 참여한 창작 뮤지컬이니까요.” 

이지나 교수가 참여한 뮤지컬 '광화문연가',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 우리나라 제작진이 만든 국산 창작 뮤지컬이다.
이지나 교수가 참여한 뮤지컬 '광화문연가',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 우리나라 제작진이 만든 국산 창작 뮤지컬이다.

 

  -뮤지컬 <더데빌>에서는 작사가로, 뮤지컬 <차미>는 프로듀서로, 연극 <어나더컨트리>에서는 예술감독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20년째 연출가를 하고 있는데, 한 분야에서 장인이 되는 일도 좋지만 계속 다른 역할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프로듀서에 도전하고 있답니다.” 

  -프로듀서, 연출가 그리고 예술감독의 일에 차이가 있나. 
  “엄청난 차이가 있죠. 프로듀서는 예산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이윤을 창출한다면 연출은 현장에서 작품을 상품으로 구현해내요. 예술감독이라고 하면 작품의 큰 그림을 봐주는 사람이죠.” 

  -20년 동안 공연예술 현장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는지. 
  “창작 뮤지컬에 열심히 참여한 일이랍니다. 외국 라이선스 뮤지컬을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때 외국 제작사가 로열티를 받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나요. 외국 작품에 계속 로열티를 주는 것 보다 우리나라의 작품을 외국에 팔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나라, 우리 스텝으로만 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작 뮤지컬에 몰두한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중앙대 강단에 서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뮤지컬 분야에서 연출가로서는 정점에 섰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제자 양성을 하고 싶었죠. 때마침 중앙대에서 뮤지컬전공 학생을 뽑기 시작해서 교수 공채가 났어요. 제가 중앙대를 나오기도 했고 잘됐다 싶어서 공채에 지원했답니다. 중앙대 강단에 선 지도 어느덧 7년이 됐네요.” 

  -강단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데뷔해서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지, 이미 배우로 성공한 학생에게는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할지 굉장히 신경 쓰고 있어요. 4년 동안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졸업 이후가 막막하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프로 무대로 스며들 수 있는 방향을 항상 고민해요.” 

  -강단에서는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반짝반짝 빛나는 제자들을 만나면 엄청난 행복감을 느껴요.(웃음) 제자들이 졸업하고 프로 배우가 돼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답니다.” 

  -공연계에서 활동하며 교수까지 하는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잖아요. 제 직업이 전문적이기를 원해요. 많은 예술이 아직 취미생활로 여겨지는 게 우리나라 예술계가 가진 독이죠. 예술도 산업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몇 작품하다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술계 종사자도 자신의 분야에서 분명한 역할이 있는 산업 역군으로 일하길 바라요. 예술계 직업을 전문화하고 싶다는 욕망이 제 원동력이랍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연출가 일을 조금씩 줄이고 제작자로서 더 많이 활동하고 싶어요. 이건 강단에서 매해 졸업하는 제자에 대한 조그만 의무감일 수도 있죠. 공연예술과 쇼 비즈니스분야는 막막하고 운도 따라야 해요. 그래서 제자들이 졸업하고 현장 경험을 빨리 쌓을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제가 작품을 제작하면 제자들이 데뷔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죠.  

  그리고 연출가는 현장에서 체력 소모가 굉장해요. 그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지식과 노하우를 전달해주는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프로듀서로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중앙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학생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래요’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지금은 힘든 시기여서 학생들에게 기회가 너무 없는 현실을 잘 알아요. 특히 예술계는 더하죠. 모든 인간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서 있을 때 극대화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다를 수 있죠. 제가 배우가 아닌 연출을 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중앙대 학생들은 대학에서의 4년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 찾는 시간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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