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위로 떠오르는, 정선을 비추는 여명
  • 장준환 기자
  • 승인 2020.11.0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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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맞이한 일출 뒤로 정선의 모습이 보인다. 햇살에 비친 억새와 산맥이 다홍빛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산이든지 정상에 오르기란 순탄치 않다. 하물며 이미 내려왔던 산을 다시 등반하기에는 적잖은 열정이 필요하다. 정선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정선은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 지역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지만 석탄 산업이 쇠퇴하자 점차 몰락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던가. 이곳은 지역 특성을 살린 관광사업과 주민의 노력으로 일어설 준비를 마쳤다. 다시 정상에서 바라볼 여명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정선의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자.

삼탄아트마인 속 ‘레일바이 뮤지엄’의 전경. 대한민국 산업을 이끌었던 광부을 위로하듯 철길에 꽃 한송이가 피어있다.

  탄광 노동자의 오랜 땀방울이 떨어진
  단풍으로 물든 산길을 달려 고한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진한 가을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첫 여행지를 ‘삼탄아트마인’으로 정했다. 최대 규모의 민영 탄광이 위치했던 정선을 여행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삼탄아트마인은 과거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로 연간 최대 150만 톤에 이르는 석탄을 캐내던 우리나라 대표 탄광 중 하나였다. 무려 38년여간 운영되면서 국내 석탄 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2001년을 끝으로 갱도 열차의 바퀴는 멈춰버렸다. 그렇게 정암광업소의 시간도 정지했다.

  약 10년간 멈춰버린 폐광에 새로운 노동자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우뚝 서 있는 수직갱 아래로 수많은 예술품과 의욕 있는 예술가들이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게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는 문화예술단지 삼탄아트마인으로 재탄생했다.

  삼탄아트마인 안 갤러리는 폐광의 옛 모습을 보존한 채 운영된다. 광부의 땀을 씻어내던 샤워장에 석탄범벅인 몸을 대신해 석고 조각상이 자리했다. 보존된 폐광의 흔적 속 예술품은 그것만의 아우라를 풍긴다. ‘레일바이 뮤지엄’에 발을 내딛자 석탄 캐는 소리와 기계음이 귓가를 스치는 듯하다. 철도에서 열차의 분리·연결을 조절하는 조차장을 그대로 유지한 전시장에서 그 시절, 고단했던 광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폐광촌을 뒤덮은 꽃잎 이불
  삼탄아트마인을 뒤로한 채 대한민국 최초의 마을호텔인 ‘마을호텔 18번가’에 다다랐다. 땅거미 진 한적한 골목에 피어있는 가을꽃이 화사한 인사를 건넨다. 마을호텔 18번가에 은은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지친 여행객의 안식처를 제공했다.

  마을호텔 18번가는 18번가의 기적으로 불린다. 고한읍 18번가는 폐광촌으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 잠들어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김진용 하늘기획 대표 가 변화를 이끌었다. 마을 만들기를 기획하고 골목의 빈집 2채를 고쳐 사무실과 공유오피스를 차렸다. 먼지와 쓰레기가 나뒹굴던 골목길도 정돈하기 시작했다. 

  동참한 주민들은 다 함께 골목에 꽃밭을 가꾸고 빈집을 수리해 객실을 조성했다. 결국 마을 전체가 호텔부대시설로 탈바꿈했다. 고한의 18번가는 국내 최초의 마을 호텔로 거듭났다. 마을 주민 모두가 힘을 합쳐 얻어낸 성과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주민들의 노력은 골목을 희망으로 꽃피웠다.

  햇빛에 물들어가는 황금빛 억새밭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경. 가시지 않은 새벽공기에 눈을 떴다. 정선을 소개하는 지역 콘텐츠를 운영하는 ‘숲자매숲생활’ 공동대표인 김정하씨의 안내를 따라 민둥산으로 떠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떠오르는 태양에 억새밭이 조금씩 물들어갔다. 정상에 도달할 무렵, 만개한 억새꽃이 금빛으로 일렁이는 장관을 연출했다. 그 뒤로는 바다처럼 펼쳐진 운해에 산맥이 잠겨있었다.

  약 해발 1118m의 민둥산은 가을을 대표하는 산행지다. 여타 산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산의 7부 능선까지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지만 정상 부분은 나무 한 그루 없이 억새꽃으로 평야를 이룬다. 민둥산 산행은 다양한 코스가 있어 취향과 체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정상까지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북탄광지역은 동양 최대 규모의 민영탄광으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탄광문화관광촌으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휴관에 접어든 탄광촌에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있다.

  아직 캐내지 못한 정선의 매력
  정선 여행의 종착지인 사북탄광문화촌으로 향했다. 환하게 웃는 광부의 얼굴이 기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북탄광문화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휴식기를 가진 셈이다. 가동을 멈춘 탄광 열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석탄 대신 관람객을 태우고 움직일 날을 기다리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울행 기차에 지친 몸을 맡겼다. 

  석탄에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정선의 석탄은 이제 지역상생과 탄광문화관광이란 열과 압력으로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돼가고 있다. 언젠가 햇빛에 반짝일 정선을 기대하며, 여행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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