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그대’랍니다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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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지금 강단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중앙대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태형 강사(도시계획·부동산학과)를 만나봤습니다.

한번뿐인 인생, 
다시 못 올 청춘을 
후회 없이 여행하기를

“별을 볼 때 바이블(Bible)처럼 여기는 책이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씀)예요. 어린 왕자가 어느 날 지구에 와서 1년 동안 여행하다가 뱀에 물려서 죽죠. 몸은 남겨놓고 별로 떠나요. 저도 인생을 열심히 살다 ‘정말 여행 잘했다’하며 웃으면서 떠나고 싶어요.”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별을 보면 자신의 고향 같다는 이태형 강사(도시계획·부동산학과). 그에게 밤하늘의 변치 않는 별이란 믿음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우주에서 왔다고 말하며 인터뷰 내내 낭만을 가득 심어준 별에서 온 어린 왕자, 이태형 강사를 만나봤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군사독재정권 시대였어요. 어린 마음에 ‘정치는 나쁜 사람들이 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죠.(웃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공부는 과학이라는 생각에 자연과학을 전공했답니다. 막상 학교에 오니 매일 실험실에서 밤늦게까지 연구만 하는 생활이 답답하더라고요. 여행도 다녀보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 바로 별 보는 동아리예요.”

  -동아리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당시는 망원경도 없어서 별 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대신 동아리에 좋은 사람이 많았죠. 그냥 하늘 보면서 술 한 잔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낭만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별이 너무 좋아지더라고요. 이런 좋은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별에 관련한 책을 만들어보자 해서 친구들과 ‘별 따라 꼴(모양)따라’라는 핸드북을 만들었어요. 그 핸드북이 학교에 몇천 부나 퍼졌죠.”

  -핸드북이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의 초석이었나.
  “맞아요. 대학원생 때 우연히 핸드북이 출판사로 넘어갔어요. 출판사 ‘김영사’에서 일반인도 볼 수 있는 책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왔죠. ‘대학 생활을 하면서 책은 한 번 써 보자’ 해서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쓰게 됐는데 3일 만에 5000부가 팔렸어요.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답니다. 덕분에 TV 방송도 하고 신문에도 실리고 라디오 방송도 했어요.”(웃음)

  -한국인 최초로 소행성을 발견했는데,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1998년에 일본이 소행성을 발견했어요. 일본 사람이 발견했는데 세종대왕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어요. 이후 과학기술부에서 저한테 ‘맨날 별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왜 소행성 발견을 못 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시민천문대도 없고 소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카메라도 없으니 카메라를 빌려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6개월 안에 소행성을 찾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쳤죠.(웃음) 카메라와 경비를 지원받아서 국내외로 찾아다녔어요. 소행성은 날씨가 맑아야만 보이고 움직이기까지 해 포착하기 쉽지 않았죠. 하지만 결국 경기도 연천에서 찾았답니다.”

  -이름을 ‘통일’로 붙였다고.
  “맞아요. 휴전선 근방에서 찾았으니 이름을 통일이라고 지었어요. 또 별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자는 의미도 있죠. 별 보는 마음은 이념에 상관없이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나사에는 남북한 통일의 의미로 등록됐더라고요. 소행성을 발견하고 나서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별과 우주』라는 월간지도 만들었죠. 이후 천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경희대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답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별을 관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는지.
  “사실 모든 게 기억에 남아요. 일식 보러 태국 가고, 호주의 초원에 누워서 별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착각까지 하며 별을 봤죠. 몽골의 초원에서 말 타면서 별 보던 모든 기억이 소중해요.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볼 땐 밤에 빛이 막 춤을 추는 느낌이었는데, 오로라는 여러 번을 봐도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답니다.”

별박사 이태형 강사가 직접 촬영한 우주 그리고 별. 사진제공 이태형 강사
별박사 이태형 강사가 직접 촬영한 우주 그리고 별. 사진제공 이태형 강사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고.
  “별 관련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 일식이 있었잖아요. 그때 YTN에서 같이 유튜브로 중계하자고 제안해서 방송했더니 100만명이 넘게 봤더라고요. 유튜브의 파급력을 체감해서 ‘별박사의 3분 우주’라는 채널을 만들었죠. 빅뱅 이후 우주의 모든 물질이 3분 만에 만들어졌다는 뜻이에요. 또 3분만 들으면 우주에 관한 전반적인 걸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담은 채널로 바꾸려고 쉬고 있답니다.”

  -우리나라 시민천문대 기획의 시초라고 알고 있다.
  “50살까지는 별이 좋아서 주로 별을 보고 살았어요. 강원도 영월에 있는 별마로천문대가 제가 처음으로 기획한 시민천문대죠. 1994년 무렵에 강원도 『태백』이라는 잡지에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물과 공기가 맑고 산이 좋은 강원도에서 별을 한 번 상품화해봤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그걸 본 영월의 공무원이 연락이 와서 일반인도 별을 볼 수 있는 시민천문대를 기획하고 만들었답니다. 

 대학원생 때 방송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별 좋아하는 사람이 많구나 느꼈어요. 별 보는 사업을 해 보자는 생각을 했죠. ‘㈜천문우주기획’을 만들어서 천문대 짓는 사업도 하고, 천문대를 운영하며 별 보는 행사도 진행했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별과 오로라를 보면서 재밌게 살았죠. 그러다 보니 50살이 넘어서는 땅으로 눈이 가더라고요.(웃음)”

  -중앙대에서 도시계획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유인가.
  “그렇죠. 제가 30년 넘게 별을 보면서 누구보다 하늘을 많이 봤기 때문에 하늘의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직접 한강도 걷고 산도 걸으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죠. 서울을 걷다 보면 서대문구 쪽 사람들 표정이 정말 좋아요. 나중에 보니까 그곳이 우리나라 행복 지수 1위더라고요.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땅을 연구하게 됐답니다.”

  -중앙대 강단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서울에도 천문대를 지으려다 보니 도시계획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앙대에서 도시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죠. 박사학위 수료한 다음부터 강의를 시작했답니다. 제가 중대부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면서 재밌게 강의하고 있어요.”

  -강단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학생들과 답사를 다닌 일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답사하면서 10km를 걷는데 2~3시간 이상 걸려요. 여름에 답사 가서 학생들이랑 아이스크림도 먹었죠. 힘들지만 학생들도 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랍니다. 학생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아직도 저랑 다닌 답사가 기억난다며 연락이 오기도 해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학생들에게 항상 ‘여기 와서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다’라고 해요.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도시를 알려면 사람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를 먼저 이해하고 사람 중심으로 도시를 계획해야 하죠. 학생들이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쉽진 않아요. 많은 경험이 필요하죠.”

  -시민 천문대장, 교수, 저술 활동 등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주변 사람들이 제게 굉장히 열정적이라고 얘기해요. 요즘도 하루에 10km씩 걷고 있죠. 고등학교 때 읽었던 『Last concert』라는 책이 있는데 ‘단 한번뿐인 인생이니까, 다시 못 올 청춘이니까 죽도록 사랑하리’라는 구절을 정말 좋아해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열정도 포함하거든요. 죽기 전에 ‘아 정말 여행 잘했어’라고 하면서 떠나고 싶어요.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도 아깝고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50살 이전까지는 하늘을 봤고, 이제 땅을 본 지 5~6년 정도 됐네요. 아직 땅은 하늘만큼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2~30년은 공부하고 75세까지는 걸으면서 땅을 연구하고 싶어요.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75세부터는 심리학이나 철학 등 사람에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딱 100살까지 살아보면 어떨까 싶어요.(웃음) 천(天), 지(地), 인(人)을 통달해보고 싶답니다.”

  -마지막으로 중앙대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한번뿐인 인생, 다시 못 올 청춘에 무엇을 하든 뜨겁게 열정적으로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중앙대의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서 참되게 열심히 살려고 한답니다.(웃음) 제가 학생들보다 별과 우주를 많이 봤기 때문에 사람과 삶의 가치를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어떤 전공을 하든 삶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해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지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그 아름다운 지구를 만드는 데 중앙대 학생들이 열심히 기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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