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운동선수 보호망
  • 서민희 기자
  • 승인 2020.09.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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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법의 심판으로 부패한 스포츠 고리 끊기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 故 최숙현 선수의 앳된 꿈이었다. 꽃길을 걷고자 한 그의 꿈은 팀 닥터, 동료 선수들의 폭행과 폭언으로 무너졌다. 이는 결국 6월 26일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국민은 분노했고 음지에 있던 체육인의 인권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관행을 넘어, 철저한 조사와 가해자 처벌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도 들끓었다.  
7월 3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근절 방안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운동선수보호법)을 의결했다. ‘운동선수보호법’의 핵심 내용은 스포츠윤리센터 출범이다. 이번 개정으로 운동선수를 위한 제대로 된 보호망이 구축됐는지 짚어봤다. 
 

  폭력의 늪에 빠진 체육인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진행한 2019 실업팀 직장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직장운동선수 1,251명 중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례는 총 326건이다. 학창 시절 복싱선수로 활동했던 A씨(22)도 선배 선수의 폭언과 폭행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었어요. 스파링 한다는 명목으로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기도 했죠.” 선배 선수의 위압감 때문에 폭력에 맞설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공포심 때문에 선배들의 폭력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어요.” 
수직적 조직문화가 만연한 체육계에서는 상대적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보호법'에서는 신고자와 피신고자의 물리적 공간 분리를 권고할 뿐 의무성을 띠진 않는다. 이용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한 현행법에 관해 말했다. “체육계에서 발생한 미투 사건 이후 국회에 여러 건의 관련 법률 개정안이 제출됐어요.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 부분이 빠졌죠. 개정안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인권 보호는 어디에
  ‘운동선수보호법’이 의결되면서 체육계 공정성 확보와 체육인의 인권 보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됐다. 스포츠윤리센터는 가해자 처벌 현실화, 피해자의 회복을 돕기 위한 심리·정서·법률 등 종합적 지원의 역할을 맡는다.
기획재정부는 약 23억원의 예산을 스포츠윤리센터에 배정하면서 당초 40명을 뽑기로 했던 인력이 26명으로 축소됐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은 스포츠윤리센터의 직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윤리센터가 인권과 반부패 활동에서 교육과 조사, 피해자 보호,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데 현재의 인원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26명과 23억원의 예산으로 한국 스포츠 인권과 반부패 업무 전담 조직을 설계했다는 건 주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소극적인 스포츠 인권 대응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허정훈 교수(스포츠과학부)는 예산부족으로 인한 기관의 활동 제한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스포츠윤리센터는 스포츠 관련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조사, 침해 시 신속한 대처, 후속조치 등 다양한 활동을 보장해야 해요. 이런 수준의 활동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풍부한 조직과 인력, 예산이 배정돼야 하죠.” 강태형 경기도의회 의원은 역할에 따른 부서의 세분화와 적절한 인원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성폭력 부서, 스포츠 폭력 부서 등 구체적으로 부서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부적으로 나뉜 팀에 알맞은 인원이 투입돼야 하죠.”
스포츠윤리센터는 서울에만 1곳 존재한다. 따라서 지방에서 체육인의 인권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는 신고 자체를 하나의 장벽으로 인식할 수 있다. 최동호 소장은 피해자가 처한 환경이 그들의 발목을 잡게 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피해자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조사받기 위해서 서울까지 와야 해요. 피해자는 이동이 부담일 수 있죠. 생계나 직업 활동 때문에 신고하기가 망설여질 수 있어요.” 그는 스포츠윤리센터의 거점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불편함과 부담감 없이 신고하고 진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요. 따라서 지역별로 스포츠윤리센터 출장소 역할을 하는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리는 있고 권리는 없고
  스포츠윤리센터는 현재 수사권과 징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수사권이 없으니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제대로 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 강제 수사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가 출석을 거부한다면 제대로 된 조사가 실행되지 않을 수 있다. 이숙진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은 수사권 부재로 인한 한계를 토로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사건을 직접 조사할 권한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수사기관과 같은 강제 수사는 이뤄질 수 없죠.” 
기영노 한국핸드볼발전재단 이사는 원활한 수사진행에 독립적인 수사권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사건이 접수되더라도 경찰, 검찰 등의 협조를 받아야 해요. 이는 수사 지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죠.” 현직 사이클 선수 B씨(25)는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제적 조사권과 직접적 처벌권이 없다면 운동선수에게 불합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빠른 조치가 취해질 수 없어요. 느린 대처는 피해자가 받는 부정적인 영향을 키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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