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다양성의 힘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0.09.14 0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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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지금 강단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중앙대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다양성의 가치를 전하는 박순태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를 만나봤습니다.

‘한류’의 시작부터
저작권정책 선진화까지
다양성 존중에서 시작된
문화발전의 원동력

“아름다움은 순위를 매길 수 없어요.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존중해야 하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답니다.” 인터뷰 중 박순태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는 ‘다양성’을 계속 강조했다. ‘한류’와 ‘문화 콘텐츠’라는 용어 정립, 「청소년기본법」 제정, 국립서울현대미술관 건립 등 공직에서 이뤄낸 다양한 성과는 다양성의 가치가 빛을 발해서가 아닐까. 이제는 강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물 흐르듯 살아가고 싶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법학을 전공했는데 원래 법조계에서 일하는 게 목표였는지.

 “법대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법고시를 준비했어요. 공부하다 문득 ‘사법부는 분쟁 해결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행정부에서 직접 국가사업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행정고시로 방향을 바꿨어요. 다행히 행정고시 공부가 잘 맞았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합격했답니다.”

 -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착한 학생이었어요. 그렇지만 내적으로 방황도 많이 했죠.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주로 했답니다. 학생 때부터 문화의 중요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지방의 토속 문화나 방언 문화에 관심이 많았죠.”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그저 문화를 지향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웃음)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사피엔스 등으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놀이를 좋아하고 문화 지향적인 호모 루덴스에 속하는 것 같아요. 타고난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화에 관심이 간 거죠.”

 -문화 지향적인 성향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를 선택하게 했는지.

 “원래 문체부를 희망하지는 않았답니다. 법학을 전공했으니 어떤 부서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문체부의 저작권국이 눈에 들어와서 문체부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리고 30년간 몸담게 됐네요.(웃음)”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 시절
‘국립 오페라합창단’에 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는 박순태 교수.
사진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으로 일할 때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

 “전공을 활용해서 제도나 규범적인 부분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3가지 법을 제정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청소년기본법」, 「청소년 보호법」 제정에 앞장섰답니다. 「청소년 보호법」에는 청소년을 유해환경, 유해 약물, 유해 매체로부터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죠. 덕분에 우리나라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3가지 법이라고 했는데, 다른 하나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요. 이 법을 바탕으로 ‘한류’라는 개념을 만들었죠. 과거 문체부는 예술인을 위해 존재했지만 산업적으로 수익을 내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해당 법 제정 이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문화콘텐츠를 지원했죠. 콘텐츠 수입에 중점을 두던 한국이 영화나 드라마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한류 열풍이 일었어요. 덕분에 제가 문화예술국장일 때 문화상품 수지가 흑자로 바뀌었답니다.”

 -최근에 저술 활동도 했던데.

 “『문화콘텐츠산업법』, 『문화예술법』, 『문화콘텐츠와 저작권』 세 법률서를 발간했어요. 제가 문화예술에 관련한 법이나 제도를 정립했잖아요. 누구든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책으로 정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문화콘텐츠와 저작권』은 7월에 2020 세종 도서 학술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에도 앞장섰다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원래 과천 산꼭대기에 있었어요. 접근성이 안 좋았죠. 마침 경복궁 동쪽에 방대한 터가 있었는데, 궁궐 옆이라 문화가 곁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논의 끝에 경복궁 동쪽, 지금의 자리로 미술관을 옮기기로 했답니다. 누구든지 들락거릴 수 있는 ‘마당’이라는 개념으로 미술관을 디자인했죠. 그런데 공사를 진행하다 옛 종친부 터가 나왔어요. 그걸 유구라고 하는데,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유구가 나오면 보존해야 해요. 사업 진행이 불가능하게 됐죠.”

 -어떻게 해결했는지.

 “사무관 시절 일본 오사카성으로 출장을 갔어요. 성 옆의 유구를 유리로 덮어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더라고요. 그 아이디어를 적용해 유구를 보존했죠. 그렇게 현대와 고전이 조화된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완성됐답니다.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과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다른 미술관에는 없는 마당 6개를 가지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공직생활을 하면서 어떤 가치를 얻었나.

 “다양성의 가치를 가장 크게 깨달았어요. 전통문화계는 악기를 다루더라도 스승에 따라 다른 ‘류’로 분류돼요. 분야가 많다 보니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할 때 갈등도 있었고 통합이 잘 안 됐죠.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생각해보니 예술 분야별로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 우리 문화가 다양하게 보존되는 이유더라고요.”

 -중앙대 강단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

 “공직에 있을 때 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어요. 공직 생활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중앙대와 인연이 닿았죠. 문체부에 오래 있다 보니 예술 분야에 강한 중앙대에 애착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중앙대 강단에 서게 됐답니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예술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돼요. 사람 일은 모르니 서로를 평가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단에서 전하고 싶어요. 사람과 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해요. 다양성이 곧 민주주의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고, 나아가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한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중국에 두보와 이태백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저는 냉철하고 철학적인 두보와 자유분방한 이태백의 성향을 고루 가지고 있죠. 그중 이태백의 성향이 저를 다양한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든 원동력이랍니다. 되든 안 되든 많이 도전했죠. 실패해도 ‘이태백처럼 은하수하고 친구 하면 되지’ 하면서요.(웃음) 그러니 언젠가는 되더라고요. 중앙대에 오고 나서는 이태백과 같은 제 성향이 학생들과도 잘 통해요. 여기서 두보의 기질을 발휘하면 소위 말하는 ‘꼰대’ 소리 듣지 않을까요.(웃음)”

 -앞으로 계획은.

 “특별한 계획은 없고 이태백처럼 물 흐르듯 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다른 책을 쓰게 될 수도 있고 다른 자리에 갈 수도 있겠죠. 잘 되는 일이 있고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부 받아들이려고 한답니다.”

 -중앙대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와 다른 대상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피카소도 처음에는 천대받다 나중에는 입체파의 거장이 됐잖아요. 아름다움과 사람에게는 순위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다양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러니 중앙대 학생은 항상 모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가치를 알았으면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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