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장 상인들은 철거된 육교에서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구시장 상인들은 철거된 육교에서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구시장 투쟁에 많은 연대가 함께 했다.
구시장 투쟁에 많은 연대가 함께 했다.

강제집행 과정, 상처는 여전해

개설자 서울시가 직접 관리해야

내륙지 최대의 수산물 도매시장, 평범한 상인들은 5년 새 전혀 평범하지 않은 투쟁가가 됐다. 2012년 수협이 추진한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갈등의 씨앗이다. 구 노량진수산시장이 철거되면서 상인들이 수십 년간 일궈온 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평생 삶을 영위해온 자부심, 생계터전, 구시장의 명성, 이 모든 것을 잃게 된 후의 이야기다.

  물러설 수 없는 이유
  “다 끝난 일인데··” 노량진수산시장 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게 수협의 입장이다. 4년이 지난 아직도 69명의 구시장 상인들이 남아 노량진역과 옛 시장을 잇는 육교 위에서 버티고 있다. 상인들이 쉽사리 물러날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6년부터 3년에 걸쳐 시행된 총 10차례의 명도집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협은 구시장을 완전히 철거하기 위해 단전과 단수를 감행했다. 한상범 공동위원장은 명도집행 당시 수협이 폭력도 행사했다고 말했다. “수협이 고용한 용역과 구시장 상인 사이 물리적인 충돌이 많았어요. 늦은 시간에도 욕설과 발길질이 끊이지 않는 등 행패가 난무했죠. 수협 직원과 용역이 날카로운 장비로 수도와 전기를 끊는 것을 상인들이 저지하자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어요.”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용역을 동원해 폭력을 행한 바가 없다며 오히려 상인들에게 폭력을 당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상범 공동위원장은 수협의 진술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건장한 청년과 고령의 상인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수협은 충돌 과정에서 입은 가벼운 상처도 과장해서 진단서를 끊었죠.”

  이후 동작구가 실시한 행정대집행은 원만하게 이뤄졌을까. 동작구는 용역을 사용했으나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현장 목격자의 진술과 어긋났다. 최서현 진보당 동작구 위원장은 2차 행정대집행 현장이 매우 폭력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무서웠어요. 새벽 6시쯤 행정대집행이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이미 4시 반부터 구청 직원과 용역이 들어와 있었죠. 천막, 기계 등 판매 도구는 이미 파편이 돼버린 상태였어요.”

  메아리 없는 외침
  현대화사업 추진 당시 구시장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 좁은 판매 면적 등을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했다. 임현우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 기획홍보팀 대리는 명도집행 이전에 상인들과 협의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신시장에 들어오는 상인에게 초기 임대료를 일정 기간 면제하겠다고 제안했어요. 점포 면적은 희망자에 한해 1.5평에서 2평까지 조정하기도 했죠.” 그러나 신시장 건립 초기에 입주한 A씨는 수협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단 입주하면 임대료를 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어요.”

  수협은 명도집행을 통해 점포를 전면 철거했고 동작구는 구시장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러나 명도집행 당시 신시장을 거부한 상인들은 구시장 일부 존치를 주장했다. 강제집행은 구시장 상인들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진행됐고 상인들의 삶터는 사라졌다. 명도집행 이후 신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법적 권리마저 소멸해 현재로서는 신시장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소유자와 개설자가 일치하지 않는 국내 유일한 도매시장이다. 수협 소유 자산인 노량진수산시장을 제외하고 국내 모든 도매시장은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다. 이에 남아있는 구시장 상인들은 도매시장 개설자인 서울시가 직접 관리를 맡아 판매 상인 신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노량진수산시장을 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협과 상인은 임대차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서울시가 관여할 수 없어요. 직접 시장을 관리하려면 수협과 협의를 해야 하죠. 서울시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최서현 위원장은 서울시가 구시장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서울시가 주체로 나서 수협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해요. 상인분들이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게 중요하죠”

  아물지 못한 상처
  구시장 상인들의 상처는 단지 물리적인 폭력 때문만이 아니다. 한상범 공동위원장은 구시장에 호의적이지 않은 대중의 시선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주위의 왜곡된 시선이 가장 힘들어요. 우리는 약자의 생계터전이 다시는 사라지지 않도록 끝까지 투쟁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요.”

  한상범 공동위원장은 투쟁 과정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변호사 선임, 소송 등 투쟁에 필요한 비용이 많아요. 기득권인 수협에 비해 경제적 한계가 크게 작용해요.”

  한때 어두운 새벽을 환하게 밝혔던 노량진수산시장. 이른 아침부터 상인과 손님 간 정겨운 대화가 오갔던 그곳. 따뜻함과 생기가 넘쳤던 구 노량진수산시장은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자 삶 그 자체였다. 이제는 외로움에 익숙해진 그들의 목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여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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