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에서 벌어진 ‘승자 없는 싸움’
  • 임해인 기자
  • 승인 2020.09.0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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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한구석에는 수년째 걷히지 못한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때는 서울의 명물이었으나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 남겨진 골칫덩이가 돼버린 구 노량진 수산시장이죠.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추진되면서 거리에 나앉은 구 시장 상인들은 여전히 삶터를 찾지 못한 채 도심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열댓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상인들은 육교 위를 지키고 있죠. 어둡게 그늘진 노량진 육교에도 볕들 날이 오길 소망하며 구 노량진 수산시장 투쟁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노량진, 사실과 기록 사이
 
투쟁 상인 “생존권 빼앗겼다”
수협 “무단점거로 큰 피해”


좁혀지지 않는 입장
구시장은 역사 속으로 

“원래 시장의 맛이라는 게 있거든. 신시장은 깨끗하긴 한데…” 동작구에 거주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한 시민이 신 노량진수산시장을 나서며 말했다. 현대화시장이 개장한 지 4년 반. 그동안 노량진수산시장은 싸움터였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이권 싸움’, 누군가는 ‘생존 싸움’이라 말한다. 메워지지 않은 갈등의 골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수협과 함께 출항한 노량진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는 다소 복잡하고 독특하다. 대행자와 지정도매인, 건물과 대지 소유주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체는 1927년 개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물 도매시장 ‘경성수산’이다. 서울역 부근에 있던 해당 도매시장은 1970년대 들어 노량진으로 옮겨왔고 주변 작은 시장들과 합쳐져 ‘노량진수산시장’이 됐다. 건물과 대지 소유주는 한국냉장 주식회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변경됐으나 개설자는 줄곧 서울시가 맡아왔다.

  2002년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에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가 등장했다. 개설자는 여전히 서울시였으나 건물과 대지 소유주가 수협으로 넘어갔다. 수협은 2004년부터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 계획에 착수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화사업이 대립의 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전까지 상인과 수협 사이에 큰 마찰은 없었어요. 현대화사업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시작됐죠.”

  현대화 파도가 밀려오다

  현대화사업은 기존 시장(구시장)의 시설 노후화와 주차공간 협소 등을 이유로 진행됐다. 수협은 국고로 지원받은 사업비를 활용해 구시장 주변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일부 상인은 새롭게 지어진 시장(신시장)에 이전하기를 거부했다. 신시장은 구시장에 비해 노량진역과 떨어져 있고 임대료도 비쌌기 때문이다. 좁고 폐쇄적인 구조 역시 상인들이 신시장 입주를 꺼린 이유였다.

  2015년 10월 신시장 건물이 완공됐으나 상인들은 환경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리고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입주 거부 선언 및 집회를 전개했다. 수협은 신시장에 예정대로 입주하는 상인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협과 상인 간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구시장 점포가 완전히 이전되지 못한 채 2016년 3월 신시장이 문을 열었다.
신시장 개장 초기에 입점한 상인 A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구시장 상인들에게 눈치가 보여 입주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이 망설였어요. 결국 신시장에 들어왔지만, 손님은 구시장으로 몰린 상황이었죠.”

  수협의 계획대로 노량진수산시장이 신시장 부지로 이전하면 상인과 수협 간 임대차 계약관계가 종료돼 구시장 부지를 수협에게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은 신시장 이전을 반대하며 구시장 부지에서 수산물 판매를 이어갔다. 그러자 수협은 부지를 돌려받기 위해 상인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수조 속 뒤엉킨 물고기처럼

  2017년 4월 첫 명도집행을 시작으로 총 10차례의 강제집행이 2년 4개월간 이어졌다. 구시장과 수협의 갈등 역시 계속됐다. 수협은 구시장의 전기와 물을 차단하고 차량 통행로를 시멘트와 구조물로 막는 등 조치를 취했다. 구시장에 남은 상인들은 자체 발전기를 돌리고 통행로를 봉쇄하는 구조물을 부수며 영업을 이어나갔다.

  폭력을 동반한 충돌도 끊이지 않았다. 명도집행뿐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또한 서로를 향한 고소·고발전이 이어졌고 공청회와 기자회견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구시장 상인들은 수협이 폭력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해당 건이 긴급구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거절 이유에는 수협의 명도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승소 판결이 포함됐다.

  한편 수협은 일부 구시장 상인과 협의했다. 2019년 6월 19일 최종 명도집행 직전 일부 구시장 상인들과 입주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는 서울시의 중재 아래 8차례의 협상에 걸쳐 진행됐다. 2019년 8월 9일 법원은 구시장을 대상으로 10차 명도집행을 통해 남은 점포를 모두 폐쇄하고 최종 집행 완료를 선언했다. 이후 구시장은 철거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뜯긴 아가미와 망가진 비늘

  대치 초반 입점을 거부한 상인들은 약 200명이었지만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해당 인원의 상당수가 신시장으로 입점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신시장에 들어가지 않은 상인은 69명이었다. 수협은 명도집행에서 발생한 비용과 상인들이 내지 않은 관리비용을 상인에게 각각 손해배상과 부당이익금으로 청구했다.

  수협 측도 구시장 폐쇄가 늦어짐에 따라 큰 피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수익 감소를 비롯해 추가 경비인력 배치, 준공승인지연 등 수협의 직·간접적 피해가 있었다. 임현우 노량진수산주식회사 기획홍보팀 대리는 명도집행 이후 매출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구시장 상인들이 퇴거한 이후 신시장 매출이 흑자로 전환됐어요. 무단점거됐던 부지를 되찾았기에 구시장 상인과 추가 협의는 필요 없죠.”

  물 밖 물고기, 시장 밖 상인

  남은 구시장 상인들은 노량진역 앞 도로에 설치한 천막에서 장사를 이어갔다. 동작구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 2월까지 약 460건의 민원이 접수됐고 불법 주류 판매 및 위생 문제도 제기됐다. 동작구는 불법 시설물에 대해 2019년 12월, 2020년 2월 총 2차례에 걸친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또한 구시장 상인에게 행정대집행 비용을 청구해 상인 소유 재산을 압류 조치했다.

  상인들은 3월 이창우 동작구청장을 특수폭행·재물손괴·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행정대집행은 현대화사업에 저항하는 농성장과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상인들은 인권위에 행정대집행의 폭력성에 관한 진정도 제기했다.

  행정대집행이 끝나고 반년이 흘렀다. 노량진역 2번 출구를 나서면 아직도 계단 옆엔 구시장 상인들의 천막이 설치돼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 총연합회 한상범 공동위원장은 횡단보도 건너 동작경찰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분 존치를 요구했던 구시장 부지마저 모두 철거돼 버렸어요. 이제 서울시에게 장사할 공간을 요구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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