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낳은 폭력의 굴레
  • 오유진 기자
  • 승인 2020.08.3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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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최숙현 선수가 숨진 지 2달째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최 선수의 염원은 어디로 가고, 체육계의 현실은 여전하다. 문제를 덮고 책임을 회피하는 체육협회. 사실을 알고도 방관했던 수사당국.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폭력의 굴레는 계속된다. 제2의 최 선수가 나오지 않도록 체육계의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최 선수의 폭로는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 문제를 다시 일깨웠다. 그 이전에도 식사 중 자신에게 밥풀이 튀었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일,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을 먹고 토하게 한 일까지. 이런 만행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권력 구조의 문제다. 높은 성적을 지향하는 엘리트 체육계가 폭력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라면 지도자와 선배들에게 맞으면서 훈련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무수한 희생을 낳았다.

  폭력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근시안적 대책으로는 굴레를 멈출 수 없다. 폭력을 당연시하는 권력 구조를 바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체육계의 내부 각성이 그 첫걸음이다. 우리나라는 선수와 지도자 간 폭력이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폭력을 저질러 징계를 받았던 감독이 다시 복귀하는 일도 있다. 고질적 병폐와 같은 체육계 문화를 건드리지 않으면 문제는 되풀이된다.

  정확한 진상 규명과 가해자의 엄벌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계속되는 폭력에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약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2018년 초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의 성폭행 폭로 이후 국회는 체육계 개혁을 공언했다. 지난해 1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운동선수 보호법」을 발의하고, 체육계 인권센터를 설립해 운동선수 인권 침해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여야의 정쟁에 밀려 1월에 통과된 해당 법안은 결국 8월이 돼서야 시행됐다. 그 사이 선수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자성(自省)해야 한다.

  정치권은 처벌 규정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추진해주길 바란다. 폭력을 가했을 때 출전 정지나 자격정지 기간을 늘리거나, 더욱 강력한 일명 「최숙현법」을 제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대책 마련’이라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폐쇄적인 체육계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주인공 난장이는 매일 밤 지붕 위에서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린다. 소설 속에선 아무리 공을 쏘아 올려도 땅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선수들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여태 체육계의 수많은 부조리는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최 선수를 비롯해 피해를 당한 선수들의 소망이 힘없이 곤두박질치지 않길 빈다.

오유진 경제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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