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슬아 작가님의 칼럼 <재능과 반복>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슬아 작가님은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재능과 노력의 긴장 관계와 꾸준함이 주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나에게 이 고민이 가장 크게 다가온 시기는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다. 내가 공부하려던 주제의 대가들이 모여 있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나의 자존감은 한껏 높아졌다. 그들이 나의 재능을 알아본 것만 같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그들을 뛰어넘는 연구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포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사과정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들과 나의 학문적 재능의 격차를 절감했다. 특히, 내 글들을 그들의 글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할 때 내 글은 항상 오징어같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나의 목표는 제발 오징어 같지 않은 연구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게 되었다. 꽤 긴 분투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소중한 박사 논문을 손에 들 수 있었다. 재능의 격차를 받아들이고 노력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박사 논문은 여전히 지도교수님들의 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더는 오징어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재능과 노력이라는 것이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부터 오징어가 아닌 특출난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재능과 노력의 관계 속에서 차츰차츰 변해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재능과 노력의 긴장은 이후에도 순간순간 나를 괴롭혔지만, 박사과정 동안의 경험은 이러한 자극이 이전만큼 나의 자존감을 흐트러트리진 않게 해줬다. 꾸준함이 주는 힘이 대단하고, 또 결과와 상관없이 그걸 목표로 살 수 있다는 게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스스로 세우게 되었다.

 1) 꾸준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재능이다. 가끔 꾸준하지 못해도 너무 자신을 탓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절실한 꾸준함을 경험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2) 꾸준하게 살려면 재능+꾸준함을 가진 이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을 밀어내면 나도 반대 방향으로 밀려가게 된다.
 3) 재능+꾸준하지 않은 사람들의 성취는 부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4) 재능은 상대적이다. 내가 누군가의 재능에 상처받았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은 상처를 줄 수 있 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기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재능과 노력의 긴장 속에서 고민하고 있을 중앙대 학생들과 나의 경험을 나눠보고 싶었다.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빌려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어딘가를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율 사회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