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어라, 세상은 너희를 기다리고 있단다”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0.08.30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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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슈타인   독일어문학전공 교수. 사진 고민주 기자
마르쿠스슈타인 독일어문학전공 교수. 사진 고민주 기자

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지금 강단에 선 이들을 만납니다. 중앙대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주는 독일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르쿠스슈타인 교수(독일어문학전공)를 만나봤습니다.

타국에서의 삶이 
걱정보다 즐거움이었던
음악을 가슴에 품은 
언어학계의 첼리스트

203관(서라벌홀) 복도에서 인사하면 ‘Hallo!’ 보다는 ‘오, 안녕하세요.’ 라고 답하는 독일인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가. IMF 외환위기 때 한국으로 건너와 23년째 중앙대 강단에서 강의하는 마르쿠스슈타인 교수(독일어문학전공)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창한 한국어로 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그를 만나 중앙대 강단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어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원래부터 언어학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첼로와 성악을 공부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연습 갈 정도였죠. 대학에서도 당연히 음악을 전공하려 했답니다. 그런데 연습 중 손 관절과 폐가 안 좋아졌어요.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죠.”

-정말 속상했겠다.

“맞아요. 이후 음악을 그만뒀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그만두고 나서 굉장히 힘들었죠.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해야 할까 계속 고민했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 때 잘했던 과목인 언어학이 떠올랐죠. 제가 대학 입학할 즈음 ‘실용 언어학’, ‘의사소통 이론’이 새로운 분야로 떠올라 연구되기 시작했어요. 흔히 언어학 하면 떠오르는 문법같은 딱딱한 과목들보다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겠다 싶어 언어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죠. 그래서 언어학 전문가가 많은 빌레펠트 대학에 입학했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입학한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대학 때 학생회장을 하며 대학의원회에서 활동했어요. 그러나 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만 취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실망했죠. 이후 대학 내부 일에 흥미를 잃고 대학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웃음) 그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고민했죠. 언어학을 전공했기에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일 평생교육원에서 외국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답니다.”

-졸업하고도 평생교육원에서 일했나.

“졸업 후에도 평생교육원 학과장 일을 하면서 행정 업무를 봤어요. 대우는 좋았지만 행정 업무는 제게 의미 없는 일이라 여겨져서 그만뒀죠. 마침 헝가리에서 언어학과 독일어 교수를 구하더라고요. ‘슈타인 교수님’ 한번 해 보고 싶어서 헝가리로 갔답니다.(웃음)”

-헝가리에서 계속 교수로 일했는지.

“헝가리 대학에서는 2년 정도 일했어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이 유명한 남미로 가고 싶었죠. 그래서 남미에서 일할 수 있는 곳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결국 다시 독일로 돌아왔고요. 이후 좋은 기회를 얻어 독일에서 언어치료 분야 일을 시작했답니다.”

-언어학을 공부하고 언어치료 분야에서 일해서 더 잘 맞았겠다.

“아니요. 오히려 우울했어요. 병원에서 대부분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일하다 보니 생각한 만큼 치료 효과가 좋지 않더라고요. 또 저는 큰 도시에서 생활하기를 좋아하는데 당시 제가 일했던 병원이 시골에 있어요,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2주마다 대도시인 베를린으로 가기도 했답니다. 결국 1년 정도 일하다 베를린에서 학원 강사 일을 했어요.”

-여러 나라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베를린에서 일하던 중에 한국에서 생활해 본 제 친구가 같이 한국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죠. 처음에는 아시아 국가에 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어요. 당시 독일에서 만난 일본인들에게 벽이 느껴져서 한국 사람들도 비슷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친구가 한국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계속해줬고, 주위에서 한국 사람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답니다.”

-그래도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처음에는 베를린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당시 제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경험을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죠.”

 

-중앙대 강단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한국에 가기로 했을 때 마침 중앙대에서 독일어 교수를 구하고 있었어요. 또 중앙대가 서울에 있어서 더 괜찮다고 생각했죠. 저는 큰 도시에서 생활하는 걸 좋아하니까요.(웃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땠나.

“제가 약간 문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에요.(웃음) 한국에 왔을 때가 1997년, IMF 외환위기였죠. 원화 가치가 많이 떨어져서 월세 내고 나니 돈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밤에는 연세대 어학당에서, 낮에는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중앙대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첼로 연주도 했다고.

“한 학생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해 보라고 추천했어요. 어릴 때 부상 때문에 음악을 그만뒀지만 취미로라도 계속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지금은 건강 문제로 연주를 하지 않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중앙대 학생들과의 기억에 남는 다른 경험이 있는지.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동료 교수님들이 학생들과 ‘슈탐티쉬(Stammtisch)’를 해 보라고 했어요. 독일에서 술을 마시거나 카드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슈탐티쉬라고 해요. 그래서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슈탐티쉬를 시작했죠. 저는 한국 학생들이 조용하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찻집에서 모임을 가지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퇴근길에 한 학생이 ‘지금 친구들과 모여서 놀고 있는데 혹시 교수님도 함께 가보겠냐’고 묻더라고요. 학생들이 있는 장소에 갔다가 깜짝 놀랐죠.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슈탐티쉬를 더 편하게 진행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웃음)”

-망원동에서 독일 가정식당을 운영했다고 들었다. 식당을 운영한 계기는 무엇인가.

“2015년쯤 아내를 처음 만나고 결혼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내와 함께 식당 운영을 시작했답니다. 저는 학교에서 일을 하니 틈틈이 레시피를 개발하면서 아내를 도왔어요.”

-‘츠바이슈타인’ 식당이 맛집으로 유명했더라.

“유럽 음식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해서 대박이 났답니다. 처음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음식은 ‘굴라쉬’라고 생각했어요. 굴라쉬는 소고기 찌개와 비슷한 헝가리 음식이에요. 반응이 좋아서 ‘슈니첼(독일식 돈가스)’도 출시했는데 굴라쉬 보다 더 인기를 끌었죠. 제가 개발한 로제 파스타도 잘 됐고요. 덕분에 방송에도 음식들이 소개됐어요.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식당 문을 닫았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짧게 머물렀는데 한국에 온 지는 20년이 넘었다. 처음부터 한국에 오래 있을 생각이었는지.

“절대 아니었어요.(웃음) 일단 1년만 있어 보자 했죠. 근데 학생들이랑 지내는 게 재미있었고, 젊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또 당시 제가 독일어를 가르치며 사용했던 교재의 지문이나 표현이 한국 정서와 안 맞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인에게 맞게 내용을 바꿔서 자료로 만들었죠. 그걸 본 조교가 책으로 내보라고 해서 자료집으로 냈답니다. 큰 성공은 못했지만요.(웃음)”

-어떤 내용으로 구성했는지.

“한국 학생들의 일상생활 속 대화를 담았죠. 지문이 어렵고 이해도 안 가는데 어떻게 독일어를 배우겠어요. 그래서 ‘이번에 어떤 수업 듣냐’, ‘그 교수 성적 잘 주냐’ 같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내용을 담았답니다. 이런 내용은 이전 교재에 없었거든요.”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해 왔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은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너무 바빠서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게 조금 버겁기도 하답니다.(웃음)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저도 아무 이유 없이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그만두고 평생 후회했거든요. 그때는 너무 안정적인 길만 추구했어요. 건강이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도 계속해왔다면 아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텐데 말이죠. 음악을 그만뒀어도 다른 곳에서 첼로나 성악을 가르쳤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중앙대 학생들은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꼭 하세요. 멀리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지고 깊이 있게 공부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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