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드라마 왕국’이라고 불렸던 지상파 방송국 SBS, MBC가 일일연속극을 폐지했다. 점점 작아지는 안방극장 속에서 빈약해지는 드라마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은 시청자를 브라운관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훌륭한 연기자가 아닐까 싶다. 여기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 배역에 빠져드는 배우가 있다. 바로 손현주 동문(연극영화학과 84학번). 연기를 숙명으로 생각하며 각박해진 안방극장의 현실을 숙제로 안고 고민하는 그를 만나봤다.

사진제공 손현주 동문
사진제공 손현주 동문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연기 변신의 귀재

우직한 뚝심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다

“지금도 어디선가 낮밤을 새고 있을 스태프와 연기자들, 이 일이 아니더라도 각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개미와 이 상의 의미를 함께 하겠습니다” ‘2012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가 밝힌 수상소감이다. 많은 시청자를 울컥하게 만든 수상소감. 그는 상을 받는 순간까지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대상은 잘생긴 배우의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후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어 좋다는 천생 배우 손현주 동문(연극영화학과 84학번). 그야말로 우직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연기에 빠져드는 진정한 개미의 표본이 아닐까. 우직한 개미인 그를 만나 연기 이야기를 들어봤다.

  -7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 '모범형사'의 6개월 촬영을 최근 마쳤다고 들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작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모범형사’라는 형사물을 촬영했어요. 지난 한겨울부터 찍었던 드라마를 곧 시청자분들이 볼 수 있죠. 저도 드라마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요.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애써서 찍은 작품이기에 많은 사람이 드라마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그래서 요즘 드라마 홍보를 하고 있답니다. 또 내년에 개봉 예정인 영화 <한산> 촬영에도 들어갔어요.”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바로 영화를 준비하다니 쉴 틈이 없겠다. <한산>은 어떤 영화인가.

  “영화 <명량> 감독님께서 기획한 이순신 시리즈예요. <명량>보다 스케일이 배로 큰 영화죠. 저는 이순신을 괴롭히고 이순신의 반대 세력에 설 수밖에 없는 원균 역할을 맡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 배역에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생활형 형사 연기가 끝나고 바로 사극 촬영에 들어간 그는 30년이 넘는 연기 인생 동안 끝없이 연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연기에는 정답이 없어요. 저는 연기에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단지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끝과 정답이 없는 연기 수평선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저를 정진해나가며 연기의 수평선을 계속해 걸어갈 생각이에요. 아마 제 한평생의 과정이 되겠죠.” 인터뷰 내내  손현주 동문은 담담한 카리스마를 은연중에 풍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진제공 손현주 동문
사진제공 손현주 동문

  -언제 처음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는지.

  “제게 연기는 태생적인 것 같아요. 딱 어느 한순간에 연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지는 않았어요. 어렸을 적부터 운명적으로 연기가 제게 다가왔죠. 중학교 때도 자연스럽게 연극반에 들어가게 된 거 같아요. 제 숙명과 운명은 연기라 생각할 정도예요.”

  -운명과 같은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가.

  “제가 살아왔던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짧아요. 어떻게 하면 그동안 시청자들에게 조금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하죠. 새로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연기의 매력이에요. 그렇기에 매번 연기를 위해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정신을 주입한답니다.”

  -촬영을 시작하고 연기에 바로 몰입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대본으로 들어가 최대한 집중해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장난을 치지 않죠. 촬영장은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 바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장소잖아요. 진정성을 갖고 집중해 촬영에 임하면 연기에 몰입이 된답니다.” 

  -영화 <보통사람>으로 한국 배우로는 24년 만에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

  “아쉬운 감정이 컸어요.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 시상식에 가지 못했거든요. 아직까지도 가슴 아파요. 제가 언제 모스크바에 가서 상을 한번 받아보겠어요.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4대 국제 영화제인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 가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죠.”

  -정말 아쉽겠다. 영화 <보통사람>의 시대적 배경과 대학시절이 맞물리기도 한다.

  “저는 <보통사람>의 배경인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어요.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던 시기였죠. 80년대 학번들이 불행하다고도 하잖아요.(웃음) 학교 내적으로는 등록금 투쟁 문제가 있었고 학교 외적으로 정치적 상황은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대입을 준비할 당시에는 전국에 연극영화학과가 6곳 밖에 없었어요. 연극이 제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연극영화학과로 원서를 전부 썼고 중앙대에 합격해 대학생활을 하게 됐답니다. 이것 또한 운명이죠. 만약 제가 동국대에 갔으면 동국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요.(웃음) 중앙대에 입학한 사실이 아주 다행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흑석동에 있던 대학극장과 루이스홀 안에 제 청춘이 온전히 있거든요.”

  -중앙대 재학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저는 학교밖에 모르는 학생이었어요. 제 머릿속은 온통 학교에서 올려야 할 공연으로 가득 차 있었죠.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 연극을 올려야 했거든요. 1년에 7~8번의 연극을 올렸죠. 연극 준비를 위해 하루 종일 학교에서 생활을 했답니다. 안성에 있는 덧마루를 서울 루이스홀, 대학극장으로 직접 옮겨 나르기도 했어요. 무대 설치부터 연기까지 저희가 다 해야 했기에 밤도 많이 샜죠. 사실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학교에서 잠을 잤던 기억이 가장 크게 나요.(웃음) 대학극장과 무대에서 잠을 자다가 추우면 무대 조명 불빛에 따스함을 느끼기도 했죠.”

  -수업을 받고 남는 시간에 연극을 준비했겠다.

  “맞아요. 시간이 빠듯했어요. 안성에서 수업을 마치면 막차 타고 혜화로 달려가 수많은 연극을 보기도 했죠. 다른 이들의 연극도 봐야 하기 때문이었죠. 연극 관람이 끝나면 무대 설치를 위해 흑석동 대학극장으로 뛰어갔던 학창시절이었어요.”

  -대학 시절 올린 많은 연극 무대 속에서 얻는 배움은 무엇이었나.

  “연극 무대를 준비한 덕분에 많은 작품을 보게 됐어요. 책으로 작품들을 접했죠. 수많은 책을 보며 난상 토론을 벌였던 기억도 있답니다. 힘든 순간에 도망치지 않음으로써 인내도 배웠어요. 밤을 새우는 생활 속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것 또한 내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했죠.(웃음)”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성취감도 컸겠다.

  “맞아요. 연극 무대의 완성도가 제 성취감이었어요. 그렇기에 힘든 과정을 피하지 않았죠. 또한 연극은 단체 활동이기에 선후배들과 함께 준비하며 유대가 끈끈해졌어요. 흑석동 대학극장 옆에서 솥을 걸고 밥과 라면을 해 먹기도 한 추억도 떠오르네요. 소극장 벤치 앞에서 새우깡을 먹던 재미도 있었죠. 대학 시절 놀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는 전혀 없어요.”

  -혹시 대학교에서 올렸던 첫 연극 무대가 기억나는가.

  “기억나죠. 가르시아로르까의 <피의 결혼>이라고. 나무꾼3 역할이었어요. 제 첫 대사가 “달이 떴을까!”였죠. 연출자 선배가 제가 대사를 못 하면 ‘야!’라고 소리쳤답니다. 그때는 이름 없이 ‘야’로 불렸거든요.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벌써 이렇게 오래된 일이구나 싶어요. 아직도 대학 시절 마음가짐과 똑같거든요. 달라진 게 없어요. 손현주란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세월만 갔네요.”

  -지난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연극을 그만두고 방송사 공채시험을 본 이유는.

  “마당놀이를 하는 극단 ‘미추’에서 연극을 하다가 그만두고 방송사 공채시험을 봤어요. ‘방송하면서도 연극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었어요. 드라마와 연극은 전달하는 장치만 다를 뿐이지 연기하는 건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죠.”

  -그래도 연극과 드라마는 엄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데.

  “제 생각과는 아주 달랐어요. 드라마는 실수하면 ‘다시 찍을게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연극무대에서는 절대 못 하는 이야기잖아요. 긴장도 측면에서 연극이 주는 긴장감이 남달라요. 연극 무대에 못 간 지 30년이 됐는데 연극을 향한 두려움이 아직 남아있어요. 가끔 선·후배 보러 대학로 연극 공연을 관람하러 갈 때 무대를 가로질러서 분장실을 가곤 해요. 무대의 느낌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향 같은 연극 무대에 다시 서보고 싶어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매 작품마다 다른 팔색조 매력을 펼치는 손현주 동문. 30년 넘는 시간이 지나도 시청자들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매 작품마다 다른 팔색조 매력을 펼치는 손현주 동문. 30년 넘는 시간이 지나도 시청자들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드라마와 연극을 두루 경험하며 이건 꼭 해보고 싶다고 느낀 작품이나 배역이 있을 것 같다.

  “제가 맡고 싶은 역할을 저도 몰라요. 예측할 수 없어요.(웃음) 저는 인생을 그렇게 모르고 살아왔어요. 제가 한달 뒤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기에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고 단정 짓지 않아요.(웃음) 저는 저를 열어두고 내려놓기 때문이죠.”

  -내려놓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많은 의미가 있어요. 때에 따라서는 머리를 비워둔다는 의미도 되죠. 저는 1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시작해요. 빠르게 동네를 걸으며 마음을 내려놓죠. 마음을 내려놓으면 연기자는 차분해져요. 차분해지면 풍부하게 연기를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편하고 차분해야 제 연기를 보는 사람도 편해지잖아요. 그래서 비우기 위해 노력해요. 머릿속을 비워둬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답니다.”

  -연기가 마치 수련과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맞는 말이에요. 연기를 오래 한 사람 중 ‘나 연기 오래 했어!’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이순재 선배한테 ‘연기가 뭐예요?’라고 하면 ‘몰라’라고 답하죠. 연기는 머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연기에 있어서 1+1=2가 아니에요. 1+1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모르겠다고 하는 게 연기랍니다.”

  “연기를 잘하지만 물 밑에서 올라오지 못한 배우들은 누군가가 손을 잡아 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연기 잘하는 배우를 감독님께 직접 추천해 오디션장을 만들기도 하죠. 감독은 좋은 배우를 알아서 좋고 시청자는 새로운 인물을 봐서 좋고 그 친구들은 연기를 해서 좋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에요. 그 친구들이 성장해서 또 다른 후배들의 손을 잡아주길 바라요. 제가 길을 열어주는 이유죠.” 많은 후배의 롤모델로 꼽히는 배우답게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따뜻한 선배였다.

  -연기를 잘하는 무명 배우의 프로필을 휴대전화에 갖고 다닌다고 들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모범형사’에도 연극배우 2명이 나와요. 제가 감독님께 추천을 잘해요. 저의 경우 학교 다니며 연극을 할 때 혹은 신인 때, 저를 잡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감독님께 저를 믿고 그 배우가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답니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총동문회 15대 회장으로서 동문회에서 연극영화학과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한다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돈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고 결국에는 졸업을 못 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돼서는 안 되잖아요. 그래서 교수 추천, 학점, 공연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답니다. 장학금을 지급하니까 학생들이 더 열심히 하기도 하죠.”

  -어떤 연기자가 좋은 연기자라 생각하나.

  “자기중심을 잘 지키고 항상 준비하는 연기자가 좋은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정점이나 정상은 없어요. 그렇지만 정상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빨리 자신의 원래 중심으로 내려와야 해요. 자기의 중심인 초심을 까먹지 않는 연기자가 좋은 연기자죠. 그랬을 때 본인이 하는 연기가 제일 좋은 연기예요.”

  -연기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배우는 해야 할 일이 많아요. 후배들한테는 자기의 롤모델을 만들어 그 사람의 연기를 보는 일도 배우의 준비라 이야기해요. 흉내와 모방도 해보고 그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책도 봐야죠. 저 같은 경우에는 걷기를 좋아해 걸어 다니며 주위를 돌아봐요. ‘내가 저걸 봐서 연기 공부를 해야지’가 아니고 그냥 보는 거죠. 제가 봤던 주위 잔상들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둬요. 언젠가는 그게 바탕이 돼서 연기할 때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에요.”

  -연극영화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기가 힘들고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면 이 길을 걷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연기해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연기가 좋아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면 투정부리면 안돼요.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많은 변화를 겪게 될 수밖에 없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 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또한 변화무쌍한 이곳에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있어야 해요. 저는 다음날 스케줄이 없다고 내일은 놀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죠. 인생을 흡수하는 스펀지 같이 살면 많은 부분들이 성숙할 거예요.”

  -대중에게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지겹지 않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아 저 사람이 나왔구나. 저 사람이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 줄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배우였으면 해요. 제가 나온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채널이 안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손현주가 나왔으니까’하고 사람들이 5분이라도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제게 중앙대란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존재예요. 제 인생이고 삶이기 때문이죠. 젊은 시절에 울타리가 돼 주기도 했어요. 저를 재워준 곳이기도 하잖아요.(웃음) 가장 고민하고 흔들렸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저를 잡아준 곳이기에 중앙대는 제게 어머니의 품과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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