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해외입양인의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정상’만 모인 마을

그곳의 ‘비정상’적 거래를 고발하다

 

한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가는 부모와 함께 노력할 ‘온 마을’이 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품기는커녕 다른 마을로 보내버렸다. 낯선 마을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직면한 세상은 어땠을까.

  국가가 퇴출한 사람들

  지난 1950년부터 4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사회는 황폐해졌다. 전쟁고아 등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수가 늘었지만 국가는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을 긴급히 구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외입양이 시작됐다. 1953년 이후 주한미군 주둔으로 미군 남성과 한국인 여성 간 혼혈 아동이 출생했다. 다문화 및 인권 의식이 강조되기 전 한국 사회는 혼혈아동을 향한 사회적 편견이 심각했고, 이들은 미국으로 위탁됐다. 이처럼 1950년대와 1960년대 해외입양은 보호가 필요한 상태에 처한 아동과, 단일민족이라는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아동을 입양 보내는 수단이었다.

  1970년대는 산업화가 시작됐다. 혈연 중심의 한국 사회는 이 시기 주로 혼외출산 아동을 입양 보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남아선호사상 역시 많은 여아가 외국에 입양되는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때부터 미혼부모의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복지제도는 미비했고 미혼 상태로 혼자 자녀를 키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혼인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문화는 미혼부모의 자녀를 한국 사회에서 배제해왔다. 1990년대 이후에도 미혼부모의 자녀가 전체 해외입양인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상성’을 강조했던 한국은, 사회규범을 벗어난 아동을 해외로 내보냈다.

  요보호아동을 보호할 목적으로 1950년대 총 1671명, 1960년대 총 6166명이 해외입양을 떠났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1970년대 4만6035명, 1980년대 6만6511명으로 되레 급격히 증가한 해외입양인 수는 대한민국의 해외입양이 요보호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당시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던 가족 관계에서 출생한 아동들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던 셈이다. 저출산 문제가 계속되는 요즘도 해외입양은 여전하다. 지난 2018년에만 303명이 국외로 입양됐다.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한국은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때문에 입양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국내입양이 사실상 어려웠다. 더불어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입양부모는 상대적으로 쉽게 자녀를 입양할 수 있는 한국의 아동을 선택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은 ‘세계 최다의 고아 수출국’이라고 불리며 많은 수의 아동을 입양 보냈고, 이 중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이 건강한 영아들의 공급처가 되는 실정입니다. 약물 문제, 에이즈 감염 등의 우려가 없고 의료보험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근면하고 똑똑하다는 인식도 한몫했어요.” 노혜련 교수(숭실대 사회복지학부)가 미국이 한국입양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해외입양은 아동이 비자발적으로 이주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김지훈 교수(인하대 이주사회학전공)는 입양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해외입양의 성격을 설명했다. “주로 어릴 때 입양되기 때문에 입양인은 직접적인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럼에도 친부모가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이유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회복지 측면에서 특별한 대우와 관리가 필요하답니다.”

  그러나 입양기관은 이주 대리기관으로 전락해 아동의 복지보다 대리자의 이해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해외입양의 시장화는 입양인을 입양부모의 만족을 위한 상품으로 취급하며 시작됐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김재민 연구위원은 해외입양이 ‘매매’와도 같다고 이야기했다. “해외입양은 입양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양을 소비하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진행되는 거래입니다. 입양기관은 아동의 복리를 우선해야 함에도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현실이죠. 입양부모가 원하는 입양인과 이어주려는 노력이 과연 입양인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어요. 입양인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방식은 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해외입양의 이면에는 합법을 가장한 매매로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폭력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시장화된 해외입양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하지만 국가는 한발 물러서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이다. 해외입양을 개인 간의 사적 문제로 간주하며, 국가의 개입이 개인의 자율적 영역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입양과 관련된 정책과 법안도 입양기관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해외입양의 역사 흐름 속에서 한국은 주도적으로 해외입양을 권장하기도 했다.

  김재민 연구위원은 산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해외입양이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요보호아동을 보호하는 예산을 절감하고 입양으로 외환을 획득하고자 했던 한국은 해외입양을 장려했어요. 요보호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아동 관련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이러한 임무를 손쉽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입양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해외입양의 ‘최다 수출국’이었던 한국은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사회복지의 실천, 아동복지의 도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노혜련 교수는 아동복지의 발달과 해외입양 간 관계를 설명했다. “해외입양을 많이 보내는 나라는 국가의 아동복지를 발달시킬 이유가 없어요. 미혼부모나 빈곤 가정을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해외입양을 보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위한다는 위선

  해외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인권 보호를 실현하기 위한 네가지 원칙이 있다. ▲원 가정 보호의 원칙 ▲아동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원칙 ▲입양이 공적 책무라는 원칙 ▲보충성의 원칙이다.

  특히 ‘보충성의 원칙’은 국내에서 가능한 모든 보호조치를 시행한 이후에만 해외입양이 정당하다고 평가하는 원칙이다. 뿌리의 집 김도현 원장은 국내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동의 원 가정 복귀를 위한 노력, 가정위탁, 그룹홈 보호에 이어 국내입양까지 다양한 수단을 강구한 뒤 해외입양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입양기관에서 아동들을 보호하고 입양 보낼 뿐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죠.”

  해외입양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국에서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입양가는 아동들이 있다. 해외입양인 제인정 트렌카씨(48)는 한국의 해외입양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국내입양이 가능한 능력이 있음에도 여전히 해외입양을 보냅니다. 입양을 보내고 난 뒤에는 국외에 있기 때문에 입양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힘들죠. 국외에서 해외입양인이 스스로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요.” 김도현 원장도 이에 동의했다. “해외입양이 과연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법인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해외입양인에게 한국 주권을 행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우리 아동의 권리를 다른 나라에 맡기면서 그들의 기본권을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해외입양의 명분이다. 그러나 아동의 원래 가정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미룬 채, 새로운 가정을 찾아주려는 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함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입양이라는 거래에,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아동을 공급하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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