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취득 못하고
각종 위험에 노출돼

마주할 불편한 진실에도
권리 보장하려 노력해야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성공한 해외입양인을 홍보할 때 자주 마주하는 문구다. 하지만 성공한 입양인 이야기가 모든 해외입양의 현실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20만명에 이르는 해외입양인 중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닌 이들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들의 현실을 함께 마주해보자.
 

  뿌리 있는 곳에 권리도

  해외입양은 해외입양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가가 입양인의 복리를 타국의 시민에게 위탁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기본권 보호를 포기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김재민 연구위원은 해외입양 이후 정부가 입양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제한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해외입양에는 국가 간 관계가 수반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는 외교적인 문제와도 연관되죠. 하지만 해외입양인도 한국이 책임져야 할 범위에 있는 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전문가는 해외입양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나라에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유엔아동관리협약」과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헤이그협약)에는 입양 송출국과 유입국이 입양체계, 입양 가족 관리 등에 있어 준수해야 할 내용이 존재한다. 이에 국가는 해외입양 이후에도 입양인의 성장 과정을 모니터링할 책임을 지닌다. “한국은 주도적으로 해외입양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해외입양인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죠. 따라서 이들은 기본적인 처우조차 보장받지 못합니다.” 김재민 연구위원이 지적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책임을 외면하고 고통을 방치하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을 간 아동은 입양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소멸한다. 하지만 입양 국가의 시민권을 얻지 못해 양국 어디에서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입양인 '아담 크랩서'는 미국으로 입양을 간지 37여년 후 한국으로 추방됐다. 첫번째, 두번째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내몰렸다. 

  여전히 지난 1955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약 11만2000명 중 약 2만명의 시민권 취득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지훈 교수(인하대 이주사회학전공)는 해외입양인이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원인을 설명했다. “미국 시민권자에게 입양됐기 때문에 당연히 시민권을 취득할 거라 예상했죠. 당시 법에 따르면 만 18세 전까지 취득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양부모가 이 사실을 모르거나 시기를 놓친 겁니다.”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입양인은 은행 대출, 국가 보증의 학자금 대출이 불가능하고 미국 여권도 받을 수 없는 등 생활에 큰 제약이 따른다.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한국으로 추방된 후에도 연고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입양인에게는 극단적인 선택과 그 시도, 마약 중독과 알코올 중독, 고학력·저임금 생활, 가족 구성 포기 등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나타난다. 올바른 입양가정을 만나지 못할 경우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이 따르며 각종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일례로 지난 2014년 미국에 입양 후 양부의 학대로 사망한 ‘현수 사건’이 있다. 해외입양인의 성장 과정에 많은 시련과 고통이 따름을 증명한다. 노혜련 교수(숭실대 사회복지학부)는 해외입양인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입양 실태를 이야기했다. “아이는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다른 국가의 가정으로 입양이 돼요. 그런데 입양 전·후 그 어느 국가도 입양인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던 거죠.” 

  대부분의 나라에서 입양은 공적 책무로 여겨짐에도 한국은 민간기관에 의존해 입양과정을 진행한다. 국가의 역할은 입양 승인을 내리는 수준에 그친다. 영리기관에서 입양을 담당하면서 아동보호에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입양을 위탁받은 민간기관은 입양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높은 수수료를 받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이는 아동의 인권을 외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의 몫을 직면하길

  해외입양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헤이그협약의 비준이 필요하다. 헤이그협약은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국제적 합의와 기준이다. 한국은 지난 2013년 협약에 서명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헤이그협약을 비준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으로 입양인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
해외입양인의 목소리를 담고 관리하는 공신력 있는 기구도 필요하다. 지난해 중앙입양원과 통합해 설립된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복지 관련 사업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이다. 이 기관에는 해외입양에 관한 통합관리체계가 존재하지만, 입양기관이 지키지 않아도 제재가 이뤄지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다.

  입양 후 철저한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입양 부모의 학대 등 양육 상황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차선자 교수(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입양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입양아동의 국적취득 등의 문제를 입양 부모 책임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양기관은 입양을 보내는 국가 및 담당기관에 입양 사실을 고지하고, 국적취득 여부를 확인하도록 해야 하죠. 그리고 우리 정부는 입양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해외입양인을 불우한 아동으로 표상하고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한국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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