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은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춘다는 의미가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연등 행렬이나 연등 법회는 취소됐지만, 밝은 세상이 찾아오길 바라며 신도들이 단 연등은 묵묵히 사찰 주변 길가를 밝히고 있다. 그 연등을 따라 떠나봤다.

  역사 위를 거닐다

  안성캠 인근에는 역사 깊은 사찰이 많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는 칠장사, 통일신라 문무왕 시절에 세워졌다는 석남사가 대표적이다. 안성캠에서 차로 약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석남사는 그 오랜 조용함을 가지고 있다. 석남사로 향하는 길, 어느새 산길에 접어들었다. 입구에 접어들자 알록달록한 연등이 안내해준다. 오랜만에 흙길을 밟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대웅전까지 펼쳐진 계단이 보인다. 높다란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그동안 조급했던 마음이 자연스레 누그러든다. 천천히 걷다가 보물 제823호 영산전을 찾았다. 다채로운 처마와 잔잔한 불상이 기다리는 영산전. 법당 안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내는 숲 내음과 어울려 흩어진다. 계단의 끝은 대웅전이다. 세월의 풍랑을 묵묵히 받아낸 대웅전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빛이 바랜 현판과 기둥에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대웅전 앞에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니 마음이 탁 트인 풍경이 보인다.

  석남사를 떠나 칠장사로 발을 옮겨본다. 그 이름은 국사가 7명의 악인을 교화 시켜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풍경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는 경내에 들어가자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들이 눈을 부라리며 맞이한다.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서니 정성을 다해 준비한 연등이 펼쳐져 있다. 하나하나 올해도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자는 가족들의 소박한 소원으로 가득 차 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연등 아래 카메라를 들어본다. 칠장사 건물 곳곳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불타고 다시 세워진 역사가 그 한 편에 숨어있다. 칠장사를 나서는 길,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도심 속 작은 쉼터

  서울캠 주변은 항상 시끌벅적하다. 흑석시장의 호객 소리, 환자를 옮기는 구급차의 긴박함, 인근 공사장의 드릴 소리까지. 이런 도시의 소음을 피해 서달산 자락에 있는 달마사로 향해본다. 동작 1번 마을버스를 타고 달마사 정거장에서 내려 안내판을 따라가면 호젓한 숲길이 나온다. 시야를 빽빽이 채웠던 간판이나 회백색 빌딩 대신 푸르른 나뭇잎이 대신한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고 숲길을 걷는다.

  숲길을 지나 달마사의 입구인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저 아래 사이렌 소리와 경적은 희미해지고 불경이 경내를 감싸는 게 신선의 세계에 오른 것만 같다. 불경 소리가 새어 나오는 대웅전에선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경전을 외고 있다.

  절 곳곳을 둘러보면 각자의 소망을 담은 연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등에 달린 소원을 살펴보니 시국이 시국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건강을 빌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극락왕생을 비는 재를 바치는 극락전 앞에는 가족의 평안을 비는 하얀 연등을 볼 수 있다.

  절 뒷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굽이진 소나무를 사이로 달마사의 전각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는 서울캠 건물들과 한강,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볼 수 있다. 탁 트인 풍경이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넋을 잃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빌딩에는 하나, 둘 불이 켜진다. 금방 깜깜해진 주변을 보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연등의 불빛이 일제히 켜지며 산길을 밝혀준다. 우리도 서로의 등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밤 산책을 마쳐본다.

 

연등이 켜진 달마사 뒤로 화려한 조명이 서울을 수 놓는다.
연등이 켜진 달마사 뒤로 화려한 조명이 서울을 수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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