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피후원자의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카메라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사뭇 다르다. 일부 모금 광고가 빈곤포르노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시혜자와 수혜자를 구분하고

‘우리’를 방해하는 빈곤포르노

편견으로 점철된 도움에서 벗어나야

 

작가가 작품의 예술성을 배제한 채 단지 자극적으로만 대상을 묘사하는 경우, 작품은 외설이 된다. 이처럼 예술과 외설은 예술성의 여부로 판가름 난다. 외설(포르노그래피)은 관객에게 불쾌한 자극을 준다. 작품을 성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작품을 존중하지 못하는 형태다. 빈곤을 포르노그래피처럼 자극적으로 묘사하면 ‘빈곤포르노그래피(빈곤포르노)’가 탄생한다. 기부의 목적으로 빈곤을 소비하지만, 기부 수혜자를 진정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모금 광고를 알아봤다.

  가짜 모습을 두고 두눈을 가린 채

  ‘이미지’라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근거는 인간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동정했던 이미지’와 ‘모금 광고가 제시하는 이미지’가 비슷하면 광고의 대상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빈곤포르노는 이를 이용해 국내외 피후원자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다.

  빈곤포르노란 상업적 효과나 모금 장려를 목적으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미디어다. 비영리단체가 모금을 유도하려 가난에 처한 이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빈곤포르노는 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개체로 그린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전현경 전문위원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일으키는 해당 광고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빈곤포르노는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 전시하고 대상화합니다. 노출되는 대상과 시청하는 사람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죠.” 이외에도 빈곤과 피후원자에 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출연자의 인권을 짓밟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꿈의 식탁」은 빈곤포르노의 대표적 사례다. 이 사진은 인도의 빈곤 실태를 고발하는 ‘꿈의 음식’ 시리즈로 제작됐다. 그는 빈곤 지역 아동 앞에 가짜 음식을 뒀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아동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해당 사진은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의 모습과 식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대비해서 피후원자를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국내 비영리 단체 후원 모금 광고영상에 나타난 아동·청소년의 특징과 낙인」의 저자 김주아 학생(성균관대 일반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이 설명한 대표적인 빈곤포르노 사례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 시청자를 응시하는 모습 등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게 빈곤포르노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돕는다’는 당위의 이면

  빈곤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모든 순간 불행하지는 않다. 그러나 빈곤포르노는 이 당연함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김주아 학생은 빈곤포르노가 피후원자를 제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전했다. “빈곤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심어줍니다. 이러한 광고는 후원·모금에는 도움이 되지만 피후원자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오히려 편견과 차별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죠.”

  빈곤포르노의 주된 대상은 아프리카 흑인 아동이다. 아프리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대중은 빈곤포르노를 통해 관련 정보를 접한다. 아프리카인사이트 허성용 대표는 이로 인해 아프리카에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축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흑인 아동을 낙인찍는 효과가 나타나죠. 동시에 인종 간 수직적 관계를 고착하는 인종차별도 나타납니다. 누군가는 시혜의 대상으로 누군가는 자비로운 선진국으로 묘사되면,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차별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발적 기부는 자원을 재분배한다.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려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사회 유지의 토대가 된다. 전현경 전문위원은 빈곤포르노가 사회구성원 간 통합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기부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모두를 위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이 됩니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관계를 맺고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죠. 그러나 빈곤포르노는 ‘도움을 주는 대상’과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 서로를 분리합니다.”

  모금 광고는 인도주의적 당위성 아래에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빈곤포르노 형태를 지속해왔다. 이로 인한 정신적 영향도 상당하다. 전현경 전문위원은 계속되는 자극으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처음에는 마른 아이만 봐도 반응하던 사람들이 빈곤포르노에 노출되면 아이가 죽을 지경에 처했거나 다치는 등 더 강력한 자극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아요. 눈앞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보고도 무감각해지는 상황에 이르고 공감을 어렵게 합니다.” 더불어 기부로써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를 개선할 수 없다는 회의감과 무력감을 유발한다. 피후원자를 향한 지원을 막는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절반의 거짓말이 부여한 고정관념

  모금 광고 중 빈곤포르노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2014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한국 미디어의 아프리카 재현 방식과 수용자인식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 모금 광고의 약 52.9%가 아프리카 지역과 주민들에 관한 부정적 느낌을 내포했다. 어두운 화면, 개선 의지가 없는 나약한 자세, 우울한 배경음악 등을 포함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형성할 우려가 있었다. 또한 해당 조사에 포함된 17개의 모금 광고에는 굶주림으로 앙상한 뼈만 남은 몸이 12번 등장했다. 화면을 응시하는 아동의 불쌍한 시선은 7번 포함됐고, 죽어가는 아동이 5번 등장했다. 아프리카 모금 광고의 대부분은 빈곤한 상황에 대한 동정심 유발이나 윤리적 책임 의식을 촉구하는 감성 기법을 사용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빈곤포르노를 중단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 2018년 제40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월드비전의 한 모금 광고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해당 광고는 희소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사연을 소개하는 동시에 소녀의 갈라진 피부와 각질을 제거하는 모습을 담았다. 당시 회의에서 심영섭 위원은 누군가의 빈곤이나 어려움을 이용하는 모금 광고는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며 해당 방송 중지를 요청했다. 결국 해당 안건에 권고 조치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빈곤포르노가 사라졌냐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실제로 지난 4월 월드비전이 진행한 ‘아프리카 대륙까지 번진 코로나19’ 캠페인도 빈곤포르노적 요소를 포함한다. 허성용 대표는 해당 캠페인이 명확히 빈곤포르노성을 띄고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가장 잔인한 아프리카의 봄’이라고 일반화해 표현하는 점,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흑인 아동으로 국한돼 있고 무력한 모습의 사진만 사용한 점 등이 빈곤포르노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9년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발표한 「2020 기부 트렌드」에서 지난해를 기점으로 이전 10년간의 모금 광고에 빈곤포르노 요소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분명 빈곤포르노를 향한 비판이 제기되고 기부자의 피로도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금 조직 간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분위기에 여전히 빈곤포르노는 산재한다.

인권침해, 인종차별, 현실왜곡, 무감각화 등 빈곤포르노의 부작용을 증대하는 요소를 포함하는지,
미디어 가이드라인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빈곤포르노를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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