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2002년에 20살을 맞이한 83년생 박찬재씨(37), 최현필씨(37)를 만나 서로 다른 그들만의 이야기, 여(餘)집합을 들여다봤다.
※해당 기사는 개별적으로 취재한 인터뷰를 좌담회 형식으로 각색했습니다.

  - 20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박찬재: 그때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내 자신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 또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죠.

  최현필: 사실 막연한 환상이 있었어요. 제 20살이 2002년이기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는 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마주한 20살은 제 생각과 조금 달랐어요. 공허하기도 했고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죠.

  - 2002년에는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당시 열기가 엄청났죠. 이를 실감했나요?
  
  박찬재: 3번째 경기가 열릴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고등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그리고 술과 함께 예선 통과를 확정 짓는 짜릿한 순간을 보냈죠. 

  최현필: 2002 월드컵 이전에는 한번도 거리응원이란 걸 떠올린 적이 없었어요. 다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 당시 응원문화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박찬재: 그때 당시 일었던 붉은 물결은 아직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처럼 모두가 하나 되는 기회가 앞으로 형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정도죠.

  최현필: 당시 국가대표팀에게 높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히딩크 감독이 대회 몇 달 전 “16강 진출 가능성을 50%부터 매일 1%씩 올려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예선 세 경기는 집에서 시청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하더라고요. 8강부터는 거리로 나가 경기를 관람했죠. 그때 들떠서 모르는 사람들과도 함께 어깨동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 당시 미국 장갑차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증폭되기도 했어요. 

  최현필: 장갑차 사건은 정말 슬펐어요. 하지만 슬픈 감정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는 무력감이 더 크게 다가왔죠. 힘의 논리를 느꼈다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해요. 그 많은 인원이 거리에 나와 촛불시위를 했음에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가하지 못한 걸 보고 무척 허무했죠.

  - 그 외에 2002년에 인상 깊은 일이나 이슈가 있다면

  박찬재: 그런 시국에 다시 미국으로 나가서 공부를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걱정도 많았고 두려움도 컸죠. 한시도 편안할 수 없었어요.

  최현필: ‘제2연평해전’이 기억에 남네요. 월드컵 경기 시청 중 자막으로 처음 확인한 기억이 나요. 월드컵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묻혀 다른 참사에 비해 애도 분위기가 비교적 떨어진 느낌이 들어 더 안타까웠죠. 아직도 순직하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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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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