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Millenium)이 시작된다고 흥분과 기대에 싸였던 지난 2000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유학 중에 자막 없이 본 영화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비록 CG임에도 그 엄청났던 파도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배를 거의 수직으로 세우면서 그 배를 장난감처럼 보이게 했던 그 파도를 일으킨 것은 바로 영화 제목인 <퍼펙트 스톰>이었다.

  이 엄청난 폭풍은 1991년 미국 동부 해안을 실제로 강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여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이라는데 안 좋은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상황을 나타낼 때 비유적으로 쓰기도 한다.

  밀레니엄 시작인 2000년으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올해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퍼펙트 스톰에 뒤집혔다. 멈출 수 없다고 믿어졌던 것들이 멈춰 섰다. 불행하게도 그중에는 바로 대학의 수업도 포함되고 말았다.

  요즘 문득 몇 가지 깨닫는 것들이 있다. MP4 보다 고화질로 온라인 강의자료를 촬영하다 보면 15분 남짓의 동영상 자료가 금방 1GB 이상의 데이터 용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텅 빈 강의실 혹은 집에서 강의자료를 만드는 도중 무표정한 카메라를 보면서, 평소 수업 중 학생들의 표정과 대답 소리에 내가 도전받고 파이팅할 수 있었음을. 실시간 온라인 강의 플랫폼 ZoomIT의 편리함을 깨닫게 하면서도 손바닥 크기의 마스크 한 장이 너무 절실하다는 것을.

  물론 나의 일분일초가 기록된다는 것도 건전한 긴장과 자극을 주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 시간이 낯선 것이 사실이다.

  『사피엔스(김영사 펴냄)의 저자인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에서 이 코로나19 시기 후의 세상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꼭 있어야만 할 것과 없어도 될 것들이 구별이 안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일순간에 혼란에 빠져버린 것을 볼 때 앞으로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사람의 착각 중 하나는 자신이 상당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생변수와 내생변수를 구분하듯이 우리를 둘러싼 요인들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구별하고 파악하고 있는 걸까? 5월에 말도 안 되게 조용한 캠퍼스를 보면서, 답을 찾았다는 착각보다 오히려 갑자기 떠오르는 질문들이 더 반가워진다. 아마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과거의 끝이 아니라 미래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시작을 마중 나갈 때 감사함과 솔직함도 잊지 말고 챙겨야겠다.

 

경제학부 송정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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