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읽는 수필을 좋아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힘이 되는 문구를 검색해보곤 하죠. 그러니 잘 압니다. 기자의 글이 여러분의 일상에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요. 매일 힘들다, 어렵다만 이야기해서일까요. 안된다, 바꿔라만 주장해서일까요. 그런 마음을 이해함에도 매번 불편한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무언가, ‘실(失)’ 때문입니다.

  먼저 본질을 외면한 정부의 실책(失策)입니다. 지난 3월부터 일명 ‘민식이법’이라 불리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관련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발효 이후에도 스쿨존 내 교통사고는 잇따르고 있습니다.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에서 정부가 집중해야 하는 본질은 ‘스쿨존의 어린이 보호 기능 미비’입니다. 전국 스쿨존 중 과속 단속 장비가 설치된 곳은 약 5%에 불과할 정도죠. 그러나 개정 법안은 운전자의 과실에 초점을 맞춘 듯 보입니다. 이에 과잉처벌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본질을 보지 않은 제도는 실효성을 잃었습니다.

  다음으로 소실(消失)된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지난달 있었던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는 38명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참사입니다.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산업재해죠. 이곳은 앞서 화재 위험 경고를 6차례나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업은 공사 단가를 줄이려 예견된 참사를 방관했고, ‘조건부 적정’이라는 자체적 판단하에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감시와 처벌에 소홀했던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간 반복된 참사에서 이뤄졌던 솜방망이 처분이 기업의 안일함을 초래했습니다. 방치되는 죽음을 제대로 예방하지도 처벌하지도 않는 태도에 인간의 존엄을 잃었습니다.

  끝으로 실격(失格)한 인간성도 만연합니다. 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이 비일비재합니다. 디지털성범죄 소식도 잦습니다. 유명 연예인 사건부터 n번방 사건까지, 경위를 따져보면 인간임이 의심스러울 정도죠. 디지털성범죄물 유통을 방지하려 ‘n번방 방지법’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국내에 한정된 규제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되레 해외 메신저의 수요를 높이고, 수면 아래에서 자행되는 범죄를 증폭시킬까 우려됩니다. 약 75%에 달하는 디지털성범죄 재범률까지 더해지니 과연 안전한 사회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한 신뢰도 잃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실(失)이 모여있는 실뭉치 같네요. 엉켜있는 실은 답답함 유발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매듭을 풀어내면, 그 실은 무궁무진하게 쓰일 수 있죠. 보온을 위한 외투, 식기세척을 위한 수세미처럼, 풀어낸 실만큼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기사에 녹여낸 진심은 단 하나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당신이 크나큰 상실(喪失)에 취해 실소(失笑)로 하루를 마무리 짓지 않기를. 혹여나 오늘 그랬을지언정 내일은 똑같은 하루가 아니기를. 그러니 지루하더라도 꼬여버린 실뭉치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자, 우리 함께 실(失) 뭉치를 풀어보아요.

심가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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