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곁을 함께한 한강. 풍요와 생명을 베풀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경제 성장과 발전만을 외치는 시대에는 잠시 잊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은 수많은 아픔과 슬픔에도 묵묵히 흘렀다. 전통주의 역사도 사뭇 한강과 닮았다. 외세의 침입과 전쟁, 근대화 과정에서 잊힌 전통주. 그럼에도 한민족의 옆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이번주 술기로운 주류생활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나루터가 되기를 꿈꾸며 ‘한강주조’를 설립한 고성용 대표와 한강의 기적이 전통주에도 찾아오길 바라며 전통주 칵테일 ‘한강의 기적’을 만든 전통주 홍보대사 김태열 바텐더, 이 두명을 만나 전통주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해봤다.

 

막걸리가 숙성되고 있는 거대한 발효조 옆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성용 대표. 항상 청결을 강조하는 만큼 깔끔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전통주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막걸리가 있다. 나온 지 1년도 안 돼  ‘전국 전통주점 우리술 판매순위’에서 6위를 차지하고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강소기업 100 막걸리 간담회’에서 건배주로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가 그 주인공이다. 브랜드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함께 힘을 모아 만든 라벨 디자인이 시선을 확 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막걸리는 놀랍도록 클래식하다. 성수 뚝도시장 옆에 위치한 한강주조를 찾아 고성용 대표를 만나 짧은 시간 만에 큰 사랑을 받은 비결을 들어봤다.


  -꽤 오래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고 들었다.

  “사회생활을 브랜드 마케터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입사할 때부터 딱 5년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저는 저만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5년 차에 미련 없이 그만뒀죠. 퇴사 후 지난 2013년부터는 성수동에서 5년간 카페를 운영했어요. 카페가 꽤 잘됐죠.(웃음)”


  -성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한 덕분에 이곳에 양조장을 열었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에요. 처음 제품을 개발할 때는 다른 지역에 사무실을 마련했죠. 저희의 모티브는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쇠퇴한 한국의 술문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해 부활시키는 데 있어요. 이 목표와 굉장히 잘 맞는 곳이 성수동이라고 생각했죠. 최근에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성수동은 공장도 많고 오래된 동네예요. 그래서 오랫동안 거주한 분들도 많죠. 이렇듯 오래된 느낌과 함께 최근 들어 생긴 현대적인 느낌도 조화롭게 녹아든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서울에 이런 동네는 이곳 빼고는 거의 없죠. 결국 사무실도 성수동으로 옮겼어요.”


  -양조장을 설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어요. 한강주조를 같이 창립한 이상욱 이사는 사회 친구예요.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둘 다 술을 좋아해서 같이 술을 자주 마셨어요. 처음에는 소주 맥주 이런 종류를 주로 마셨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전통주를 접하게 돼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또 지난 2018년부터 전통문화를 향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캐치하기도 했어요.”


  -인식 변화라면.

  “일본은 전통문화의 홍보나 관리에 엄청 신경 쓰잖아요. 중국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한국은 전통이라고 하면 구식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있었다고 봐요. 그래도 사회가 점차 성숙하고 발전하면서 전통이 ‘올드하다’라는 느낌에서 ‘클래식하다’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제품의 주 소비층은 30대 여성분들이에요. 개방적이고 경제력도 갖췄죠. 50대 이상의 세대는 막걸리와 막걸리를 비교하지만 20·30 세대는 막걸리와 와인을, 막걸리와 맥주를, 이런 식으로 비교의 차원이 많이 바뀌었어요.”


  -막걸리를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겠다.

  “양조나 전통주를 잘 몰랐어요. 그래서 이상욱 이사와 함께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9개월 정도 교육을 받으며 전통주를 공부하고 사업이 우리한테 맞는지 알아봤죠. 그 후에는 테스트를 반복하며 사업화를 위한 준비를 했어요.”

사무실에 있는 냉장고를 보니 다양한 샘플로 가득 차 있다. 안에는 막걸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약주도 보인다.

 

  -다양한 술 중에서 막걸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사실 처음에는 약주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약주 시장은 워낙 작아서 그나마 대중적인 막걸리로 먼저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판단했죠. 원하는 수준의 품질도 안 나왔고요. 현재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은 상품화할만한 맛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개발 과정은 어땠나.

  “처음에는 누룩을 빚는 테스트를 정말 많이 했어요. 누룩을 직접 만들어야 우리만의 특색 있는 술을 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쌀도 써보고, 밀, 수수, 기장 등 쓸 수 있는 모든 곡물은 다 테스트해보고 배합도 바꿔보고 형태도 바꿔가며 오로지 누룩 개발에 집중했어요. 결국 맘에 드는 레시피를 발견했죠. 
누룩을 직접 만들기는 품질관리가 어려워 누룩을 제조하는 분에게 위탁 가공 생산을 맡겼어요. 그런데 샘플을 받아보니 이곳에서 만든 술과 맛이 다른 거예요.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지만 장소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 맛 자체의 표현이 완전히 바뀐 거였죠. 그래서 저희만의 누룩을 사용하는 건 그때 포기를 했어요.”


  -누룩 이외의 다른 부분도 궁금하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5가지 가량의 레시피를 작성하고 계속 도전했어요. 물 같은 경우에도 생수, 정수, 다양한 물을 사용했어요. 물에 따라 술맛이 조금씩 달라요. 필터를 몇개 쓰냐에 따라서도 바뀌죠. 최종적으로는 한강물 아리수에 정수 필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쌀도 다양한 지역의 여러가지 쌀을 테스트해봤어요.”

고성용 대표는 양조장에 오면 원주(물을 타 병입하기 전의 술)를 맛봐야 한다며 한잔 건넸다. 병입된 제품에 비해 단맛이 진하고 걸쭉하다.

  “사실 웬만하면 원주는 다 맛있어요. 그런데 희석해서 도수를 낮추면 밍밍한 맛이 많이 나죠. 도수를 낮추면서 맛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았는데 단맛이 강하고 누룩취가 적다. 어떻게 가능했나.

  “말할 수 없는 비법이 있죠.(웃음) 몇 가지 말하자면 누룩과 물의 양을 적게 사용하죠. 일반적인 이양주(발효 중간에 재료를 1번 더함)대신 작업 과정이 추가되는 삼양주(발효 중간에 재료를 2번 더함)를 사용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술을 팔기 위해서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 상품을 제출해 승인받아야 해요. 그런데 그쪽에서 저희가 처음 보낸 레시피를 반려 한 거에요. ‘이게 술이 된다고?’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직접 실험데이터를 가져가서 설명해 드렸어요.”


  -라벨이 이목을 잘 끄는 것 같다.

  “라벨은 제가 직접 디자인했어요. 하지만 디자인에 큰 뜻을 담지는 않았죠. 결국 막걸리의 본질은 맛이니까요. 저희가 사랑받는 이유도 컨셉이나 마케팅, 디자인이 아니라 맛 덕분인 것 같습니다.”


  -최종 목표가 있다면.

  “저는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외국의 와이너리처럼 벼농사를 직접 짓고 그 옆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식으로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단지 술을 마시거나 사기 위해 찾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하나의 문화센터 같은 장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루 생 막걸리

  -디자인: 맨 위의 동그라미는 해 그리고 달을 의미한다. 가운데 세모는 대지와 땅을 의미한다. 마지막 네모는 과거 한강에 존재했던 나루터, 나룻배를 의미한다.

  -재료: 한강 옆 강서구에서 난 경복궁 쌀에 한강을 흐르는 아리수를 필터로 여러 차례 걸러 담았다. 감미료나 인공 첨가물 대신 쌀과 물, 천연 재료만을 사용했다.

  -맛

  나루 생 막걸리 6도(935mL): 원재료인 쌀 본연의 단맛을 살려 깔끔하게 넘어가는 목 넘김이 좋은 6도 막걸리. 벌컥벌컥 마시기 딱 맞다.

  나루 생 막걸리 11.5도(500mL): 깊은 단맛과 묵직한 텍스처, 풍부한 과실향과 산미로 이어지는 11.5도 막걸리. 얼음을 곁들여 온더락으로도 마시기 좋다. 6도짜리 제품은 7000원, 11.5도 제  품은 1만1000원이다.

  한강주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https:// smartstore.naver.com/hangangbrewery)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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