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달은 오늘도 뜬다
  • 서민희 기자
  • 승인 2020.05.17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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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오늘도 빛날게요”
나선미_밤의 방F_Mixed media on canvas_116.8 x 91.0cm_2018
빛과 어둠이라는 모티브로 밤의 방 속 은은하게 빛나는 보름달을 표현했다. 보름달의 그림자에 사용한 색감을 그림에 녹여내면서 물체 간 연속성을 더했다.

“저는 보름달을 제작하는 사람입니다.” 존재하지만 가보지 못한 그곳, 보름달의 신비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는 나선미 작가의 ‘보름달 제작소’를 방문했다. 전시회 공간에 들어서면 작품 속 다양한 보름달의 모습이 관람객을 향해 밝게 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보름달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풍요와 소원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달빛의 소나타처럼 광기 어린 모습의 부정적인 의미를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름달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선미 작가는 보름달이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바탕으로 바쁜 세상 속 현대인이 잃어버린 꿈을 찾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보름달을 달빛으로 사람들의 꿈을 인도하고 꿈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처럼 작품 속 보름달은 현대인의 다양한 소망을 의미함과 동시에 꿈이라는 목적지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보름달이 단순히 개인의 희망 혹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으로만 자리하는 건 아니다. 보름달은 개인에게 ‘진실한 꿈’을 상기시킨다. 현대인은 다양한 미디어를 쉽게 접하는 만큼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나선미 작가는 보름달의 이미지를 통해 거짓된 매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현대인에게 진실한 시각을 요구했다고 설명한다. “왜곡된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시각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생각해요. 이를 예술을 통해 자각시키고자 노력했죠.” 

연잎파레트_Mixed media on canvas_90.9 X 72.7cm _2020
연잎의 넓은 면을 파레트로 가정함으로써 단순한 연초록빛 연잎이 아닌 다양한 색을 담고 있는 모습이 표현됐다. 연꽃과 연잎 사이에 있는 보름달은 작가의 통일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진실한 꿈의 개념은 작가의 ‘연잎 파레트’라는 작품에서 확장된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검은 배경 속 싱그럽게 피어난 연꽃의 색감이 눈에 띈다. 레진이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사용해 색색의 연꽃을 표현함으로써 금방이라도 진물을 토해낼 것 같은 생동감을 선보인다. 연잎 파레트는 『오디세이아』(호메로스 펴냄)의 몽상가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오디세이아』 속 몽상가는 연꽃 열매를 주식으로 섭취하며 살아간다. 해당 열매는 개인의 목적의식을 잃게 만든다. 즉 연꽃 열매는 안락함에 취해 진실한 꿈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함축한다. 

  나선미 작가는 본인의 모습을 연잎 파레트라는 작품에 투영했다고 덧붙인다. “특정 공간에 갇힌 채 작업을 지속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를 유지했어요. 연잎 파레트는 잎의 넓은 면이 파레트처럼 보였던 저 자신의 몽상이기도 했죠.”

청개구리소년_Mixed media on canvas_130.3 X 162.2cm_2020
작가는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강렬한 색감을 작품에 시도함으로써 본인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자 했다. 책임감이 부족한 현 청년세대에 영감을 받아 해당 작품을 제작했다. 

  겹겹이 쌓인 작가만의 색

  안락함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는 현대인의 모습을 단순히 꿈에만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최근 잠잠해졌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는 사람들의 안락함 속 무지로 인해 다시 곪아 터졌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청개구리 소년’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작품 속 소년은 입이 아닌 눈을 마스크로 가린 채 다양한 색깔의 레이어(layer)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강렬한 색감을 가진 레이어 조각은 금방이라도 소년의 모든 걸 뭉개버릴 것만 같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세계 속 공간을 겹치게 만드는 빔 프로젝터의 속성에서 층이라는 레이어의 개념을 끌어왔다. 그리고 이를 ‘보름달 제작소’에 등장시켜 본인의 연속된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레이어는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빛과 매체를 표현했던 작가의 예술적 발자취다. “레이어 스페이스라는 실내공간의 빛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이번 전시회에서 당시 레이어의 개념과 이미지를 차용했죠.”

  레이어는 단순히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나선미 작가는 레진을 사용함으로써 재료와 표현기법에서도 레이어의 개념을 녹여냈다. 레진은 액체 재료로 원하는 모양을 자유롭게 이끌어 낼 수 있다. 층을 쌓아간다는 느낌으로 건조와 드로잉을 반복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겹겹이 쌓인 레진의 레이어링(layering)의 반복을 확인할 수 있다. 레진은 주로 공예에 사용되며 회화작품에서 재료로 흔히 쓰이지 않는다. 나선미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기법이 본인의 기질과 레진의 특성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설명한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선천적인 기질과 레진이 가진 레이어링적 특징이 저만의 작품세계 및 표현방식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죠.”

  나선미 작가는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서 보름달 제작소 속 몽상가의 개념을 확장할 계획이다. 나아가 본인만의 레이어 기법을 표현한 그림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전한다. “몽상가를 주제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려 해요. 더불어 여러분에게 발전된 저만의 화풍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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