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피해는 없다
  • 심가은 기자
  • 승인 2020.05.1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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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드리운 그림자

 

 

 

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면은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환경오염피해자의 방백”으로 1막을 열어보려 합니다. 인터미션 후 2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극한의 환경에 놓인 이들을

구제할 장치는 안전한가

 

어느 마을의 이야기로 듣는

환경오염피해자의 목소리

 

금강이 끝나는 지점에 꾸려진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삶의 터전을 지키던 함라산에는 공장 하나가 들어섰다. 공장은 거대한 담배와도 같았다. 굴뚝을 타고 날아 흩어진 정체 모를 물질들이 안착한 곳은 그 평안한 동네였다. 화창한 햇살을 가린 구름처럼, 살기 좋은 동네의 찬란함을 덮어버린 의문의 입자들은 1군 발암물질로 밝혀졌다. 수십명의 주민은 병마와 싸워야 했고 이 중에는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전라북도 익산시 장점마을의 이야기다. 이는 비단 장점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악취가 불러온 파문

  비료공장이 들어선 지난 2001년 이후, 장점마을 주민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악취를 겪었다. 이에 인근 유기질비료 제조공장에서 악취가 발생한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홍정훈 변호사는 「악취방지법」이 가진 한계가 환경피해의 원인 발견을 지연시켰다고 설명했다. “「대기환경보전법」과 「악취방지법」이 분리되면서 전자는 환경과에서, 후자는 청소자원과에서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제기되면 「악취방지법」에 따라 나쁜 냄새가 나는 물질만 관리한답니다.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환경적 조치를 취하는 규정은 없죠.” 악취 민원이 계속해서 접수됐음에도 그 이면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이유다.

  지난 2017년 12월 장점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영향조사가 시작됐다. 유독 암 환자가 많은 동네였다. 2017년 기준 불과 99명이 거주하던 마을에 암 환자가 무려 22명에 달했다. 지하수를 검사하니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가 검출됐다. 일부 가구에서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물이 흘러나왔다. 비료공장인 (유)금강농산 사업장 내부에는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을 비롯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장점마을 주택가에 쌓인 먼지에서도 같은 물질이 발견됐다. ‘연초박’이라는 담뱃잎 찌꺼기가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가해 비료공장이 파산해서 공장 가동 당시의 배출량과 노출량을 파악하기 곤란하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었다. 소규모 지역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암 발생 조사로 인과 관계를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익산 잠정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의원인 좋은정치시민넷 손문선 대표는 환경피해에 관한 국가의 소극적 대처를 지적했다. “피해에 영향을 줬다고 보여도 과학적으로 일정한 수치 이상의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피해자가 있고, 배출원과 도달 경로가 분명하면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음에도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죠.”

  장점마을 주민과 민관협의회, 한국역학회는 계속해서 환경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특정요인이 아닌 복합요인으로 발생 가능한 질병인 ‘비특이성 질환’을 겪었기에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주민들의 계속된 노력으로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역학적 관련성을 확인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주민 22명에게 암이 발생했고 이 중 14명이 이로 인해 사망했다(2019년 6월 기준)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유주선 교수(강남대 공공인재학과)는 피해를 배상받기 어려웠던 장점마을의 상황을 설명했다. “공장에서 불법 건조한 유해물질이 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져도, 공장이 폐업하거나 사장이 사망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청구가 어렵죠.” 장점마을은 책임을 물을 공장도 사라지고, 공장 사장도 폐암으로 숨진 진퇴양난에 처했었다.

  불명확한 법으로 명확성을 요구하면

  환경오염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다양한 사법적 구제 방안이 있기는 하다. 가장 먼저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피해자는 가해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민법」 제217조의 유지청구권은 손해를 입히는 행위의 중지를 청구하는 권리다. 유지청구권을 행사하려면 환경오염피해 행위가 계속되거나 반복돼야 한다. 그러나 환경피해는 단 한번에 큰 손해를 야기할 수도, 피해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며 피해가 누적될 수도 있다. 이러면 유지청구권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환경정책기본법」도 방안이다. 제44조는 환경오염피해에 있어 원인자의 무과실책임 규정을 둔다. 무과실책임이란 현행 민법이 가지고 있는 과실책임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함을 의미한다. 이로써 환경오염 또는 훼손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원인을 야기한 대상이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유주선 교수는 이마저도 환경피해를 구제하기에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해당 규정은 무책임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피해를 구제하기에는 단순하고 모호한 실정이에요. 불명확한 요건으로 구성돼 있어 구체적으로 효력이 인정될 수 있을지를 놓고도 논란이 발생할 수 있죠.”

  대형 환경피해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배상할 능력이 없으면 피해자는 구제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경상북도 구미시 불산 누출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하는 인명 피해가 있었다. 원인자인 기업이 이 사건으로 폐업하자 피해 구제는 지연됐다. 결국 배상책임이 없는 국민의 세금으로 피해 복구를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 이후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제정됐다. 김현준 교수(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은 해당 법률이 「민법」이나 「환경정책기본법」에 없던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제도라고 전했다. “피해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자가 보험에 필수로 가입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 과거의 법률을 보완합니다.”

  입증과정이 반증하는

  환경오염피해자들이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의지할 수 있을까.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생활환경국장은 여전히 환경피해를 배상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이야기했다.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요. 대부분 기업 대 개인, 국가 대 개인의 구도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개인이 감당하기 매우 힘들죠.”

  전라북도 남원시 내기마을의 주민들에게도 집단으로 암이 발병했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는 내기마을의 암 발생 증가의 유의성과 의심 요인 등을 확인하기 위한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손문선 대표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집단 발병의 원인이 일대 아스콘 공장에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가 인과관계를 특징짓기는 어렵다고 나왔죠. 오염물질의 배출을 조사하는 과정이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마을 인근 아스콘 공장이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 감소 대책을 마련할 것’이 함께 권고됐다. 그럼에도 내기마을 피해의 역학관계는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다.

  인천광역시 서구 사월마을은 폐기물처리업체 28곳 등 각종 공장이 난립한 지역이다. 인구 비율, 공장의 밀도를 고려하면 난개발이 초래할 위험성이 상당하다. 무분별하게 들어선 공장들에서 뿜어나온 먼지, 쇳가루로 주민들은 환경피해를 호소했다. 대기 중 미세먼지, 중금속 수준은 인천의 다른 주거지역보다 높았다. 마을 주택의 서까래와 문틀, 땅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됐다. 비소와 카드뮴 농도도 일반 토양보다 매우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 2005년부터 2018년까지 122명의 주민 중 15명에게 폐암, 유방암 등이 발병했고 8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암의 종류가 다양하고 암 발생비가 유의미하게 높지 않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었다. 손문선 대표는 이에 의문을 표했다. “환경부는 쇳가루 같은 분진 물질 때문에 주민들이 집단으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특징지어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어요. 그런데 동시에 주민들의 주거지역을 이전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한 게 앞뒤가 맞지 않죠.”

  경기도 김포시 거물대리 주변에는 공장 300여개가 위치한다. 주택 수보다 공장이 많은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 2015년 8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진행한 단속에서 약 72%의 공장이 환경법령을 위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집 주변 공장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새가 나고, 분진이 날아들었다. 이를 마주한 주민들은 두통과 기침을 호소했다. 문제의 원인은 공장입지 규제를 완화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제 완화로 주거와 공장이 혼재됐고 유해물질 배출시설이 들어서 민원이 늘었다. 초기 역학조사 결과 거물대리의 환경오염과 환경성 질환의 심각성이 보고됐음에도 환경부는 외면했다. 집단적 피해는 인정되지만, 개별로는 환경오염피해라고 증명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지난해에 들어서야 거물대리 주민 8명을 구제급여 대상으로 인정하고 의료비 총 931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여전히 거물대리에 머무는 다른 주민들을 구제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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