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2008년에 20살을 맞이한 89년생 김용범씨(30), 정재원씨(30)를 만나 서로 다른 그들만의 이야기, 여(餘)집합을 들여다봤다.

※해당 기사는 개별적으로 취재한 인터뷰를 좌담회 형식으로 각색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20살의 ‘나’는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김용범: 20살을 정말 바쁘게 보냈어요. 새벽에는 영어 회화 학원, 낮에는 대학교, 저녁에는 토익학원과 헬스를 다녔어요. 주말에는 편의점이나 학원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했죠.

  정재원: 저는 대학 새내기의 자유로운 생활을 한껏 즐겼어요. 

  - 지난 2008년에는 ‘생쥐깡’, ‘멜라민 파동’ 등 다양한 식품 안전사고가 발생했어요. 해당 사건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김용범: 우리나라가 생존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삶의 질로 눈을 돌리는 시기였죠. 대중이 쉽게 접근하는 새우깡이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분유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건강이나 위생 관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로 기억해요.

  정재원: 과자 중에서 새우깡을 제일 좋아하는데 한동안 찜찜해서 먹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다시 먹기 시작했어요.

  - 2008년은 IMF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해이기도 해요. 일상에서 이를 실감했나요?

  김용범: 대학교 신입생이던 당시에는 경기침체를 체감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니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시기도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부모님이 정말 고집스럽게 재수를 반대하신 이유도 막대한 입시 비용이 부담스러우셨기 때문이었죠.

  정재원: 철없이 놀 때여서 경제적인 부분은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대학생들의 돈 씀씀이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제가 다닌 대학 주변에는 카페도 별로 없었고 천원짜리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 많았어요. 지금처럼 대학생 커플들이 해외로 여행가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기도 했죠. 

  - 당시 광우병 파동이 일기도 했죠.

  김용범: 그때의 광우병 논란은 국민의 건강 보건이 걸린 문제였어요. 그럼에도 국민과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 국민이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낸 사건이었죠. 노동자와 소비자로서의 자아가 일상을 지배하는 동안 침잠해있던 정치적 주권자로서의 자아가 깨어난 변곡점 중 하나라 생각해요.

  정재원: 멋모르고 분위기에 이끌려 대학 선후배들과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정치적 사안에 이끌려 일부 진실을 왜곡했던 것 같기도 해요.

  - 이 외에 2008년에 인상 깊은 일이 있다면.

  정재원: 저처럼 08학번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고교 교육과정이 바뀌고 수능 등급제가 갑자기 바뀐 첫해에 수능을 준비한 세대예요. 이 때문에 경쟁이 극심해졌죠. 그래서 친구들끼리 88올림픽도 보지 못하고 수능도 바뀐 ‘제일 불쌍한 세대’라고 불평했던 기억이 나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