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는 언제나 움직인다. 해마다 다른 기조를 내건 학생회가 등장하고 구성원은 교체된다. 사회에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없음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고여있지 않고 흐르는 물이 건강하듯, 학생자치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순환할 때 건강해진다. 그러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틀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원칙이 없지는 않다. 학생자치에 원칙은 있다. 학생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 선출직이라는 명목으로 주먹을 휘둘러선 안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과연 중앙대 학생자치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잘 지켜왔는가.

  에브리타임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조리 돌림 당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됐음에도 이에 대응책을 마련한 총학생회가 있었던가. 서라벌홀을 “꼴페미”들이 다니는 “메갈던전”으로 낙인찍었을 때 학생회들은 이를 방관하고 지나쳐버리지 않았나. ‘사랑방’ 게시판 중 “스폰”에 관심 있냐며 성관계할 여성 파트너를 구한다는 글이 난무할 때에도 학생자치는 침묵했다. 이 혐오 담론은 성평등을 외치는 대자보를 찢는 방식으로, 특정 단대 학생에게 하는 막말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어느 학생회도 이 범죄 현장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위협 감수는 오로지 학생 개인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선출직 대표자들은 학생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선출직의 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휘둘렀다. 제61대 서울캠 김민진 총학생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있지도 않은 회칙을 마음대로 해석해 성평등위원장을 해임시켰고 제62대 총학생회장단은 특별자치기구의 인사권을 박탈시켰다. 총학생회장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회칙을 유사 법률처럼 여겨 본인의 결정을 뒷받침할 근거로 활용하는 것 역시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로서 행할 수 있는 행태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권한의 양도이지, 권력의 양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의 결정이 혹 더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은 아닌지 조심해서 걸음을 내디뎌야 함에도 ‘민주주의가 전공이 아니라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로 폭력을 얼버무렸다.

  얼마 전 4·19를 맞아 의혈탑 앞 추모 행사가 열렸다. 지난 1960년 4월에 피 흘리며 맞서 싸운 선배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와 안전한 공동체’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2020년 4월의 의혈은 ‘민주주의와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나. 적어도 학생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가. 학생자치의 원칙은 4·19로부터 60년의 세월을 거쳐 우리의 손에 전달됐다. 60년 동안 학생자치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역동했지만, 학생자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그 오랜 시간 의혈탑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왔다. 우리를 의혈이라 호명하는 것 역시 이 원칙들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기억하고 행동해주길 바란다. 학생자치에 원형은 없지만, 원칙은 있다.

 

장소정
대학원신문 편집장
사회학과 석사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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