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중앙대도 대면 강의를 세 번이나 미뤘다. 대학생들이 난데없이 온라인 개강을 맞은 것처럼 우리 생활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할 수 없고, 타인과 만남은 자제되며, 기침이라도 하면 경계의 시선을 받는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재난 상황은 누군가에게 기회로도 작용한다. 발 빠른 이들이 마스크를 사재기해 값이 폭등했고,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마스크 사재기를 한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다는 비난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회를 잡은 것뿐이지 않은가. 이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 허망할 뿐이다.

  마스크 대란과 같이 우리 삶에 생긴 치명적인 타격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공적 영역에서 코로나19를 책임지려는 움직임이 크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책들을 많이 내놓았다.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지역도 있고, 마스크 몇 장을 배급한 곳도 있었다. 마스크 품귀 현상에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공적 차원에서의 대처가 큰 역할을 한다고 느끼는 지금도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개인이 책임지고 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점점 해소되어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져서 지금은 돈이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이라는 전제가 논의되지 않고 있다. 공적 마스크 판매처에서 줄이 길어 구매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줄을 서기가 주저되는 사람이 있고 줄을 설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문제다. 개당 1,500원씩 하는 마스크를 구매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큰 부담이다.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마스크는 곧 건강권이자 생명권이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마스크를 살 수 없다. 건강이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 수준에 감사하고 머물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높은 수준의 의료보험 혜택에도, 병원 갈 돈이 없어서 아파도 참고 치료를 미루는 사람들,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어 수술을 받을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 약값이 부담돼 치료를 중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이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건강해야 하는데, 이 사회엔 ‘건강할 자격’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우리는 지금 재난에서부터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삶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그걸 극복할 능력이 없는 가장 취약한 삶부터 옥죈다. 영세한 자영업자일수록 타격이 크고, 알바생이나 비정규직은 이 와중에 실직으로 생계가 끊긴다. 똑같은 문제라도 대상에 따라 타격의 차원이 다르다.

  코로나19 사태, 정말 모든 개인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 해결이 개인의 영역이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안전이나 건강, 생명과 같은 가치에 자격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이양선 철학과 학생회장

철학과4

<br>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