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을 향해 민주화를 외치던 시위뿐만 아니라, 경찰에 연행된 뒤 당한 구타와 물고문까지. 이 모든 장렬한 투쟁과 참혹한 고문은 누군가의 남편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처음으로 기고문을 봤습니다.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심하게 고문을 당해 그토록 몸이 안 좋았구나.” 지난달 중순, 이창자 동문(보육학과 63학번)은 처음으로 남편 은천기 동문(정치외교학과 59학번)의 기고문을 봤습니다. 1961년 4월 20일 중대신문 제178호에 실렸던 ‘4·19혁명 한돌 맞이 학생 수기’에 실린 은천기 동문의 외침이 60년이 지난 이곳에서 들려옵니다.     

내 땅에 充溢할 陽光은 멀었는가!
-그날 내 다리는 눈먼 총알에 서러웠고

故 은천기 동문(정치외교학과 59학번)
故 은천기 동문(정치외교학과 59학번)

오늘 4.19민주혁명의 첫돌을 맞이하여 민주 제단에 제물이 된 영령 앞에 엄숙히 묵념 드리고 순국 동지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유가족에게 위안을 드리는 바이다. 또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부상 동지들이 하루속히 완쾌하기를 빌며 제2공화국 건설에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 전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바로 우리 중앙 전당의 건아가 교문을 박차고 한강교 입구에 대기 시켰던 붉은 소방차 붉은 물의 세례에 돌멩이로 항거하던 그때, 마음 졸이며 수십만 군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부패와 독재가 우글거리는 12년간 걸어온 온상인 이승만의 아성 중앙청-경무대로 교가를 부르며 구호로 절규하던 그때는 독재의 앞잡이가 정당했고, 오늘은 우리가 정당하리라. 

  총탄과 최루탄에 채 피지도 않은 꽃들이 쓰러질 때의 비명과 웃음이 교차한 그 날이 바로 작년의 오늘이다. 정의의 붉은 피가 그들의 온 상가를 메꿀 때의 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기만 하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의민족이 미개인으로 멸시를 받았던 베일을 벗고 쓰레기통에서 장미는 피고 말았으며 청사에 길이 빛날 그 승리를 거두던 기쁨의 날이 바로 작년 4월 26일이 아니었던가! 이에 우리 한국민과 전 세계 우방 국민들은 감격 어린 가슴으로 우리를 칭찬했던 것이다. 그날을 바로 우리들은 이름하여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른다. 

  오후 한시였다.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도 검은 제복의 학생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잊지 않고 그날을 기념하며 축하하고 의혈의 넋을 추모하며 이를 의의깊게 회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불을 끄는 소방차는 붉은 물을 품고 정말 총은 ‘쏘라고 만들어진 것’인 양 평화적 데모 군중에게 무차별적 사격으로 아름다운 꽃들의 혼을 빼앗아갔다.

  의혈의 넋 188명은 고이 잠이 들고 수천명의 부상자는 병원의 신세를 졌다. 전 시민은 그들의 무덤에 화환을 올렸고 또한 열을 지어 병원 문을 두드리기를 잊지 않았다. 이젠 전세계 우방 각국의 대찬사의 평가와 더불어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격이라’는 것을 귀담아듣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솔직히 털끝만큼 한 정의감에 아니 군중심리에 휩쓸려 따라다닌 것이 어쩌다 그들에 연행되어 고통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비굴해지는 것 같기에 그때의 회고담을 늘어놓고 싶지 않으나 결코 실망하거나 불명예스럽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우글거리면 부패와 독재의 온상을 태울 수 있는 불꽃과 기름이 되기에 충분했던 우리가 현실을 실망하고 불신해야 할 오늘이 있기에 슬프다.

  이제 새삼스럽게 나는 그때의 참상을 상기하고 싶지는 않으나 오늘에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신념을 갖는 뜻에서 그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총 개머리에 맞아 덜렁덜렁한 힘없는 어깨를 마치 그들이 서부 활극의 쌍권 총명수 인양 「나의 투쟁」에서 보는 유대인들을 고문실로 혹은 가스실로 끌고 가던 나치 당원처럼 생철권총, 카빈 개머리 판 살찐 궁둥이에 찬 경찰봉, 쏙싹 주머니의 포승줄, 반짝반짝 빛나는 구둣발들, 그 어찌 골수에 사무친 추억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교대로 생포부대처럼 쓰러져 가는 목덜미를 겨누며 암흑의 고문실로 끌려가던 밤,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눈물겹고 몸서리친다. ‘이 새끼 어느 학교 다녀’, ‘중앙대학입니다’, ‘아 중앙대학교! 잘 됐어. 아주 열렬한 새끼들이야. 네 놈의 새끼가 앞장서서 모 신문사와 모 씨 집에 불 질렀지!’, ‘탁탁!’, ‘아닙니다. 평화적 데모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말투에 침을 내뱉을 생각이 들었으나 어떻게 두들겨 맞았던지 이제는 어디를 때리는지 조차도 몰랐다. 

  악에 받친 목소리로 ‘당신은 동생도 자식도 없습니까?’, ‘아-이 자식 봐라. 입은 살아있구나’, ‘아닙니다. 치지 말고 법대로 처리하시오’. ‘응-정치과, 벌써부터, 뭐, 법대로?’, ‘이게 정치연습이냐? 정치협상인 줄 아니’, 산 송장 알몸둥이에 물양동이를 뒤집어씌워 맥을 짚어보던 그들. 그들 자신이 조작한 서약서에 ‘이 새끼 지장 찍어. 이것 한방이면 알지. 너 같은 건 아깝지 않은데 처치 곤란이야.’ 

  차라리 더 고통을 주지 말고, 그 총으로 쏘아달라고 애원한 내가 대모대의 주동자로서 열성 공산당원이 된 것처럼 취급당한 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다행히 4월 혁명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필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지가 저세상으로 갔으리라 생각하면 이제는 이토록 무자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들이 오히려 불쌍하고 동정이 갈 뿐이다.

  ‘너는 바보천치니까 부상을 당했지’라는 농담조의 친우들의 말에 웃어넘길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혀지지 않는가. 그것은 현 정부와 사회를 실망하고 불신하는 데서 오는 솔직한 표현의 징조인지 모른다. 실로 현 정부의 왜곡된 구체적인 예는 그만두더라도 우리들이 피를 흘리면서 제2공화국에 바랐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머니, 우리의 피가 참되고 보람이 있을는지? 여하튼 이번 4월 혁명은 불란서 혁명이나 신해혁명 못지않게 한국적인 특수성을 가진 비약을 가져온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혁명이나 개혁이란 단어에 구미를 당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영혼의 뜻을 받들어 금권 속에 부식된 재가 거름이 되기를 바라지 않기에 이미 퇴색해버리고 영양실조로 말라빠진 그 뿌리 곁에서 온상의 계승을 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땅 위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원치 않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조국의 번영을 위해 현 정부는 국민이 잘살게 더욱 노력해야겠지만 학생 본분의 긍지를 갖춰 학구에 매진하는 것이 공명 공감에서 싸워 얻은 민주혁명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필자로서도 무슨 단체니 뭐니 하여 놀아나던 과거를 버리고 학업의 길로 들어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실언을 다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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